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적막한 집을 나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곧장 버스 정류장이다. 좋든 싫든 나는 다시금 따스한 봄의 끝자락에 몸을 섞어야 한다. 나를 일터 쪽으로 실어다 줄 버스는 십 분 가량을 남겨둔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멀뚱히 선 나의 머리 위로 청청한 은행나무가 눈길을 끈다. 가을이 아니고서야 이 나무는 딱히 이렇다 할 존재감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그맣게 새싹을 틔운 지도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푸른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 어느덧 몸통을 휘감아 오르더니 급기야 불꽃처럼 치솟으려 한다.
바람에 산뜻하게 떨리는 새싹을 바라보고 있자니 때마침 버스가 들어선다. 버스 안은 여지없이 어디서부터 타고 왔는지 모를 노인들로 북적인다. 나는 남자치고는 체구가 왜소한 데다 머리카락이 길다. 그래서인지 버스에 오르면 노인들은 일제히 나를 향해 성별을 추궁하려는 듯 못마땅한 눈초리를 던져온다. 이들에게는 나를 그렇게 노려볼 자유와 이른바 권리라는 것이 있다. 그 권리가 나는 피곤하다. 노인들은 대개 부지런하다. 그들의 일상은 더없이 규칙적이다. 따라서 이들 중 몇몇은 부지불식간에 매일의 일과를 나와 함께 시작해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몇몇이 누구인지 가려낼 마음은 일지 않는다.
나는 진동하는 버스 위에 중심을 잡고 서서 손잡이를 움켜쥔다. 창문 너머로 나의 덤덤한 표정이 어렴풋이 비친다. 내가 이 버스에 몸을 싣기 직전까지도 눈길을 끌던 은행잎의 쓸쓸할 앞날을 떠올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신을 부여잡지 않으면 그 비참함에 동화되어버릴 듯하여 섬뜩하기도 하다. 머지않아 누렇게 변하여 고약한 악취만 풍기는 골칫덩이로 전락해버릴, 길을 지나는 행인들의 코 끝과 신발 바닥에 교묘히 스며 끈덕지게 쫓아다닌 끝에 종국에는 멸시를 받게 될 운명. 그제서야 세상에 내세울 존재감.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목적지에 이르러 버스에서 내린다. 어쩐 일인지 얼마간 자취를 감추었던 땅콩과자 아저씨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전처럼 비좁은 가판대 안에 앙상한 몸을 구겨 넣고 정확히 오른쪽으로 돌려 앉아 허공만 응시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눅눅한 땅콩과자를 이전과 다름없이 가판대 앞쪽에 정갈하게 쌓아놓고서 말이다. 가판대 앞으로 수많은 행인이 지나가도 그의 스산한 턱선은 미동조차 없다.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 순간 행인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그에게는 허공만이 흥미롭다. 그것도 썩 나쁘지 않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