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과 서비스를 함께 개발하기
제품과 서비스를 함께 개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기획이 중요하다.
기획 중에서도 프로덕트 기획이 아닌 프로젝트 기획이 중요한 시대다. 프로젝트에서는 건축, 공간, 제품, 서비스, 시스템,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행위까지를 모두 디자인해야 한다. 그것이 요즘 디자인이 하는 일이다. 디자인 영역이 확장됐다는 것이지 디자인이 하는 일이 변한 것은 아니다. 디자인 영역이 확장된 만큼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시대이기에 기획이 더 중요해진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획이란 더 나은 디자인 협업 작업을 위한 뇌 사용 설명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디자이너를 위한 뇌 사용 설명서는 방법론이란 이름을 달고 세상에 이미 많이 나와있다. 디자인 씽킹이 대표주자로, DOUBLE DIAMOND 혹은 4D(Discover, Define, Develop, Deliver)란 이름으로 업계에서 꽤 많이 사용한다.
이미 강력한 디자인 씽킹이란 뇌 사용 설명서가 나와있지만, 패턴 언어에 주목하고 싶은 이유는 교육 현장에서 나름 활용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패턴 언어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레고처럼 모듈화 해서 디자인 씽킹과 같은 전체 프로젝트 방법론을 디자이너 스스로 DIY 해서 자신 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일전에 언급한 두스부르후의 삼차원 입체 공간을 활용하면 자신 만의 방을 꾸밀 수 있듯이, 방법론에도 패턴 언어를 채워 넣으면 자신 만의 방법론을 꾸밀 수 있다.
두 번째는 각 패턴 모듈 안에 이미 디자인 씽킹의 구성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 중 Object-Oriented Programming 방법론이 데이터와 행동양식을 포함한 모듈을 만들고 이를 조립하여 소프트웨어를 완성하는 방법을 제안했는 데, 패턴 언어도 이와 비슷하다. 기획의 각 모듈에 이미 디자인 씽킹의 구성 요소인 상황-문제-해결-결과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 기획 모듈을 조립하면 프로젝트를 전체를 조망하면서 부분 부분 완성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프로젝트 초기에 전체 프로젝트의 모습을 3차원으로 빨리 스케치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IoT 프로젝트 경우에도 프로젝트를 크게 추상화해서 빨리 먼저 보고 공유한 후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면, 전체 목표를 공유하면서 팀 원 내부에서 부분 부분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획 패턴 언어 적용의 사례로 '영유아 동반 여행 가족을 위한 기내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기획 패턴 언어 No.2에는 '진짜 소비자 되기'가 있다. 이번 프로젝트처럼 비행기 기내 서비스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스스로 저가 비행기라도 타보고 비행기 여행을 경험해봐야 한다는 기획 모듈이다.
물론 디자이너는 과거의 여행 경험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진짜 소비자 되기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눈을 가지고 문제 상황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 문제 상황을 나열해 보고, 또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의 문제 상황, 그리고 비행기 탑승 전의 문제 상황, 도착한 후의 문제 상황 등을 모두 나열해 볼 필요가 있다. 도출한 문제 상황에서 "상황 - 문제 - 해결 - 결과"의 순으로 모듈 카드를 작성해 보는 것도 프로젝트 전체 크기를 가늠해 보는 데 필요하다.
해결안은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1) 대상을 파악하고, 2) 대상의 목적을 확인한 후, 3) 행동의 흐름을 디자인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해결안을 나열했다. 그리고 패턴 언어 No. 13을 활용하기로 했다. No. 13은 아이디어 연결하기다. 아기바구니 베시넷과 기존 항공기 좌석을 연결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기존 아기바구니는 구조적으로 기내에 설치할 수 있는 좌석이 한정적이어서 기존의 좌석을 활용한다면 한정적인 좌석 활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기존 항공기 좌석은 엉덩이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다. 성인들의 편의성을 위해서다. 그런데 그 부분 때문에 기저귀를 갈거나 할 때 유아는 참 자세 잡기 힘들다. 새로운 아기 바구니를 간단한 구조로 만들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다. 동시에 아이 동반 여행객의 아이 관련 용품 수납 문제도 해결하고자 했다.
아기바구니는 접이식 구조로 만들어 기내에서 쉽게 배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앞 좌석 식판과 비행기 좌석 안전벨트에 고정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 또한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하여 유아 동반 고객을 위한 안전 가이드라인 책자와 티켓도 따로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이 패턴 언어를 활용함으로써 사용하기 편안한 기내용 아기 바구니 베시넷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유아 동반 기내 여행객을 위한 프로젝트가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패턴 모듈을 활용하는 순간순간에 해결안을 담기 시작했기 때문에 최종 아이디어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단계에서 초기 모듈로 돌아가 소비자의 니즈와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가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를 위한 뇌 사용법 - 패턴 언어 - 두스부르흐 - 레고 - DIY - 구성주의 - 장인 정신과 같은 단어들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신기한 것은 세상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연결시켜 실제적인 사례를 만들고 있었다. 뭔가 가까워진 듯 하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길은 분명해지고 있다. 실생활에서 활용을 하는 것이 이제는 100일 과제의 새로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