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by 무무

1


불룩한 바지 주머니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내서 손에 그 무언가를 쥔다. 일터에서 떨어진 영수증, 찢어진 메모지, 누군가 버린 포장지의 한 귀퉁이, 전단지의 귀퉁이, 낡은 편지의 뒷면, 그런 종이들 위에 문장들을 적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것은 습관이고, 습관은 시간을 견디게 해 준다. 그건 다른 사람들처럼 고급스러운 취미도 아니고, 값비싼 버릇이 아니다. 그것을 쓰레기라 부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 그건 소중한 페이지다. 글을 옮기는 동안 세상의 소음은 멀어지고, 손끝의 움직임만이 존재한다. 대개 적는 문장들은 짧다. 사람의 체온 혹은 겨울 바다의 색깔 같은 것들을 적고 나면, 마치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려 잠깐 다른 방송을 듣는 기분이 든다. 누추한 글씨의 문장 한 줄이 내 한 주의 무게를 덜어 줄 거라는 순진한 기대는 이제는 없다. 다만 내 손을 타고 종이에 닿으면 어쩐지 덜 망가지고 덜 비참한 기분이다. 누군가의 칭찬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종이의 가장자리에 내 이름 대신 작은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희망적이지도, 거대한 반항도 아닌, 차분한 만족을 느끼며 가방 안으로 종이를 집어넣는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가방을 정리한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것들, 찢어진 종이, 구겨진 봉투, 커피 얼룩이 번진 영수증, 그것들이 내 하루의 기록이다. 손끝으로 하나씩 펼쳐보면 글씨가 제멋대로다. 어떤 것은 세게 눌러쓴 탓에 종이가 뚫려 있고, 어떤 것은 급하게 적어 반쯤 사라진 상형문자만 남아 있다. 그것들을 퍼즐 맞추듯 맞춰 본다. 마치 오래된 필름을 복원하듯이, 몇 줄의 문장이, 누군가의 말, 혹은 내 안에서 한때 반짝이던 생각들이 종이 위에서 호흡을 되찾는다. 도착하는 버스 정류장에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굳이 벤치에 앉아 파편들을 모아 한 장의 종이로 덮는다. 그것은 낡은 성경의 페이지처럼 여긴다. 비록 신의 말은 없지만, 내 한 줄이 된다.


파편들을 모으는 동안, 세상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을 잊는다. 이건 성취도, 구원도 아니지만 흩어진 나를 한 곳에 붙잡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한 종이 쪼가리겠지만, 내게는 그날의 체온과 숨결이 묻은 증거이자 이유이다. 방으로 돌아오면 그 종이들을 책 속에 끼워둔다. 글자와 글자 사이에 낯선 여백이 만들어진다. 언젠가 그 책을 다시 펼칠 때, 그 여백 속에서 오늘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를 하며 책을 덮는다.


2


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문장을 적었던 건 엄마의 반 토막만 한 어릴 적이었다. 엄마가 남겨둔 낡은 책 한 권이 있었고 겉표지는 닳아서 제목이 기억이 남지 않을 정도로 지워졌고, 책장 사이에는 손때가 남은 영수증과 오래된 버스표가 끼워져 있었다. 그건 책갈피라기보다, 책과 함께 늙어간 흔적이었다. 그 책을 읽지도 못한 채로, 그 안에서 안심하게 되었다. 사실 책이 아니라 그 사이에 끼워진 종이들이 나를 잡아당겼다. 엄마가 적은 짧은 메모 “이건 언젠가 다시 생각하자 “라는 한 줄이 있었다. 그 문장을 읽은 순간, 무언가를 적는다는 건 언젠가의 나를 위해 남겨두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게 처음이었다. 단순한 한 줄이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펜을 들어 비슷한 문장들을 찾아 따라 적었다.


엄마는 늘 책과 가까이 있었다. 책을 사줄 형편이 안 돼서 버스 정류장 근처 헌책방에 들러 낡은 소설책을 빌려오셨다. 책장을 넘기던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그 안에 무언가 깨질 만한 것들이 들어 있는 것처럼 페이지를 넘기셨고 그 손을 옆에서 바라보던 나는 언젠가 그런 식으로 세상을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다. 직접 손으로 적고, 지켜보고, 잊지 않으려 애쓰는 방식으로 살아갈 운명이라는 것을 막연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종이가 없어 신문 가장자리에 쓰기도 하고, 손에 잡히는 것들에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무언가를 이루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의 생각을 놓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기록하는 일은 어쩌면 엄마가 내게 남긴 유산일 것이다. 재산도, 뚜렷한 조언도 남기지 않았던 엄마의 읽는 습관과, 멈추지 않고 끄적이는 법을 내게 남겨주었다. 글은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 그건 저절로 알게 되었다. 세상은 문장보다 빠르게 흘렀고, 말보다 냉정했다. 그 무력함을 깨달은 순간부터 적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는 그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물론 지금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말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읽는 법보다 남겨두는 법을 먼저 배웠다. 읽다가 좋았던 문장은 접어두고, 마음에 닿은 구절은 밑줄을 긋는 거에 그치지 않고 종이에 옮겨 적었다. 왜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어떤 말들은 흘려보내기에는 무거웠다. 그 무게를 어딘가에 옮기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내 삶은 글들로 이어졌다. 하루의 여백마다 문장이 스며들었다. 세상에 들리지 않는 마음의 음성을 남기는 방법, 그게 나의 인생의 책갈피였다. 글은 여전히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 무의미가 내게는 필요했다. 문장을 적을 때면 세상이 등을 돌려도 괜찮았다. 어쩌면 세상보다 한 문장만 더 버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버팀 속에서, 나를 구하고 있다. 버스 안에서는 종종 작은 수첩을 꺼낸다. 손가락에 기름때가 묻어 있어 종이에 얼룩이 생기지만, 그것마저 나의 하루 같아 지우지 않는다.


사람들은 피곤한 얼굴로 핸드폰의 화면만을 바라보지만, 그 사이에서 문장들을 적는다. “오늘은 커피 맛이 쓰다.” 혹은 “낮의 온도는 가시지 않았다.” 그 문장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소한 문장을 적을 때면, 나는 어쩐지 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3


종종 단어의 경계를 생각한다. 어떤 말은 가벼워 금세 흩어지고, 어떤 말은 무거워 끝내 입 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그 중간쯤에 있는 문장을 붙잡아 보려 한다. 모호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 언어의 조각들을 찾는다. 사람들은 말로 세상을 바꾼다고 믿지만, 오히려 말이 세상을 닫아버릴 때가 많다. 말해버린 순간, 가능성은 사라져 버리고 남겨진 것은 정의된 문장, 그 정의로 인해 잃어버린 공백만이 남는다. 내 선택은 적는다기보다, 남겨두는 것이다. 글은 내 머리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도중에 머물러 있다. 글을 적는 이유도, 그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닿고 싶어서였다. 그 가능성 없는 갈망은 끝내 불완전하게 만든다.


글은 세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둘러싼다. 그 둘러싼 침묵 속에서 숨을 고른다. 그건 패배의 시간이라기보다, 존재를 확인하는 간극이다. 그래서 내가 쓴 문장을 종종 읽는다. 그 문장들은 나만큼이나 특별하지 않다. 다만, 견딜 만큼은 진실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거대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무너지지 않는 문장 하나면 좋겠다.


글을 적고 나면, 세상은 당연히 그대로다. 내 변화는 작아서 눈에 띄지 않지만, 적어도 표면은 정돈되어 있다. 언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그 정도일 것이다. 무너지는 자신을 조금 늦추는 일, 그 정도면 됐다. 오늘도 문장을 적는다. 그건 어떤 위대한 선언도 아니고, 간절한 고백도 아니다. 그 흔적이 내일의 나를 지켜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하다.



4


책을 덮으며 책갈피를 꽂는다. 그것은 페이지의 위치를 기억하기 위한 표식이 아니라, 내게 부여한 경계선이다. 읽는다는 일은 언제나 현실 밖으로 데려가는 동시에, 안으로 가두는 일이다. 어떤 문장은 열어젖히고, 또 어떤 문장은 닫아서 걸어둔다. 책갈피는 그 두 움직임 사이에서 생긴 균열이다. 매번 그 얇은 종이를 책 속에 끼워 넣으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의 방법을 배운다. 더 읽지 않기 위해 멈추고, 다시 읽기 위해 남겨두는 행위, 그것은 일상의 윤리처럼, 반복되는 통제된 의식이다. 누군가는 책갈피를 무심히 꽂아두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루를 잘 견뎠는가를 남기는 기록이다. 지식은 자유롭게 하지 않지만 어떻게 제한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을 뿐, 오늘도 한 페이지를 덮으며, 그 선을 다시 긋는다.


마음이 따라가지 못할 때는,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책갈피는 멀어진 문장을 붙잡는 손길이자, 아직 닿지 못한 이해의 자리다. 내일, 이 문장 앞에 다시 설 수 있기를 바라며, 얇은 종이 하나를 남기는 이곳에 이름도, 날짜도 적지 않는다. 거기에 정지된 공기와 쉼을 내려놓는다. 책갈피를 꽂을 때마다 내가 책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멈추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더럽혀진 종이 한 장이 종이와 맞닿을 때 어디까지가 나였는지를 되묻는다. 책은 늘 나보다 앞서 있었고, 그것을 따라가다 지쳤을 뿐이다. 당연히 멈춤이 필요했다. 이해를 위한 휴식이 아니라, 재정립을 하기 위한 간격. 책갈피는 그 막간을 기록한다. 어떤 날은 절망의 끝에서 꽂히고, 어떤 날은 의미의 시작에서 멈춘다. 책갈피는 그 움직임의 자취다. 종이 냄새 속에, 문장의 잔열 속에, 잠시 통제된다는 감각과 드디어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나로 돌아온다.



5


창문 쪽으로 기울어진 햇빛이 책상 위의 먼지를 비춘다. 밤새 덮어둔 책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얼음을 띄운 물 한 잔을 마시고, 그 잔을 책 옆에 내려놓는다. 물방울이 잔 표면을 따라 흘러내리며 책의 모서리를 적신다. 손끝으로 그 자리를 닦으며, 종이의 온기를 느낀다. 사람의 손이 닿은 책은 오래된 나무처럼 따스했다. 천천히 책갈피를 빼냈다. 얇은 종이가 공기 속에서 떨렸다. 소리도 향기도 없었지만, 그 움직임 안에는 약속이 숨어 있었다. 어젯밤 멈췄던 페이지를 다시 펼친다. 익숙해진 문장들이 줄지어 있지만, 그것들은 다르게 보인다. 어제는 단순한 의미였던 단어들이 지금은 깊이 파고든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사는 것 같다.

책 속의 인물들이 걷는 거리를 상상한다. 그들이 건너는 다리, 서성이는 시장, 낯선 골목의 소리까지도 떠올린다. 그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 그 안에 머물 수 있다.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쳇바퀴 돌 듯 비슷한 나날이겠지만, 시선은 줄 옆에 연필로 메모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다시


그 문장은 돌아오는 길이다.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방 안의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멀리서 지나가는 차의 굉음. 이 모든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계의 증거다. 그 안에 나를 옮겨 놓는다.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도, 이해하려 애쓸 이유도 없다. 책갈피는 책 옆에 그대로 둔다. 이제는 멈춤이 아니라 시작의 징표다. 책을 다시 열었을 때, 한쪽 모서리에 접어둔 이면지가 보였다. 커피 얼룩이 희미하게 번져 있었고, 거기엔 서툰 필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읽는다는 건 잠시 살아본다는 뜻.” 나는 그 문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랍에서 낡은 영수증 하나를 꺼냈다. 뒷면의 하얀 공간을 가만히 만지다가, 거기에 또 다른 문장을 덧 씌었다.


쓰는 건 그 잠시를 기억하려는 일.


적은 메모지를 책 속 어딘가에 끼워 넣었다. 어느 페이지였는지는 상관없다. 다만 언젠가 이 책을 다시 펼쳤을 때, 그 문장이 나를 먼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책갈피는 책 옆에 그대로 두었다. 언젠가 또 다른 날, 또 다른 마음으로 이 페이지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햇빛이 더 기울었고, 책의 표지가 은은하게 빛났다. 눅눅해진 손으로 그 표면을 한 번 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의 빛은 아직도 내 책상 위에 남아 있다. 읽는다는 건 잠시 살아보라는 응원, 쓰는 건 그 찰나를 기억하려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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