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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08. 2023

쇼팽 발라드 제4번

by 로베르토 코트로네오

책에서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쇼팽만큼은 모든 것이 다 알려진 작곡가입니다. 심지어 사라진 작품들이나 그의 습작, 그의 인생 전반적인 것들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발라드 4번만큼은 말들이 많았습니다. 완벽했던 그의 작품들에 비해 불완전하다고 당시의 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여기서 시작이 됩니다.


세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쇼팽의 <발라드 제4번 바단조 OP.52>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쇼팽이 숨겨진 연인에게 바친 미발표 자필 악보는 조르주 상드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20세기말, 스위스 산중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피아니스트인 주인공이 죽음을 앞두고 지난 생애를 회상합니다. 주인공은 1978년 파리에서 망명한 러시아인에게 쇼팽이 죽기 직전에 쓴 수수께끼의 자필악보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P : 어째서 불완전한 것일까요? 중간마다 빠져 있는 수많은 페이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대체, 어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쇼팽의 친구는 이처럼 불완전하고 실수도 많은 악보를 가지고 있던 것일까요? 게다가 멘델스존처럼 위대한 작곡가가 발라드의 한 부분을, 전부가 아니라 그 일부분만 가지게 될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만일-또한-전체를 받았다고 한다면 어째서 소실된 부분이 있는 것일까요? 이처럼 중요한 작품을...


P : 어쩌면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자필 악보는 펼쳐져 있는 청산서 같은 것이었다. 나와 쇼팽간의, 나와 솔랑주 뒤드방간의, 나와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아르투로 숙부 간의 혹은 안테타나 베르트, 카리토노비치의 망령들, 그리고 예브게니와 제임스, 아라우간의 청산서였다.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이 나의 솔랑주, 나의 솔랑주간의 청산서였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적을 때마다 그녀에게 '나의, 나의, 나의'라는 소유격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그럴 때마다 그녀를, 다른 솔랑주와 구별해야만 했다. 내가 내 인생에서 소유할 수 없었던 여성들 중 한 명을 부를 때마다.) 이 얼마나 기적 같은 연결고리인가



이 책은 많은 대중들에게는 외면을 받았습니다. 이유인즉, 스릴러 같지도 않고 문학적 표현이 수려한 것도 아니고, 음악적 황홀경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작가가 이 책을 썼을 당시, 쇼팽의 특별한 속도감과 리듬감까지 생각하면서 쓴 책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문장을 신경 쓰기보다는 쇼팽의 음악에 더 집중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을 그냥 읽을 때는 알 수 없는, 그의 발라드 4번을 들으면서(특히 op52) 책을 마주하시면 성공한 덕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PS : 조성진 님이 연주하신 책 제목과 같은 쇼팽 발라드 4번 OP52를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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