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에 있었다.

by 무무

오늘은 당신 생각이 나지 않았다며 안도했지만, 떠올리지 않았다고 믿던 순간, 이미 가슴 한 켠에 와 있었다. 일부러 피하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생각이 비어 있었다고 느낀 그 틈에, 당신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비는 오지 않았다. 대신 습기만 남아 있었다. 전날 내린 비가 골목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하루는 쉽게 마르지 않았다. 걷다 말고 고개를 들었을 때 질문 하나가 머리를 지나쳤다.

우리였기에 사랑했나, 사랑했기에 우리가 되었나.


대답을 찾으려 들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 먼저였든, 이미 지나온 시간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나는 소나기 같은 사랑이었고, 당신은 장마 같은 사랑이었다. 나는 갑자기 쏟아졌다가 멈추는 쪽이었고, 당신은 이유 없이 이어지는 쪽이었다. 그 여름의 끝이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비가 내려도 고개를 들지 않게 되었다.


사진 하나를 보았다. 사진 뒷면에는 글들이 바라져 있었고, 그 문장들은 오래 접히지 않은 종이처럼 조심스러웠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스쳤던 날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하루가 기울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길었고, 함께 남겨둔 기록들을 다시 마주할 용기는 아직 없었다. 뒤에서 버텨주겠다고 했던 말이 기억 속에서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말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마음은 그 자리를 서성거렸다. 과연 달에서도 사랑해라는 사랑해일까.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머뭇거리다 당신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형태를 바꾸지만, 이름은 낯선 거리에서도 같은 온도로 도착한다. 불러본 적 없는 공간에서도, 이름만은 길을 잃지 않았다.


한때 당신 곁을 끊임없이 부딪치는 파도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당신은 묵묵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머물다 물러나 있었다. 떠날 수 있어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은 늘 감정보다 늦게 따라왔다.


함께한 시간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함께했고, 나를 관통했다. 다만 끝내 건네지 못한 문장들과, 뒤늦게 도착한 마음들이 여전히 흔적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오늘도 당신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하루를 보냈고, 그런 날일수록 당신은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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