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잠시

by 무무

수능이 끝난 후 바람이 골목을 휘돌았다. 편의점 간판이 얇게 흔들렸고, 나는 그 소리에 잠들지 못한 채 깨어 있다가 비슷한 새벽을 어김없이 맞이했다. 다섯 시, 첫 버스가 불을 켜지도 않았는데 자동문이 열리고, 교복을 입은 소녀가 들어왔다. 두꺼운 패딩에 묻힌 어깨가 눈의 잘 띄지 못하게 옅게 떨리고 있었다. 추위가 몸보다 먼저 마음에 닿았고 목을 감싸 쥔 손은 오래된 버릇처럼 굳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소녀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금방 꺼질 촛불 같았다. 시간을 착각한 것 같아 다시 시계를 보았다. 교문조차 굳게 닫혀 있을 이 시간에 얼굴을 보였기에 호기심이 인내심을 이기고 말을 건넸다.


왜 이렇게 일찍 나와요?

쉬고 싶어서요.

.

.


눈 밑이 붉었고, 잠에서 멀리 떨어진 표정의 소녀가 그렇게 입을 뗐다. 말이 지나치게 간단해서,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얼굴이 괜스레 붉어져 애꿎은 삼각 김밥을 한 줄씩 고쳐 세웠다. 소녀는 뜨거운 캔 커피를 하나 올렸다. 차가운 손이 금세 데워졌다. 계산을 마친 뒤, 매장 끝 테이블에 앉았다. 정리하는 소리에 놀랐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여기서는 따뜻해요.


그 말은 사정의 절반쯤을 숨기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라면 상자를 옮겼다 다시 놓았다. 소녀는 해 뜨는 것을 기다리며 캔 커피를 꼭 쥐었다. 손보다는 마음을 데우는 것 같았다. 버스의 웅장한 엔진 소리가 나자 소녀가 일어섰다.


오늘도 감사했어요.


나는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주었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그녀의 온기가 매장 한쪽에 남아 있었다. 패딩 너머로 떨리던 어깨, “쉬고 싶어요”라는 말, 그리고 이 작은 공간에서만 겨우 버틸 수 있었던 온도가 소녀에게 보였다. 그녀가 어디에서 식어 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붉어진 손끝에 스쳐간 캔 커피의 온기가 오래도록 그녀에게 머물기를 바랐다. 바람은 간판을 다시 흔들었고, 잠들지 않은 새벽이 그녀의 마음도 함께 흔들 텐데, 부디 상처가 덧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녀가 왜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가는지 끝내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새벽만은 아무도 그녀를 밀어내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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