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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May 17. 2020

맥그로드 간즈의 구두장이 2


2

 

그 다음날 이른 낮에는 아주 잠깐 먹구름이 걷혔다. 얄궂던 날씨가 어쩐 일인지 얌전했다. 반면에 널찍한 호스텔방 안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원체 난방 장치란 있지도 않았으며 혹 있었다 하더라도 거듭되는 정전 탓에 작동도 시원치 않았을 것이다. 침대 위에서도 입김이 새어 나오는 데다가 눅눅한 이불 표면은 오히려 밖보다 냉랭했다. 그것이 단순 체감만이 아니었음을 나는 직후에 밖을 나서면서도 알 수 있었다. 여하튼 세수는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화장실로 들어섰다. 수도꼭지를 돌리고 한참을 있어도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았다. 변기 위에 달린 온수 장치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정전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첫날 새벽을 떠올렸다. 나이  호스텔 주인은 방을   보여주겠다면서 나를 안내했다. 그때 나는 당장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델리발 심야버스에 몸을 싣고 여덟 시간 남짓을  눈으로 달려 도착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엔 내가 묵기로  3 방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발코니 문을 자신 있게 열어젖히면서 말했다. ", 보다시피  방은 경치가 장관이라오." 사실이었다.  덮인 히말라야 산맥의 이름 모를 봉우리가 코앞에서 웅장한 자태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대자연이었다. 나는 곧장  광경에 전적으로 매료되었다. 그러고는 즉시  방에서 6일간 묵겠다고 섣불리 결정해버린 것이다. 나는 끔찍하게 피곤했기 때문에 도저히 근방의 다른 호스텔을 둘러볼 힘이 남아 않았다. 그러자 주인이 값을 불렀다. 제법 만만치 않은 값이었다. 너무 비싸다고 자 주인은 다시 한번 팔을 뻗어 발코니 너머의 경치를 득의양양하게 가리켰다. 마치 경이로운 자연까지도 자신의 소유인  행세했다. 나는 개의치 않는 척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가 부른 값의 4분의 1 쯤을 깎아 흥정을 시도했다. 결국 그는 졌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재차 확인했다. "Is hot water always available?" 하고 묻자 그는 "No problem."이라고 했다. 그의 대답과 동시에 나는 6  방값을 주섬주섬 꺼내 그의 까무잡잡한 손바닥에 건넸다. 'No problem'  인도의 상인들이 도시를 불문하고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대개 그들은 문제가 있으나 없으나 일단 없다고 해버리는 식이다. 그는 지폐를 꼼꼼히 세어본 직후에야  마디를 덧붙였다. "이맘때에는 정전이 잦다오." 그는 가족들이 머무는 방으로 쏜살같이 내려갔다. 그의 손에 현찰이 쥐어지고 나서야  말을 들은 것이 단지 우연이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양 볼이 쓰라릴 정도의 찬 물로 재빨리 세수를 끝냈다. 습기 먹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남은 경비를 헤아렸다. 식대와 교통비, 이후에 향할 도시의 숙박비 따위를 추산하고 나서 하루에 쓸 금액을 정해두었다. 빠듯했다. 가능한 한 자질구레한 지출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보름 가량 남은 여행에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진저리나는 호스텔방 안에 꼼짝없이 처박혀 있기란 도무지 따분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 꼴로 정전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보일러며 인터넷 따위가 전부 먹통이 되기 일쑤였다.


따라서 나는 날씨가 얌전한 틈을  재빨리 예의 작은 카페로 향했다. 시간을 때우기에는 그만한 곳도 없었다. 숙소와 가까울뿐더러 근방에서는 커피값이 가장 저렴했다. 큼직한 머그잔이 넘치도록 따라주는데도 말이다. 무엇보다 주인장의 음악 취향이 예사롭지 않았다. 족히 반세기는 지났을 오래된 로큰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시간쯤 그렇게 음악이나 들으면서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한쪽 구석 테이블에서는 서양 청년 두 명이 늙은 티벳 승려를 앞에 두고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대화를 나누었다. 얼핏 들어보니 명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서양인이 천진난만하게 무언가를 물으면 승려는 질문마다 침착하고 지혜롭게 대답해주는 모양새였다. 한동안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 입구의 종이 짤랑거렸다. 구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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