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부모님 호출이 잦다. 오늘도 새벽부터 전화해서 내려오라고 하신다. 부엌 형광등이 고장 나서 깜깜하다고 하신다. 엊그제는 장을 봐서 배송해드렸는 데, 오늘은 부엌 등을 고치러 또 내려가야 한다.
새벽에는 형광등을 구할 방법이 없다. 아침 일찍 부모님 댁에 내려가서 일을 보고 다시 올라오려면, 우리 집 거실에 설치돼 있는 형광등을 사용해야만 했다. 우리 집 거실에는 총 10개의 형광등이 있다. 그중 2개를 빼서 어머님 댁 부엌에 설치해드려도 크게 지장은 없을 듯했다.
거실 등 해체작업은 매번 할 때마다 스릴이 있다. 우선 의자 위에 올라가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등 갓을 떼어낼 때 조심해야 한다. 눈으로는 등갓이 결합되어 있는 구조가 보이지 않으니, 손의 감각만을 믿고 작업해야 한다. 한 손으로는 등 갓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갓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더듬어가며 연결 부위를 찾고 등갓을 떼어내야 한다. 이때 자칫 잘못하면 등 갓을 놓치게 되거나 혹은 미끄러지는 등 갓을 잡기 위해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때의 감정은 묘하게 아득하다.
다행히 우리 집 거실 전등갓은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있다. 가볍기 때문에 목을 꺾고 팔을 들어야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예전의 등 갓은 대부분 유리 재질로 되어있었다. 유리라서 무겁기도 했지만, 자칫 잘못하여 놓치기라도 하면 진짜 큰 일이다. 이제 유리 대신 투명 아크릴 재질을 많이 사용하는 듯했다. 가볍고 또 투명도도 유리만큼 좋았다. 최근에 오래된 액자의 프레임을 다시 했는데, 유리 대신 투명 아크릴을 전면부에 사용하니 가볍고 좋았다. 소재가 좋아지면 생활도 편해진다.
전등갓을 빼면 예전 형광등을 딱 반 접어놓은 듯한 모양을 한 형광등이 보인다. 깜빡이 등은 아닌 데, 묘하게 예전 형광등을 닮았다. 기술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우수한 지는 모르겠지만, 설치는 예전보다 훨씬 쉬워진 것 같다. 예전에 자주 사용하던 형광등의 모습은 양쪽에 연결부가 있어 한쪽을 잘 맞추어 끼우고 반대쪽을 구멍에 맞추어 끼우는 작업이 섬세해야 했다. 의자에 올라 목을 꺾고 두 손을 위로 올린 채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예전의 형광등은 깜빡 등이었다. 깜빡깜빡하고 등이 켜져서 그런 이름을 붙였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 집은 전기세가 덜 든다 하여 거의 모든 공간에 형광등을 설치하셨다. 형광등 아래에서는 얼굴빛이 창백해 보였지만, 그땐 모두가 형광등을 사용해야 하는 줄 알았다. 백열등은 온화하고 따뜻한 색을 뿜었지만, 너무 뜨거웠고 무엇보다 쉽게 고장 나서 자주 갈아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엌에 있는 식탁 위에는 그래도 백열등을 사용하는 샹들리제를 설치하셨다. 손님이 오시는 날에만 샹들리제에 빛이 났다. 샹들리제에 있는 백열등은 소켓 사이즈가 작은 것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샹들리제용 백열등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또 백열등 자체가 쉽게 고장 났다. 최근에 백열 등처럼 빛나는 필라민트를 LED 기술로 재현한 제품이 나와서 기존의 백열 등을 전부 교체하였다. 교체하기 전까지 샹들리제는 그냥 빛이 없는 유리 장식품에 불과했다. LED 백열등은 3W 소비전력으로 60W 정도의 전구색 밝기를 재현한다. 아쉽게도 LED 백열등으로 교체한 후에는 집에 손님이 자주 오시지는 않는다. 요즘 샹들리제는 아주 가끔 생일날, 설날, 추석 날에만 불을 켠다.
형광등에 대한 추억은 학창 시절을 강제 소환한다. 형광등은 깜빡거리기도 하지만 지지직거리는 특유의 기분 나쁜 소음을 만들어 낸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강제로 야간 자율 학습에 차출되었다. 자율학습의 형태로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선생님들은 출석도 확인하시고, 조는 학생들은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스터디룸의 학교 버전이었다. 6교시를 모두 마치고 집단 스터디룸에 들어가서 시험 대비 공부를 하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생들로 가득 찬 교실 한 편에서는 초대형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탁해진 공기 때문에 너무나도 졸렸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때 나는 강의실 형광등 불빛에는 냄새가 있다고 믿었다. 병원 수술실에서나 사용할 법한 소독약 냄새다. 형광등 불빛은 수술실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집중할 때 필요한 불빛이라고 믿었다. 학생들도 공부에 집중하라고 강한 형광등 불빛에 노출시켜 놓았다고 생각했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형광등은 구석구석 쭈그리고 누워 쪽잠을 청하는 친구들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라고 켜놓은 불 빛 같았다.
그런 형광등을 나는 아직도 우리 집에 사용하고 있다. 사용하기는 예전보다 더 편해졌지만 아직 소독약 냄새가 난다. 형광불빛 아래서는 집 안이 항상 깨끗하고 청결해야 만 할 것 같다. 내가 형광등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