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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Sep 14. 2023

여름극복의 음식

아주 오래전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빙과는 ‘더위사냥’이었다. 더위를 몹시 타는 남편은 여름날이면 더위사냥을 몇 개씩 사다 냉동실에 쟁여놓고 하루에 한 개씩 꺼내 먹는 것을 굉장한 낙으로 여겼다. 더위사냥의 가운데 면을 보면 껍질을 벗길 수 있도록 조그만 손잡이 같은 부분이 있는데, 그곳을 잡아당기고 절반으로 뚝 쪼개면 두 사람이 사이좋게 한 쪽씩 나눠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별로 좋아하는 맛은 아니어서 좀 더 두툼한 쪽은 항상 남편의 차지였다. 커피 맛이라고는 하지만 커피는 1%도 함유되지 않았을 끈적끈적한 단맛의 얼음덩어리인 더위사냥은 그렇게 에어컨도 없는 무더운 여름을 잘 보내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지금 사는 집은 에어컨이 쌩쌩하니 돌아가서 그런가… 더위사냥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갔다가 얼른 돌아올게. 저녁으로 콩국수를 먹자.”


오늘 아침 출근하는 남편의 말이다. 콩국수 이야기는 며칠 전부터 나왔지만 내가 바빠 계속 미뤘다. 이제 더 미룰 수 없다. 얼른 돌아오겠다니… 회사 일도 내 일하듯이 열심이던 남편은 언제부터 집에 오는 것을 좋아했을까? 원래 집에 일찍 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얼른 돌아온다는 말은 퇴근 시간이 5시이니 집에 도착하면 대략 5시 30분 정도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아… 정말 한 시간만 늦게 오면 좋겠어.’ 저녁을 같이 먹기에는 너무 시간이 이르다.



여름이면 더위사냥을 좋아하던 젊은 날이 있었고, 그때처럼 젊지 않은 요즘은 콩국수를 찾는다. 원래 남편은 한여름에는 집에서 밥을 하지 못하게 한다. 더위를 싫어하니 집에서 불을 사용하여 요리하는 것도 싫어서 여름은 주로 외식을 하는 편이었다. 웬만한 음식은 다 먹어봤으니, 식당에서 뭘 시켜도 다 아는 맛이다.  이제 다시 집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나 싶다. 이 여름에 집에서 식사하자고 콩국수를 주문하는 것을 보니…



여름이면 먹는 행위가 너무 귀찮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식사 때가 돌아오면 날도 더운데 밥까지 먹어야 하는 그 번거로움이 싫어서 ‘식사 대체 알약’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어서 배가 고프지도 않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는 알약이 곧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도 넘었는데 인간의 과학기술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끼니를 알약으로 대체하고 싶은 나의 허황한 아이디어는 과학자의 흥미를 끌 만한 연구 주제가 못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알약이 아니라, 날이 더우면 입맛을 살려줄 맛있는 음식을 찾아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먹는 즐거움을 알약 따위로 대체하면 좋겠다는 내 생각은 설득력이 없는 어린 시절의 투정이었다. 나조차도 이제는 그 생각을 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다.



국수의 쫄깃한 면발과, 고소한 콩 국물, 채를 썬 오이의 상큼함을 대신할 알약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이 사는 동안 느끼는 ‘먹는 즐거움’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 옛날 ‘더위사냥’이 남편에게 주었던 즐거움만 생각해 보아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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