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by cakes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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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허영은 엄마의 DNA에서 물려받은 건지 알았는데 이 사진을 보고 꼭 엄마로부터만은 아닌 것을 알았다. 12화 엄마 편에 이어 아버지 이야길 해보려 한다.



1.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로 그 시절 대부분 그러셨듯이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분이다. ¹드라이어를 생전 한 번도 안 쓰신 걸 자랑스러운 듯 이야기하시곤 한다. 그런데 언젠가 아버지로부터 의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불리기보다 아빠라고 불리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전역한 이후로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노력해볼게요. 아.. 빠...



2. 명절을 보내고 다시 서울 올라가는 길이면 항상 아버지께서 역까지 배웅을 해주신다. 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리기 직전 “열심히 해라.”는 말이 배웅의 늘 마지막 인사말이었다.


그런데 지난밤, 아들은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고, 오히려 지금은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되는 시대인 것 같다고 진지하게 말씀드렸었더랬다.


문득 차에서 내릴 시간이 다가오자 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실지 궁금해졌다. 차에서 내리려고 문을 열자 아버지께선 짧게 한마디 말씀하셨다. ²”단디해라.”



3. 아버지께선 술을 좋아하셨는데, 건강을 위해 술을 끊으신지 꽤 되셨다. 내가 ³술을 먹기 시작하고 아버지께서 술을 끊기 전에 몇 년의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서울에서 일을 했던 터라 아버지와 술을 마실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기회가 많이 있겠지 했는데 아버지께선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을 완전히 끊으셨다. 요즘 아버지와 한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4. 나중에 아들이 태어나면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는커녕 아직 남편도 못된 나.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을 생각하며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야지 생각했으면서, 정작 늘 곁에 계신 아버지껜 친구 같은 아들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5.”사랑하는 아들아 1년여 동안 고생 많았다. 그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도 감동이었다. 그 와중에 누나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모습도 정말 보기 좋더구나.


아들아 네가 늘 말해온 것처럼 이 브랜드가 세상에 정말 필요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브랜드가 되도록 앞으로도 잘 가꾸어나가길 바란다. 이번 프로젝트도 꼭 성공하길 아버지가 함께 응원할게.”


이 글은 ³슈어팬티로 와디즈 펀딩을 시작할 때 첫 번째로 아버지가 남겨주신 글이다.



6. 나중에 여자 친구가 집에 인사하러 오는 날, 아버지께서 내 여자 친구에게 쓴 편지를 준비해 읽어주시기로 하셨다. 아버지 제가 좀 더 늦을 수 있는데 이 약속 꼭 지켜주세요.



7. 사랑해요. 아빠.



주석

¹ 남자는 치장하지 않는 것이 멋이라 생각하신다.

² 꼼꼼하게 확실히 해라. 열심히와는 확실히 다른 뉘앙스다.

³ 나는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닌데 사람들은 내가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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