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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19. 2023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by 페르난도 페소아

70여 개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던 페소아는 리스본에서 태어나 죽기 전까지 시, 소설, 희곡, 일기 등을 남겼습니다. 그는 필명이 아닌 이명을 사용하였는데, 이명은 각자의 정체성, 일대기가 있으며 각자의 문체와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가명이나 필명이랑은 다릅니다. 페소아는 가명으로 쓰인 작품은 서명하는 이름만 빼고 모두 저자 자신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가명은 정체를 감추고 제 목소리를 낼 때에 사용하지만 자기의 이름들은 저마다 다른 인격을 갖고 있으므로 이명이라 불러야 한다고 페소아는 생각하였습니다.      


여기서 정체성의 추구와는 반대되는 충동을 보게 되는데 정체성이 A=A에 집착한다면, 이명은 한 인격 내에 잠자는 상이한 가능성들을 현실화시킵니다. 그것은 A=B=C=D=E, 페소아에 말을 빌리자면 “너는 지금의 네가 아닌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명의 경우는 자신의 개성 바깥에 존재하는 저자가 쓴 것이며, 완벽히 저자에 의해 만들어진 개인입니다. 페소아에게 이명 창조는 가장 시인다운 작업이었고,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한 사상을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끊임없이 나 자신이 낯설다.

나를 본 적도 찾은 적도 없다.

그렇게 많이 존재해서, 영혼은 하나뿐.

영혼이 있는 자에겐 평온이 없다.

보는 자는 보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느끼는 자는 그 자신이 아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뭘 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

나의 꿈 또는 욕망 각각은,

태어나는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풍경,

나의 지나감을 지켜본다.

다양하고, 움직이고, 혼자인.

내가 있는 이곳에선 나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

마치 페이지처럼, 나 자신을.

다가올 것을 예상치 못하면서,

지나가버린 건 잊어가면서.

읽은 것을 귀퉁이에 적으면서

느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말한다, "이게 나였어?"

신은 안다, 그가 썼으니.          



이 책은 페소아가 세상을 떠난 후, 연구자와 편집자들이 페소아의 구상을 바탕으로 시집을 만든 것입니다. 그중 81개의 작품을 담고 있는데 기준은 포르투갈어로 창작을 한 것과 출판 계획이 있던 시가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초기의 작품 <키츠에게>, 완벽한 포르투갈어의 표현의 전형이 되는 <내 마을의 종소리>, 페소아가 창시한 문학사조의 전범이 되는 <습지들> 등이 이 책에는 담겨있습니다. 사후에 발견된 트렁크에는 3만여 장의 유고가 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페소아의 다른 작품들이 많이 출간되기를 개인적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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