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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Jul 19. 2021

어! 해돋이

일상적 두려움 극복하기

"도대체 아침부터 어디 갔었어?"

"당신이 알면 또 놀랄걸?"


아침 식사는 보통 혼자 하는 편이다. 오늘은 마침 아내가 학원에 출근하는 날이라 일찍 일어나서 내가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본 모양이다. 


"응~ 아침에 남한산성에 해 뜨는 것 보러 갔다 왔지"

"에 ~~"


그랬다. 위례로 이사 온 지 거의 5년이 되어가지만, 바로 옆 남한산성에 해 뜨는 것을 보러 간 첫 날이다. 아내가 이상하게 볼 만도 했다. 


'일출'을 봤다는 것이 특별한 이벤트는 아니지만, 집 근처에 좋은 일출 포인트를 두고 그동안 방치했다는 마음 한구석의 짐을 내려놓았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하필 왜 오늘이었을까?


이유야 복합적이지만, 우리 집 강아지 루이스가 새벽 4시 반에 잠을 깨운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겠다. 평소에는 5시 반은 되어야 아침밥을 주는데, 오늘은 갑자기 '일출'을 보고 싶어서 5시에 아침밥을 급하게 주고 집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전 준비가 전혀 없던 터라 부랴부랴 검색창에 '남한산성에서 해 뜨는 곳'을 검색하고, '남장대터'로 행선지를 정했다. 


자동차로 16분, 거리는 8.9km 정도다. 


새벽이니 해 뜨는 장면을 잘하면 볼 수 있겠다 싶어 액셀을 급하게 밟았다. 신호 대기 중에 하늘을 보니 벌써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도는 것으로 보아 해가 떴나? 조바심이 났다.


그렇지만 감히 일출 시간을 검색해 보지는 않았다. 괜히 김샐까 봐서..


남장대터는 생각과는 다르게 자동차를 주차하고, 0.6 km를 등반해야 오를 수 있는 포인트였다. 


여기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냥 자동차로 포인트에 가서 해돋이를 보고 뿌듯하게 내려올 심산이었다. 그런데 웬걸 산을 타야 해돋이를 볼 수 있다니! 순간 고민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이왕 온 김에 해는 똑바로 보고 내려가야지 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지고, 계획에도 없던 산행을 시작하였다. 


"컹 컹 컹"

"이 크"


등반 초입에 집채만 한 개가 짖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목줄도 하지 않았다. 아이고야. 차로 다시 돌아가서 비닐우산을 집어 들어 나왔다. 비닐우산이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그래도 개에게 지면 안되지 하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손에 집어 들었다. 


다행히 훈련이 된 개처럼 보였다. 몇 번 짖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심심하거나 뜬금없거나 싶었나 보다.


오늘 등반은 준비가 미흡한 관계로 신발이 아주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야 했는 데, 그래도 해는 보고 싶었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산을 조금 오르다 보면 장엄한 나무 한 그루는 꼭 등장한다. 마치 등반을 허하노라 하는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다. 

초입에 있는 아름드리나무

산신령과 같은 아름드리나무를 지나 계속 올라가는데, 두 번째 위기 상황이다. 갑자기 맹수의 포효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분명했다. 호랑이스러웠다.


'으악' 이 산에 나 밖에 없는데.. 왠 호랑이?


"내가 이 새벽에 남한산성에서 호랑이와 싸우다 죽으면 내 가족은?"이라는 생각이 들며, 진정으로 발걸음을 돌려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며 언뜻 보니 숲 가지 사이로 해님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이 장면이라도 봤으니 이제 만족하고 내려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 해님을 보니 온전한 해의 모습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갑자기 발동했다.


'이 조그마한 산에 호랑이가 있을 리 없잖아' 나의 이성적 뇌가 다시 작동하고, 감성적 뇌를 설득하여 다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조금 더 오르니 남한산성의 성벽에 오를 수 있었다. 성벽에 도달하는 순간은 커다란 햇덩어리가 보였고, 그곳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해돋이가 아닌 해맞이가 되어 버렸지만, 일단 해돋이 포인트를 발견한 것에 만족해야 했던 아침 산행이다. 내일, 모레, 글피 아니면 가을, 겨울에 꼭 다시 와봐야겠다.


오늘은 아무런 장비도 없이 무작정 온 길이지만, 다음번 등반 때는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과 산길을 비추는 랜턴 그리고 호랑이를 무찌를 수 있는 전기총(?) 정도는 준비해서 등반해야겠다.


두려움과 회피는 습관이다. 인생에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너무 갖고 싶으면 장애물의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 책으로 하는 공부가 아닌 온몸으로 하는 공부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습관을 일상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이제 인생의 반이 지났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이전보다는 덜하다. 그러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도 두려움 없이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 아닐까?



산에서 내려오면 조금은 뿌듯한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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