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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Sep 03. 2022

9월 3일 그림일기

나름 재미있게 그리시네요

그렇다.


재미다. 이제야 재미를 알아버렸다. 더하여 보는 이에게도 그 재미가 전달되는 낌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름 재미있게 그리시네요!


크로키 선생님의 한마디가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그동안 얼마나 가슴 졸였던가!


그림에 잘 그리는 것이란 개념은 애초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잘 그리려고 그리도 애를 썼었다. 나름 재미있게만 그리면 되는 것이 그림인데 말이다. 재미있게 그리면 그 재미가 그대로 그림에 표현되고, 그리는 사람의 개성으로 보는 이에게 감동으로 전달될 수 있게 될 때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림에 나타난 선이 바로 그리는 사람의 욕망과 자유로움, 고집, 수줍음, 소심함 그리고 바로 그 사람으로 표현되는 것인데, 왜 그리도 "잘" 그리려고만 했을까? 나는 여태껏 왜 "잘" 그리려고 함으로써 독창적이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일까? 에 대해 이제야 비로소 후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에 나타난 재미있는 선이 바로 그 사람의 개성인 것이고, 그래서 독창적인 것이고, 그래서 차별화되는 것이고, 그래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때가 되어야 그림 그리는 재미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창작 분야는 그래서 유별나게 독특한 분야다. 자기 것을 만드는 기술을 열심히 연마해야 하지만, 너무 "잘"하려고만 하면 안 되고, 자기의 것을 찾아 차별화해야 하지만, 너무 못하는 것은 용서가 안 되는 분야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를 수없이 반복하며, 수행자의 심정으로 오랜 기간 꾸준히 수행해야만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분야라고 믿는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창작이 일어난다. 그리고 너무 "잘" 쓰려고만 하면 개성이 없어지고, 재미도 없는 글이 나온다. 자기 안에 있는 영혼을 끄집어내 영혼이 대신 작업하게 하는 고도의 정신 수양과 집중이 필요한 분야임은 틀림없다. 자기를 믿는 수밖에는 없다.

 

창작 분야에 있는 수행자로서 너무 잘하려고만 하고, 너무 잘 묘사하려고만 하면 영원히 영혼이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그날의 기분에 따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마구 손이 가는 그대로를 스크린에 옮겨보는 것도 좋다. 어느 날은 영혼이 깨어나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글을 써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우기도 힘들고 가르침을 주기도 힘든 분야가 바로 창작 분야이지만, 한 번이라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잘하셨네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진정으로 창작을 즐길 수 있게 되는 분야가 창작 분야다. 그다음부터는 재미있기 위하여 노력할 수 있다.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P.S. 그래도 글쓰기에는 나름의 스승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글쓰기 선생님을 찾아 나서야 할 때인가 보다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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