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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나, 영원한 아이

by 에곤 쉴레

저에게 한 사람의 그림만 평생 보고 살라고 한다면 저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에곤 쉴레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묘하게 빠져듭니다. 불확실한 현실과 미래를 대변하는 것처럼 빈 공간으로 여백을 처리하고 오로지 내면만을 중요시하는 그림을 그린 그의 작품은 눈을 도저히 뗄 수가 없습니다. 그의 관한 글들은 많았지만 정작 그가 쓴 글들은 세상에 알려진 게 거의 없습니다. 이 책은 에곤 쉴레의 시집이며 에세이집입니다. 그의 천부적인 예술적인 감각은 그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처럼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시들은 그림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드로잉 감각을 보였던 쉴레는 소년기의 대부분을 철로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런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는 그의 드로잉을 태워버리고 구타까지 하였는데 이런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쉴레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친구도 없는 외로운 아이로 자라납니다. 오직 그가 잘할 줄 아는 것은 걷기와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었습니다. 쉴레는 16살 때 대리인이던 삼촌과 그에게 무관심한 어머니가 내켜하지 않는 가운데 비엔나 미술학교로 보내졌습니다. 후에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회상한 대목을 통해 표출시키지 못한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고독과 외로움을 자신의 그림 세계에 발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년 후인 1907년, 그의 드로잉을 당시 최고의 화가로 유명세를 떨치던 구스타프 클림트에 보일 기회가 주어였는데 그는 ‘자네는 이미 나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45세의 클림트가 17세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원석과도 같은 쉴레를 자신과 스타일이 다른 한 화가로 인정해 준 클림트의 큰 그릇됨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때부터 이어진 그들의 우정은 클림트가 1918년 매독으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쉴레가 침대 곁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그림으로써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쉴레 또한 그가 세상 떠난 지 9개월 뒤 28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번진 악명 높은 스페인 독감이 10월 비엔나에 당도하자, 당시 임신 6개월이던 쉴레의 아내가 먼저 독감에 걸려 사망했고, 쉴레는 그 사흘 뒤에 아내 뒤를 따른 것입니다. 쉴레가 최후로 남긴 작품은 죽어가는 아내를 그린 드로잉이었습니다.     


3년간의 미술학교 생활 동안 에곤 쉴레는 “사탄이 너를 나의 반에 토해 놓았구나.”라고 그의 미술 선생님이 말할 만큼 골치 아픈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당당히 전통을 거부하고 누드를 억압된 성적 충동을 나타내는 도구로 이용하여 인간의 원초적인 동물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지나치게 선정적이었지만 어찌 보면 솔직하다 못해 변태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자화상 lll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유에 대한 나의 억누를 수 없는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므로 그들 또한 사랑한다.


나는 사랑한다.


나는 고귀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사람이며,

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베푸는 사람이다.


나는 인간이다, 죽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다.          



어린 소녀 모델을 그림으로써 도덕적으로 타락케 했다는 외설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되기까지 한 일화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24일간의 옥중생활에서 쉴레는 이렇게 썼습니다. “내게 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생을 사랑한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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