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수집가

by 무무

1


마감하겠습니다.


이 소리는 언제 들어도 경건하다. 손님들은 문 쪽으로 향하지만, 몇몇은 여전히 작품 앞을 떠나지 못한다. 꼭 어떤 작별 인사를 미루는 연인들 같은 그들을, 나는 재촉하지 않고 쳐다만 본다. 이 말은 오늘 하루의 마지막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1+1은 2인 것처럼 이제는 매일 그 주문을 의식하지 않고 말을 한다. 전시실의 불빛이 서서히 꺼지면, 그제야 사물들이 느슨해진다.


“자, 모나리자 씨, 이제 환하게 웃어도 돼요. 그러다 주름 생기겠어요. 이삭 주우시는 분들은 스트레칭 좀 하시고. 고흐 씨,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오늘은 바빴으니깐 특별히 봐드릴게요. 거기 아테네 학당 분들은 제발 그만 좀 떠드시고, 이제 마스크는 좀 벗어요. 오필리아 씨는 아직도 물속이야? 아휴 그러다 감기 걸리겠어, 정말.”


이따금 유물들에게 쓰잘머리 없는 말을 건다. 누군가는 농담이라 부르고, 누군가에게는 걱정을 끼치지만, 시간의 먼지를 달래는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사람들은 이 유리 벽 너머를 들여다보며 진짜냐고 의심한다. 웃으며 ‘진짜였어요. 단지 당신보다 조금 더 오래 진짜였을 뿐이에요.’라고 속으로 대답한다. 낮 동안은 유물보다 인간 쪽이 바쁘다. 학생들은 숙제를 위해 사진을 찍고, 관광객들은 기념품 가게로 곧장 향한다. 그런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억은 소리를 남기려 들지 않는다. 박물관 바닥이 조용한 건, 발자국이 아닌 망각의 소리로 덮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퇴근 한 시간 전부터는 유리 표면을 닦는다. 그때마다 얼굴이 비친다. 반사된 나는 유물과 구분할 수 없다. 나 또한 하나의 전시물처럼, 매일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고 누군가의 발길 뒤에 남겨진 시간을 닦아낸다. 그래서 이 일을 사랑한다. 이곳에는 끝나버린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끝을 돌보는 일은 따뜻하다. 유리 안에서 고요히 잠든 것들이 사실은 나보다 생생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일 것이다.


박물관이란 건, 인간의 죄책감을 아름답게 진열한 곳이다. 사라진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전시를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사라짐을 견디지 못해 전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에 수십 번씩 구원을 닦는 셈이다. 오늘은 어떤 한 작품 앞에서 유난히 오래 멈췄다. 이름 모를 낡은 노트 한 권이었다. 전시 설명에는 <어느 무명작가의 여행 일지>라고 쓰여 있었다. 누가 쓴 건지, 왜 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미어졌다. 유리 안쪽의 과거가 내 현재를 건드렸다. 그럴 때면 역사는 돌에 새겨지지 않고 먼지가 앉을 때마다 새로 써진다는 어떤 철학자의 말이 함께 꽂혔다. 나는 그 먼지를 닦는 사람이다. 오늘도, 그저 덜 망각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리 위의 시간들을 문지른다. 유리 진열장 속 도자기가 미세하게 빛을 먹고, 오래된 석상이 숨을 쉰다. 그 순간에 나는 박물관의 관리인이 아니라 통역사가 된다.

출입문 앞의 시계는 9시 57분을 가리킨다. 이상하리만치 매일 이 시간에 나는 시간이 같이 마감된다는 생각을 한다. 문을 닫고 나면, 건물 안의 모든 것이 멈춘다. 불이 꺼진 전시실을 한 번 더 돌아본다. 그림과 조각, 진열장 속의 유물들이 저마다의 자세로 밤을 맞이한다. 그들 사이에는 침묵의 질서가 있다. 세상의 소음을 멈추고, 오직 존재의 표면만 남는 이 시간에, 사물들이 자신의 이름을 망각하고 존재한다. 박물관은 숨을 고르는 듯 정적에 잠긴다. 홀로 남은 이 넓은 홀 중앙에 멈춰 서서 전시물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다들 잘 버텼어요.


이 말을 유리 안의 그림들에게, 또는 유리 밖의 나에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퇴근길에 박물관 뒤편의 벤치를 지난다. 거기에는 문화재에 손대지 말라는 경고의 표지판이 하나 있다. 그 문구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살짝 고쳐 읽는다.


기억을 함부로 닦지 마시오.


박물관은 도시의 밤보다 더디게 움직인다. 공기조차 박제된 것처럼 아늑하고, 전시실은 고요한 심장 박동을 품고 있다. 하루에 한 번, 이 정적을 벤치에 앉아서 모두 떠난 자리에 앉아서 사물의 호흡을 머금으며 하루를 돌아본다.



2


하루의 시작은 관람객이 들지 않은, 그래서 내 발자국 소리만 울려 퍼지는 전시실에서 시작된다. 어제 관람객이 우연히 했었던 이야기를 듣고 전시대 앞, 손바닥만 한 종이 카드를 빼온다. 청자 매병에서 고려청자 매병으로, 단어 하나를 집어넣는 이 단순한 일에 한나절이 걸릴 때도 있기도 한데, 정확하게 설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대라는 두음절의 단어 하나로 붙으면, 사물의 운명이 달라진다. 언어가 사물의 그림자를 다시 드리우는 순간이라 문장을 다시 쓰듯, 묘한 기분이 든다.


오후에는 조명을 다듬는다. 유물의 조도는 항상 논쟁거리라 밝으면 사물이 늙고, 어두우면 이야기가 죽는다. 빛의 세기를 조절하는 일이 문장의 호흡과 닮아서 쉼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하나의 진실이 달라지기에 신중에 신중을 더한다. 빛은 단순히 본다는 행위가 아니라, 무엇을 아직 보지 못했는가를 드러내는 행위라 늘 조심스럽고 은밀하다.


요즘은 다음 달에 있을 새로 열릴 전시 준비를 한다. 유물을 하나씩 천으로 감싸고, 포장 상자에 넣는다. 일종의 장례식이지만 슬픔이 아니라, 이야기를 덮어두는 의식이다. 한 시대를 봉인하면서도, 그 안에 남은 온기를 느끼며 다시 쓰여질 이야기가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때가 오면 꺼내면 된다. 정리를 마친 상자를 전시장 지하 창고에 옮겨 놓은 뒤, 잠정적 쉼표를 물끄러미 찍는다.


관람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중간중간에 관람객 동선을 점검한다. 바닥에 붙은 발자국 스티커를 새로 붙이기도 하는데, 이럴 대면 내가 길을 설계한 사람이 된다. 사람들이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돌아보는지, 그 동선을 조정하는 일은 마치 문단을 나누는 일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잠깐 멈추십시오.>라는 그 문장이 없으면, 관람은 이야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폐관을 알리는 방송을 하기 전에 기록 보관실에 들어간다. 먼지, 종이, 잉크, 그리고 시간의 냄새가 한데 뒤섞여있다. 사물의 무덤이면서도 내게는 도서관이기에 여기에는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어떤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문장 사이에서 들리던 숨소리 같은 것들을 사물 속에서도 듣는다. 그건 여전히 무언가를 말하려는 소리를 듣는 게 나의 업이다. 모든 사물은 자기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그저 그 언어를 조금 더 알아듣게 다듬는 사람, 세상이 잊은 이야기들을 다시 읽는 사람이라, 나는 글을 쓸 필요가 없다. 이야기를 쓰는 일은 끝마치고 나면 사물들은 자기들만의 언어로 세상의 다음 문장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저 그걸 들을 준비만 하면 된다.


아무도 없는 박물관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유리와 먼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유물들을 살핀다. 어제와 혹시라도 다른 게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어제의 표정을 그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표정 속에서 다른 이야기를 읽는다. 이 일은 유물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사물의 이야기 구조를 복원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18세기 도자기 앞에 서면 그 표면의 균열이 문장부호처럼 느껴진다. ‘,’, ‘…’, ‘—’ 같은 것들은 세월이 쓴 문장이고, 그 문장을 이어 읽는 건 독자다. 그 문장에는 굽은 허리, 식지 않은 불, 그리고 식탁 위의 웃음이 있다. 박물관의 밤은 그런 이야기들이 묻혀 있는 신세계다.


어느 날 동료가 그렇게 혼잣말처럼 적는 게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웃으며 사물들이 나한테 들려주는 문장들이라고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들었다고 믿는 이야기들이라고는 더더욱 못했고, 대답을 했어도 그 동료는 정확히 이해를 못 해 갸웃했을 것이다. 대답 대신 웃으며 노트를 덮었다. 이야기를 설명하는 순간, 언제나 힘을 잃는다. 점심시간이면 조각상 뒤에 앉는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 간격을 좋아한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박물관이 마치 거대한 서랍 속 이야기의 소리처럼 들린다. 이야기들은 단정하지 않고, 문법도 없지만, 그 무질서 속에서 삶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본다.



3


오늘은 밤새 혼자 남은 전시실을 걷는 날이다. 낮 동안 수백 명의 눈동자가 머물던 유리 진열장들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침묵은 대화의 반대가 아니라, 그 연장이었다. 불빛이 꺼지면 사물들이 속삭이기 시작하고 조심스레 유리 진열장 앞에 선다. 거기에는 청동 거울 하나가 있다. 빛을 잃은 거울은 더 이상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너도 한때 세상을 비췄겠지. 지금은 그 세상이 너를 비추고 있구나.


혼자 속삭인 말이 공기 속에 섞여 울린다. 이곳에는 19세기 초의 오래된 지도 한 장이 걸려 있다. 걸음을 멈추고, 눈을 해안선을 따라 이동한다. 지도는 언제나 부정확하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과 같아서 누군가는 그려 넣고, 누군가는 지워 버린다. 결국 진실이라는 것은 선의 위치가 아니라, 그 선을 그리려 했던 손의 의지에 있다고 생각했다. 공룡 화석 앞으로 이동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전시물이다. 낮에는 늘 셀카봉이 쏟아졌던 자리, 지금은 터무니없이 고요하다.


이렇게 거대한 생명이 흙으로 돌아가면, 결국 남는 건 꼬리뼈 하나쯤이군.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보고 역사라고 부르는데 참 아이러니하네.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섞여 있었다. 화석을 응시하다가 아마도 당신네들이 살아있던 때보다 지금이 더 시끄럽다고 했을 것 같다. 그림 앞으로 무대를 옮기면 한 화가가 그린 정물화, 식탁 위에 놓인 레몬과 껍질 벗긴 사과가 있는, 자꾸만 눈이 가는 이 그림 앞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도대체 사물들은 언제부터 감정이 없어졌을까? 사람이 그림을 그릴 때, 그건 사물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사물에게 말을 걸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는 철학자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답한다.


말을 걸었는데, 아직 답이 없을 뿐이지.


고대 목제 조각 앞에 멈춘다. 조각의 눈이 반쯤 감겨 있다.


그대는 우리가 잊은 것을 기억하고 있겠죠?


순찰 시간이 끝나갈 무렵, 넓은 홀 중앙의 의자를 갖다 놓는다. 천장의 그림자와 벽의 어둠이 겹쳐진다. 시계를 보니 2시 13분이다. 이 시간은, 어쩐지 모르는 사람의 기억 속에도 있었던 듯하다. 슬리퍼를 신고 손전등을 꺼내 들고 불 꺼진 박물관을 한 바퀴를 둘러본다. 빛을 전시품에는 비추지 않고, 벽과 그림자 사이를 더듬는다. 사물들이 아닌, 그 사이의 침묵을 관찰한다. 정문 앞으로 가서 박물관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오늘의 이야기가 끝났다는 뜻이다. 불이 꺼진 이곳에서조차 세상은 여전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걸 나는 믿는다. 그건 목소리라기보다, 어둠 속에서 부유하는 뜻 모를 문장이었다.


오늘도 아무것도 쓰지 못했군. 그저 이야기들이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었을 뿐.



4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소개하기 전, 이야기 수집가라고 덧붙인 후 말을 시작한다. 직업이라기보다는 습관에서 나온 꿈이자 현실이고 표현이었다. 우표를 모으고, 식물을 키우듯이 나는 사람들의 말을 모았다. 길거리의 말들, 버스 정류장에서 흘린 말, 전시실의 관람객이 남긴 감탄사 한 조각까지 스치는 모든 말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몸의 기억이었다. 그것들을 작은 종이에 옮겼고,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는 그런 종이들이 가득했다. 어떤 것은 카페의 영수증 뒷면이고, 어떤 것은 지하철 노선도가 반쯤 지워진 티켓이기도 했다. 그것들을 꺼내어 날짜를 적고, 상자에 넣었다. 언젠가 그 말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노트의 이름을 <사람의 언어가 만들어낸 별자리>라고 적어 놓았다. 가끔은 박물관의 휴게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불이 꺼진 전시실을 지키던 그 직원이 커피를 내오며 웃곤 했다.

또 이야기 찾으러 오셨어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보다 침묵으로 더 많은 걸 나눴다. 때로는 벽화 앞에 앉아, 그림 속 인물에게 다른 대사를 붙여보곤 했다. 그게 나만의 유머였다.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고대 토기 옆, 사람들이 잘 들르지 않는 전시실이었다. 거기 앉아 한참 동안 사물들을 바라봤다. 아마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에 의해 기억되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다. 토기는 입을 열지는 않지만, 그 안에 어떤 문장이 들어 있는 듯 보였다. 어느 날 노트를 펼쳐 모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었다.


어제 본 그림은 내 마음 같았어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쓰던 찻잔이랑 똑같네요.

저는 이걸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좋네요.


그 말들을 읽었다. 문장들은 닮은 구석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하나의 감정으로 향했다. 그건 말의 중심이 아니라, 말 사이에 있는 여백이었다. 이야기를 모은다는 건, 잊힌 것들을 불러내는 일이었다. 멀리서 보면 어두운 상자 같은 이야기들 안에는 여전히 수천 개의 시간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언젠가 내가 모은 말들과 만나게 될 거라 믿고, 일어섰다.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아.


그건 어쩌면 2시 13분의 사내일 수도 있었고, 책갈피를 모으던 청년일 수도, 등대를 지키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저 사물의 침묵을 듣던 나였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우리가 남겨야 하는 것은 이야기의 형태를 한 시간 들일 것이다. 오늘도 또 하나의 시간이 남겨졌다는 사실에 미소를 머금었다. 불을 끄자 완전히 어두워졌다. 모든 어둠에는 이야기가 한 문장쯤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쩐지, 그 속에서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등대의 파도 소리와 책갈피의 메모들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그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대화였다. 그 대화 속에서야말로, 인간은 살아 있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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