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가 끝난 후

by 무무

1


파티가 끝난 재즈 바에는 더 이상 음악이 없었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아직 한 음이 남아있었다. 술잔의 가장자리에서 맴도는 진동 같은, 아니면 천장에 매달린 조명의 흔들림이 만들어낸 메아리일지도 몰랐다. 마지막 손님이 두고 간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반쯤 비워진 위스키 병을 정리했다. 바닥은 끈적거렸고, 달게 식은 공기는 가슴을 눌러앉았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같은 냄새를 풍겼다. 기대, 체념, 웃음의 잔해가 그것이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이 공간은 살아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색소폰이 사람의 목소리처럼 울었고, 누군가는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손님들은 손뼉을 치며 주문을 더했고, 웃음소리와 글라스의 부딪힘이 즉흥의 불빛이 되어 서로를 비추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플로어의 얼룩과 반쯤 녹은 얼음 조각만이 방금 전까지의 파티를 증명했다.


가끔씩 튕겨버리는 턴테이블을 꺼내 바늘을 얹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바늘이 돌아가는 동안 희미하게 들리는 긁힘만이 있었다. 누군가 아직 여기에 있는 것처럼, 혹은 음악이 사라진 자리에서 또 다른 음악이 태어나는 것처럼 태고의 시간을 닮아있었다. 바텐더라는 일은 사람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떠난 뒤 그 이야기가 사라지는 걸 보는 일, 그래서 그들의 웃음보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담아냈다. 접힌 명함, 테이블 아래 떨어진 영수증 같은 것들을 봐야 했다.


음악은 멈췄지만,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천장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새벽의 공기, 가느다란 먼지, 무대 위 낡은 마이크에 남은 숨소리, 그것들은 전부, 끝나지 않은 노래의 기척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건, 재즈라는 음악이 아니라 그 음악이 끝난 후의 정적이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말로 닿지 않은 여운들이 남아있었다. 박수의 그늘, 체념의 찌꺼기, 떠나가는 발소리, 그 모든 소리를 닦고, 접으며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마지막 조명을 끄기 전, 잠시 눈을 감았다. 정적이 삼켜버린 이 시간에도 계속 움직이는 손의 일이 결국에는 인생이었다. 밖에서는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를 들으며 거리의 불빛은 젖은 콘크리트 위에 흩어져버렸다. 청소 도구를 제자리에 넣고, 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밖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는 거리. 그 적막 속의 온기는 방금 꺼진 조명의 온도가 사라지지 않았다. 문을 닫으며, 빌리 홀리데이의 음성이 귀에서 아직 맴돌았다.


Good morning, heartache.


그녀는 언제나 슬픔을 노래했지만, 그 슬픔에는 하루의 체온이 배어있었다. 굳이 다시 바에 들어가 바닥의 끈적거리는 얼룩을 닦았다. 오늘의 마무리이자,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2


낮은 음악이 흐른다. 아무도 청하지 않았지만, 볼륨을 살포시 낮춘다. 오후의 공기는 유리잔에 스며들었다. 어제의 파티가 끝나고 난 후의 물기를 닦을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들이 어렴풋이 남는다.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한다는 건 다시 무너지는 일이었으니까. 오늘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붉은 의자 세 개, 기울어진 시계, 벽의 얼룩, 매일 마주하던 것들이다. 말을 걸지 않아도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나는 그 침묵이 좋다. 낮게 깔린 선율 위에서, 하나의 음표처럼 존재하는 이유인 듯해서 자꾸만 눈길이 간다. 해가 지는 걸 느낄 수 없을 만큼 서서히 바깥은 어두워지고 있다. 누군가가 말없이 떠나는 것처럼,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 척하는 그 언저리,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흐름 속에 사람들은 이름을 잃고 향이 된다. 유리잔에 감도는 빛이 엷어지고, 탁자 위의 손자국들이 오후의 그림자가 된다. 하나하나 닦아내며 지워야 할 것은 기억이 아니라 남아 있는 체온이었다. 인간적이어서 쉽게 무너지기에, 무너짐이 없는 세계를, 혹은 무너져도 괜찮은 세계를 나는 늘 꿈꾼다.

한쪽 구석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섞인 스피커가 퍼진다. 낡은 바늘이 이따금 음악을 멈춰 세운다. 소리로 가득한 세상에 살아가지만 본질은 멈춤과 틈 사이에 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여기서는 사람들은 미사여구 없이 자신을 마주한다. 그 틈을 들여다보고 느낄 때쯤, 손님들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문 밖에는 눈이 내리지 않고, 사람들은 여전히 어딘가로 향한다. 그들을 향해 잔을 하나 올려놓는다. 이름 없는 건배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들어주지 않는 노래에, 말없이 스쳐가는 모든 오후를 위한 안부를 묻는다. 이럴 때마다 문득 바텐더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들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어딘가에 남기지는 않지만 매일의 잔 위에 전 날의 지문들을 닦아내며,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각자의 사연들은 언제나 잔잔하고, 그 문장들은 소리 없이 가슴속에 눌러앉는다.


쳇 베이커의 트럼펫이 미묘하게 어슬렁거린다. 그의 음색은 정처 없는 기다림이다. 아득하게 확실히 존재하는, 말보다 여운이 감도는 어느 이름 모를 조향사의 향수 같은 고독함을 가진다. 음악에 맞춰 의자의 위치를 바꾸고, 벽의 그림을 수평으로 다시 맞추고, 낡은 턴테이블의 바늘을 닦는 의식을 갖는다. 이 일련의 동작들은 기도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특정한 모습으로 멈추지만 나는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가게 문을 여는 일은, 세상으로 다시 입을 여는 일이랑 사뭇 닮았다. 밖의 소음과 빛이 들어오면, 고요가 나를 깨우면 문을 살짝 연다. 차가운 공기가 흘러들며, 그 안에서 먼지 입자가 떠오른다. 새로운 하루가 세상에 말을 걸기 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 일은 술보다 이야기를 만진다. 현실적인 이유만 아니라면 가끔씩은 손님이 오지 않아도 좋다. 그들의 자리를 준비하는 일 자체가 이미 세상에 묶어두는 하나의 언어라는 사실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3


마감할 때 즈음부터 내리던 눈이 심상치 않았다. 잔 위에 쌓이던 먼지처럼, 세상의 소리들이 하나씩 눈에 덮여 사라졌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바의 창문에는 희미한 성에가 끼었고, 거리의 불빛들은 물속에서 헤엄치는 초처럼 흔들렸다. 그래서였을까? 예약이 없다. 메모지에 적힌 이름들은 자연스레 지워졌다. 그럴 때마다 와인 셀러를 열어, 평소 손님들이 잘 찾지 않던 병의 먼지들을 얇은 린넨 천으로 닦아냈다. 오픈한 지 몇 시간이 지나도 그 누구도 들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오프너를 꺼내 와인의 코르크를 열었다.


와인 잔에 떨어지는 한 모금의 무언, 그 위로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가 흘렀다. 유난히 피 색깔과 닮은 와인이 입술에 닿을 때마다, 나무 탁자가 움찔했다. 외로워 보이는 객석에서 연주되는 한 편의 음악,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살아 있다는 이유로 이어지는 음악이 텅 빈 바와 잘 어울렸다.


눈이 그칠 거 같지 않았다. 창밖의 거리는 흰 고요에 잠겼고, 그 고요를 잔에 부었다. 외로움을 잊은 탓이었을까? 사람이 없다는 건,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기에, 빈 의자들을 닦고, 그 위에 얇은 손수건을 올려뒀다. 언젠가 어떤 손이 그 손수건 위에 머무를지 모른다는 믿음이 이 바를 여전히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줬다. 마지막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들고 닫으려는데 혼자 오는 단골손님이 구석자리로 걸어가 의자에 손을 얹었다. 남아있지 않은 와인 잔을 든 채 멈추고 웃었다. 그러자 항상 주문하던 칵테일을 말했고 망설이다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손님보다, 제 자신을 위해 잔을 열어두려 합니다.


그는 놀라지도,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해한다는 듯,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눈보라가 문틈으로 들러붙었다. 사람이 마시는 건 술이 아니라 기억의 온도였다. 따스했던 마음의 식지 않도록, 오늘도 잔을 닦고, 불을 낮췄다. 나를 손님처럼 대했다. 눈발이 약해지고 있었다. 밖에서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듯 말 듯했지만, 그 소리를 향해, 잔을 들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그냥, 여기까지.


그 말은 건배도, 위로도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를 달래는 세상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마지막 미세한 숨결 같은 호흡이었다.



4


바깥의 눈이 흘러내렸다. 지붕 위에, 간판의 글자 위에, 포스터의 모서리 위에 남아 있던 흰 자국들이 물이 되어 겹치기 시작했다. 문 앞에 걸터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소리를 들었다. 얼음이 녹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세상이 다시 움직이는 박동은 느낄 수 있었다.


폭설로 인해 며칠 동안 닫혀 있던 바의 불을 켰다. 전구는 머뭇거리다 지지직 소리와 함께 이내 빛을 머금었다. 테이블 위에 반사된 빛이 오랜 시간 잠자던 악보의 첫 음처럼 깨어났다. 의자들을 제자리에 놓고, 깨끗이 닦은 잔 하나를 카운터 위에 올려두었다. 창문 너머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오갔다. 두꺼운 코트를 벗으며, 그들은 마치 봄을 처음 본 사람들처럼 멈춰 서서 바닥의 물길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눈이 녹는다는 건 사람들이 다시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약이 아직도 없지만, 괜찮았다. 카운터를 정리하며,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밖에서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녹지 않은 눈 위를 밟는 소리, 그 흐트러진 춤사위 같은 리듬이 침묵을 조금씩 깨뜨렸다. 와인을 한 병 꺼냈다. 평소보다 밝은 색이었다. 잔에 따라둔 채 마시지 않고 바라봤다. 와인 속에 비친 전등이 기대 같아서 더 이상 고요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다정하게 들리는 밤소리에 기다림이 아니라, 끝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되었다.


문이 열렸다가 바람이 들어오며 유리문 위로 물방울이 맺혔다. 누군가 들어오려다, 발자국만 남기고 돌아선 모양이었다. 그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오지 않는 손님들이 있다. 그들이 남기고 간 공기 속에는 대화의 여운이 함께 머물렀다. 오늘 밤, 그 보이지 않는 대화들을 닦듯이 잔 하나를 더 들었다. 눈이 모두 녹을 때쯤이면, 사람들은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들이 잊고 있던 노래를 들려달라고 말할 것이다. 잔을 닦던 손을 멈추고 그 노래의 첫 음을 찾을 것이다. 아직은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잊힌 웃음을, 배우는 일처럼 문을 열 것이다.



5


새벽은 약속 없이 찾아온다. 그 시간의 온도는 어제의 끝도, 오늘의 시작도 아닌 어딘가에 머무른다. 잔을 정리하고, 의자들을 돌려놓는다. 빈 잔 속에는 모호한 숨결이 남아, 웃음이 증발해 버린 자리에 식지 않은 미소가 쌓여있다. 바닥에 떨어진 구겨진 종이를 줍는다.


이곳은 내일이 늦게 오는 곳이다.


그 위에는 단 한 줄, 누가 쓴 문장인지 모르지만,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언젠가 다시 읽으면 다른 뜻이 되어 있을 것 같아서였을까? 이 공간이 거대한 일기장 같았다. 말이 사라진 자리마다 닦아야 했고, 음악이 끝난 뒤에도 멜로디의 숨이 공기 속에 떠있었다. 떠내려가는 시간의 표면이 얼마나 깊은지를 바라볼 뿐 기록하지 않는다. 눈이 녹아 한때 쌓였던 흰 뭉치들이 물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슬픔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는 일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기억이, 새벽의 물결로 따라간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보잘것없는 역할이었다.


오늘도 불을 끄지 않았다. 작은 조명을 켜뒀다. 무엇을 비추는 업무가 아닌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막는 일을 했다. 몇몇은 그걸 희망이라 부르는 것 같지만 그저 멈추지 않는 감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새벽도 마찬가지로 어제의 말들이 잠들고, 내일의 말들이 도착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유리잔을 쌓고, 한 모서리에 종이를 한 장 뜯었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의 귀에 닿기 위해 존재한다.


이 모든 시간이 흩어져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잔을 닦고, 이야기를 만든다. 그건 삶이 아니라, 세상이 흘러간 기록일 뿐이다. 어제의 흔적들이 지워나가지 않게 통과한 자리에 새 문장이 들어설까? 다만 사라짐에는 미세한 예감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다음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 테이블 위에 공책을 올려둔다. 그 안에는 아직 문장이나 단어가 없다. 공기가 남긴 냄새가 길을 잃는다. 언젠가 누군가 이 자리에서 잔을 닦으며, 이 여백을 채워 나갈 것이다. 그 사람은 나일 수도, 아니면 나와 닮은 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남는 그 찰나가 재즈다. 그 리듬을 들으며, 다음 이야기가 오는 방향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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