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좋은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하게 된 이유는 일상에서 좋은 제품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좋은 제품을 쉽게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편집샵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좋은 제품을 소개하는 전시도 눈에 띄게 다양해졌다. 이런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하여 우리는 좋은 제품과 더 좋은 제품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이 제품은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제품보다 더 좋은 것이고, 나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개인적인 '안목' 이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개인적 '안목'에 의한 제품에 대한 가치 판단이 일상화되는 순간이 바로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으로 우리가 좋은 서비스를 디자인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는지 살펴보자. 일상에서 좋은 서비스와 더 좋은 서비스를 구별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 '안목'이 형성되는 순간이 서비스 분야에도 왔을까? 이미 특정 세대에게는 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세대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적정 여건에 대하여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18-30세 사이의 한국인들은 그 이전 세대와는 정말로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다. 그 이전의 세대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공유 서비스, 금용 서비스, 배달 서비스, 맛 집 추천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40-50세대에게는 이러한 새로운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의 축적이 아쉬운 편이다.
공유자동차, 공유 자전거, 공유주택, 공유 주방, 공유사무실, 공유 킥보드 등등 공간과 제품을 함께 사용하는 공유가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공유에 대한 경험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디지털 통화에 대한 경험, 주문과 배달에 대한 경험, 맛 집을 찾아가고 예약하는 경험 등 모든 것이 새롭고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경험이 40-50세대에게도 제대로 축적되고 있는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40-50세대는 공유 경험 자체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디지털 통화가 없어도 불편함이 없다. 맛 집도 아들/딸 세대가 찾아주고 추천받는 경험은 있지만, 직접 찾아가는 경험의 축적이 많지는 않다.
오늘날 18-30세 사이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그 이전 세대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이 경험을 매일 축적한다. 그리고 그 축적된 경험이 그들 만의 '안목'을 만든다. 이 '안목'이 무서운 것이다. 좋은 것이 왜 좋은 지는 알기 때문이다. 이 '안목'은 더 새롭고 더 좋은 것을 디자인하게 되는 가장 큰 무기가 된다.
이야기를 바꿔서 다시 제품 디자인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가 좋은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진 시기를 말할 때, 좋은 제품으로부터 더 좋은 제품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면서부터라고 말한다. 많은 좋은 제품을 사용하다 보면, 이것 저것 고치고 싶은 개인적 욕망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기존의 잘 된 디자인 제품으로부터 배우지만, 그 제품의 사용 경험을 통하여 또 새로운 디자인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 '안목'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전통은 예술 교육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일단 많이 보고 경험해 봐야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 찾을 수 있다. 근대 예술 교육가들은 대가들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서부터 교육의 시작을 본다. 많이 경험해봐야 안목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통 예술 교육 기관과는 달리, 오늘날의 서비스 디자인 교육기관의 작동 방식에는 분명 다름이 존재한다. 서비스 디자인 교육을 위해서는 기술, 마케팅, 인간에 대한 이해 부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서비스 디자인 교육기관이 기술과 프로세스와 같은 테크닉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교육의 제공자인 40-50세 세대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18-30 세인들이 경험하는 서비스 자체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의 축적이 부족했기 때문에, 대안적으로 기술과 프로세스에 치중하는 교육체계를 구성하지 않았나 싶다.
교육 기관의 목적은 개인의 안목 형성을 가속화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비스 디자인 교육기관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차이가 나는 서비스 경험 '안목'에 대한 공통분모를 빠르게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 서비스 제공자와 수혜자에게 일방적으로 '안목'을 전수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서로 존중하고 '안목'에 대해 서로 학습해야 한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되도록 많은 서비스를 다른 세대가 공동으로 체험하고 공동으로 '안목'을 성장시킬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한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세대의 다른 관점을 비교/토론/비평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적으로 '안목'을 키우고 가꾸어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안목'이 있는 서비스 디자이너를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