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했다.

by 무무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해가 기울기 전, 저녁 여덟 시쯤, 바람은 더운 쪽과 선선한 쪽에 망설이고 있었다. 번화가에서 한 블록쯤 벗어난 맥주 집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다들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잠시 들렀다 가는 얼굴들이었다. 그곳에서 너를 만났다. 약속을 정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우연이라 하기에도 서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안쪽에서 고개를 들었다. 나보다 먼저 와 있었고, 이미 반쯤 비워진 맥주가 앞에 놓여 있었다. 유리잔 겉에 맺힌 물방울이 테이블 위로 흘러내렸다.


늦지 않았네.


아직 여기 있다는 것, 아직 오고 있다는 것, 대답 대신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서 신경이 쓰였지만, 굳이 고치지는 않았다. 맥주는 차가웠다. 첫 모금은 생각보다 빠르게 넘어갔고 두 번째 모금부터는 속도가 느려졌다. 말이 필요 없을 때였다. 너는 무슨 이야기를 분명히 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회사 이야기였던 것 같고, 주말에 어디를 다녀왔다는 말도 있었던 것 같다. 고개를 끄덕였고, 잔을 들었다 내려놓는 타이밍을 너의 말에 맞췄다. 가끔 웃을 때, 예전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바뀐 게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 있어서 나를 가장 불안하게 했다.


넌 왜 내 앞에 나타났니.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잔을 돌리며 생긴 물자국을 손가락으로 밀어냈고 네가 여기에 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이유를 알게 되면,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요즘은 괜찮아?


맥주가 반쯤 줄었을 때 물었고 언제나 불완전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괜찮은지 정해져 있지 않아서 할 말을 고르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다시 말을 잇지 않자, 가게 안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옆 테이블에서 터진 웃음, 냉장고 문이 닫히는 둔한 소리, 그 사이에서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설령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나쁘지 않았어.


이 문장은 마음속에서 지나갔다. 그렇게 생각하려 애쓴 적이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면, 지금의 이 시간이 덜 흔들릴 것 같았지만 맞은편에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앉아 있는 동안에는 그 문장이 제대로 서지 못했다. 말이 되기 전에 이미 무너졌다. 맥주가 거의 바닥을 보일 즈음, 너는 잔을 내려놓았다. 손등이 테이블에 닿았고 그대로 멈췄다. 그 손을 보는 동안, 떠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계산을 하고, 문을 열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장면, 어렵지 않게 그려졌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제 갈까?


이 말이 들렸을 때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갈 수 있다는 말과, 가야 한다는 말 사이에는 시차가 있었다. 그 시차 속에서 나는 잔을 들어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다. 이미 미지근해진 맥주였다.


조금만 더.


그 말은 붙잡는 말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설명했다. 단지 맥주가 남아 있었고, 자리가 차갑지 않았고, 밤이 완전히 내려앉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다시 자리에 기대앉는 걸 보니 애써 생각해 놓은 설명들은 힘을 잃었다.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계산서를 부르지 않는 손, 시간을 늘리는 말투, 그런 것들이 이미 말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일어섰을 때는, 가게 안의 사람들도 바뀌어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다른 얼굴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계산대 앞에 나란히 섰다. 누가 낼지 묻지 않았고, 내가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가게 문을 나서자, 바람이 불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고 있었다.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았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았고, 같이 걷는 것도 가능했다. 나는 네 옆에 서 있었다. 아직 떠나지 않았고, 떠날 준비도 하지 않았다. 이왕 갈 거면 잘 가라는 말은 끝 끝내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 말을 할 수 있는 준비는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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