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식물가꾸기4

by 오동

화분을 키우다보면 식물과 함께 따라오는 것은 다름아닌 '벌레'다. 집에서 화분 몇 개를 소소하게 키울 때는 벌레가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는데, 베란다 텃밭을 만들면서 벌레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벌레가 왜 생기는지 AI에게 물어보니 여러가지 이유를 알려줬는데, 그 중 마음에 들어 온 답변은 이것이었다. '벌레는 자연 생태계의 일부로, 먹이사슬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텃밭에 벌레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합니다.' 또 흙에 수분이 너무 많거나, 척박하거나, 과도한 비료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벌레가 생길 수 있다고하니, 벌레와 식물가꾸기는 뗼레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나는 벌레를 보면 소리지르며 달아나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벌레를 채집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벌레에 대해 어느정도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주의 단층주택에 혼자 머물렀을 때 손바닥만한 커다란 거미가 집에 출현해서 울기 직전이 된 적이 있었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손님이었다. 거미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30분 넘게 대치를 하다가 결국 내가 포기하고 집 밖으로 나갔다. 거미는 굉장히 똑똑한 곤충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서는 '여긴 거미의 집인데 내가 잠시 머물다가는 거라고' 머리에 되뇌이며 조심조심 지냈던 기억이 있다.

다음날 나무 공방에 우드카빙을 체험하러 가서 숙소에 거미가 나온 일을 이야기 했더니 '그래도 거미는 익충이잖아요' 라고 하셨다. 익충과 해충이라는 분류도 부단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 같지만, 단독주택에 살다보면 수많은 벌레들을 만나게 되는데 거미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고마운 벌레라고 하셨다. 이 얘기를 듣고나서 두려움이 조금 덜 하긴 했지만 다시 숙소에서 거미를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식물을 키우다보면 벌레를 함께 얻는 것처럼 대부분의 일들이 좋은 면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직장에 다니다보면 1년에 2번 정도 주기적으로 무기력한 시기가 찾아온다. 주어진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기간으로, 일명 '노잼(No재미) 시기'이다. 의욕이 넘칠때는 일하는 중간중간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하고, 정리하며 알찬 근무 시간을 보내는데, 노잼 시기에는 그냥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앉아 의미없는 연예 기사들을 스크롤하게 된다.

흙에 사는 벌레 중에는 좋은 흙의 지표가 되는 것도 있는데, 바로 지렁이가 대표적이다. 지렁이가 많다는 것은 흙에 유기물이 풍부하고, 흙이 부드러우며, 독성 물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자신의 흙에서 지렁이가 발견되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렇게 벌레라고 다 유해한 것은 아닌 것처럼, 무기력한 시기를 헤쳐나가다보면 또 다음 시기를 헤쳐나갈 원동력을 얻곤 한다.


라고 일상생활에서 교훈을 발견하며 글을 마치려고 했으나, 최근에 김신회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에서 결론을 굳이 교훈적인 내용으로 마무리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의 일상은 교훈으로 가득차 있기 않기 때문에 모든 글을 교훈적인 내용으로 마무리하려고하면 너무 진지해질 뿐이라고. 그리고 글을 쓴 후에 꼭 물어보라고 하셨다. '그 말 진심이야?'

그래서 마지막 문장을 다시 생각해보니 무기력한 시기를 헤쳐나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그냥 무기력한 시기에는 물에 둥둥 떠 있는 사람처럼 부유해있다보면 물이 빠지는 시기가 올 뿐이다.


<최재천의 곤충사회>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죽고 사는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생태적 전환을 해야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자화자찬은 이제 집어던지고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서 다른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공유하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 공생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손 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손 잡고 물 위에 둥둥 떠 있자. 벌레도, 노잼시기도.


출처: chatGPT. 바다수달은 실제로 물 위에서 잠을 잘 때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 앞발을 잡고 잔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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