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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Mar 27. 2022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 1

요즘 중 3의 생활이야기

"지금 가면 되겠지?"


"아니야. 벌써 다 팔리고 없을 거야!"


"없으면 어떡하지?"


희람이는 편의점으로 가는 동안 생각했다.


"어제, 분명히 지금 이 시각에 들어온다고 했어!"


"어른인데 거짓말을 하진 않으시겠지!"


다짐하며 걸어가는 희람이의 속내는 점점 타들어 갔다.


희람이가 사고 싶어 하는 것은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이었다. 지금 갑자기 인기가 많아져서 전국적으로 품절사태를 겪고 있는, 약간은 신맛이 특이한 간식거리였다. 원래 6~7년 전에 나왔던 상품인데, 유행이 지나 생산이 뜸했던 제품을 유명 인플루언서가 SNS상에 재조명하면서 갑작스레 인기가 급부상했다. 지금은 구하고 싶어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살 수 있는 간식이 되었다.


진짜로 창조성을 촉발하는 성분이 들어있는지는 따져봐야겠지만, 또래들로부터 "빨강-노랑-초록" 순으로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이 시럽은 바로 먹으면 안 돼! 순서대로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열심히 모아서 난 나중에 먹을 거야!"


희람이는 한 번 더 다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현재 중 3인 희람이에게는 새벽에 일어나서 등교하는 일이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 데다가 야식을 먹는 버릇이 생긴 후에는 꼭 새벽에 잠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근본적으로 희람이의 학창 생활을 바꿔놓았다. 학원 다니는 것을 포기한 희람에게 학교는 유일하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만나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가 그런 곳이 아니다.


학우끼리는 멀리 떨어져 앉아 있어야 했고, 수업 시간에는 칠판만 멀뚱멀뚱 보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점심시간에도 친구와 떨어져 혼자 칸막이 공간에 들어가 밥을 먹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축제도 동아리 모임도 모두 축소되었고, 심지어 공연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희람이의 생각에 학교는 로봇처럼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사람이 유리한 공간이고, 창조적이라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사는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희람이는 수업 시간에 "인간은 원래 창조할 때, 가장 집중하고 몰입의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 가장 창조적이어야 하는 학교 공간이 너무나도 지루하고 수동적인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있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를 한다고 해도, 학교 외의 곳에서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학교 공간에서 시험공부 준비를 하지? 하는 의구심이 희람이의 생각을 지배했다.


학교가 나에게 고도의 집중과 몰입감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고도의 집중과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야 했고, 지금 희람에게는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을 구매하는 것이 그 이벤트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드디어 8시 정각에 맞춰 편의점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 시각에 손님은 없었지만, 그래도 얼른 카운터의 편의점 사장님에게로 가서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 들어왔나요?"라고 물어야 했다. 편의점 상품진열대를 살펴볼 여유조차 없었다.


"왔구나! 아줌마가 이것 때문에 오늘 혼이 났어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어제 약속을 했는데, 오늘 네가 오기도 전에 다섯 명이나 이 제품을 찾더라고..."

"내가 어제 너에게 한 약속한 게 있어서 오늘은 이렇게 챙겨주지만, 내일부터는 자신이 없구나."


이러시며 주위를 살펴보시고, 미리 비닐봉지에 담아두었던 시럽을 챙겨주었다.


희람이는 내가 그 말로만 듣던 VIP 손님이 된 것인가?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꼬깃꼬깃한 비닐 지에 담긴 간식을 받았다. 새벽마다 편의점에 찾아와 야식을 구매하던 나를 주인은 VIP로 생각했었구나 싶기도 했다.


희람이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비닐  봉지를 열었다. 아쉽게도 희람이가 그렇게 원했던 빨강, 노랑, 초록색의 시럽은 없었다. 대신 효능이 잘 안 알려진 핑크색, 연두색의 시럽이 두 개가 담겨있었다. 시럽을 담은 플라스틱 용기가 조명을 받아 신비로운 색을 내고 있었다. 희람이는 궁금했다. 이런 영롱한 색을 내는 시럽을 마시면 도대체 어떤 종류의 창조성이 촉발될까? 혹은 창조성이 진짜 촉발되는 것은 맞을까? 반신반의하며 첫 번째 시럽의 입구 부분을 손으로 뜯었다. 희람이가 원하던 색상의 시럽이 아니었기에, 바로 먹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끈적거리는 시럽의 일부가 손가락 사이로 묻어났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몰라도 핑크색 시럽의 첫맛은 씁쓸했다. 희람이가 상상했던 그런 달콤하고 환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이 시럽을 먹고 자면 내일 아침에 어떤 종류의 창조성이 촉발될지 아무도 모르지!"


희람이는 시럽을 먹으며 오늘 밤은 야식을 걸러야겠네.. 생각했다. 아무래도 편의점 아주머니가 나를 VIP로 생각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왜 편의점 VIP가 된 거지? 내가 너무 자주 야식을 먹기 위해 들렀다는 것을 아주머니는 다 기억하고 계셨던건가?"라는 생각에 조금은 창피한 마음이 몰려왔다.


이 시럽을 다 마시면 오늘 밤은 야식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것이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의 약효인가? 희람이는 벌써부터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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