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책을 만나는 일은 드물다. 읽는 동안은 행복하지만 덮는 순간은 비슷하다. 웃음이 먼저 끝나고, 방이 뒤늦게 따라온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은 멈췄는데 몸은 아직 이야기 속에 머무른다. 원래부터 조용했을 방이 막 웃고 나온 사람에게만 유난히 크게 정적이 들린다.
재밌는 이야기는 끝이 났다. 끝이 난다는 사실이 문제는 아니다. 끝나고 나서도 웃을 준비가 된 얼굴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때가 문제였다. 진한 초콜릿을 먹은 뒤처럼 입안에는 단맛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쓴 기운만 자리한다. 물을 마셔도, 시간을 흘려보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농도다.
코미디는 그래서 슬프다. 웃기기 위해 만들어진 장면들이 오래동안 여운이 고인다. 사람들은 웃고, 박수를 치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웃음을 만든 쪽은 그 자리에 더 남는다. 어쩌면 슬픔을 잘 알아서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아픈 곳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웃음은 정확하고, 그 만큼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무대 위의 광대는 사람들이 웃는 얼굴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다. 막이 내려간 뒤, 그 얼굴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는지도 안다. 분장을 지우는 동안 웃음은 먼저 자리를 뜨고, 거울 속에는 웃을 준비만 하고 있는 얼굴이 서려있다. 항상 웃고 있는 장면보다 웃음이 멈춘 직후의 표정이 눈에 보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버린 얼굴, 그들은 슬픔을 연기하지 않는다. 슬픔을 너무 잘 알아서 웃음으로 우회할 뿐이다.
그래서 코미디는 울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건드린다. 웃음이 지나간 뒤, 함께 웃던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 이야기가 끝났다는 사실보다 함께 있던 시간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다. 책을 덮고 한참 동안 다시 펼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웃음이 사라진 뒤의 방에 더 머물고 싶어서, 아직 웃음이 완전히 식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