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고 나면 가을이 올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찬 공기가 얼굴을 스칠수록 낙엽의 색이 선명해졌다. 계절은 늘 제자리를 지키는데, 마음이 앞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늦가을을 닮아 있었다. 이미 많은 것이 지나간 뒤의 온도, 말을 덜어낼수록 또렷해지는 음색이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겨울이 올 걸 알면서도 괜히 창문을 열어두었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도 상관없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남이 되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말을 아끼는지, 어떤 순간에 고개를 돌리는지도 알고 있었다. 알고 나면 돌아갈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는 걸 배운 뒤라 더 묻지 않았다. 여러 해 가을을 함께 보낸 그녀는 해가 짧아지는 시간, 카페 창가를 하루 종일 바라보는 이유, 저녁이 빨리 오는 날의 쓸쓸함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다. 그 계절들이 쌓여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을 기대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가을이 져야 겨울이 핀다는 말을 조용히 믿는 사람이었다. 떠나는 걸 슬퍼하지도, 붙잡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 믿음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계절은 늘 맞고, 사람만 늦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 또한 특별한 표정이 없었다. 다만 말이 평소보다 적었고, 침묵은 길었다. 이미 끝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기로 합의한 사람들처럼 서로를 배웅했다.
그날 이후로 겨울을 몇 번이나 먼저 살아보았다. 눈이 오기 전의 거리, 해가 빨리 지는 오후, 혼자 걷기에는 조금 긴 저녁들, 그 모든 장면 속에서 나는 자꾸 가을을 불러왔다. 겨울이 가고 나면 가을이 올 것 같은 기분을 아직 버리지 못한 채로 말이다. 겨울이 가고 나면 가을이 올 것 같은 그 기분을 버리지 못한 채, 여전히 다음 계절을 지난 계절의 속도로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