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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짤랑거리고 그는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들어섰다. 손에 든 나무상자 안에서 연장 부딪히는 소리가 뒤따랐다. 그러자 카페 안에 감돌던 공기가 일순간에 전혀 다른 성질의 무언가로 교체된 듯했다. 무어라 표현할 길 없는 그만의 공기가 불쑥 스몄다고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는 나를 발견하더니 눈썹을 치켜세우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또 보네."라는 뜻이었다. 나도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겸연쩍어지는 바람에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은 금세 어둑해져 있었다. 건너편 티벳 사원 너머로 잿빛의 먹구름 무리가 남쪽을 향해 빠르게 흘러갔다. 머지않아 비가 쏟아질 것은 시간문제였다. 불안해진 나는 카페 옆에 붙은 잡화점 근처를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잡화점 주인에게 일회용 우산의 가격을 물었다. 어지간한 식당의 한 끼를 웃도는 값이었다. 그것이 정말 제값인지 아니면 이방인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운 값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상인이라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성정이 고개를 들었으나 그만두었다. 나는 비를 맞더라도 식사 한 끼를 더 먹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다시 담배나 피웠다. 언덕길 위에서 쌀쌀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담배 끝자락이 빠르게 타들어갔다.
그 사이 구두장이가 카페 앞으로 나와 있었다. 필시 그는 내게 무어라 말을 걸어올 터였다. "비가 내릴 거야." 그는 양 팔을 빠르게 비벼대면서 말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모양이었다. 얼떨결에 나는 그와 처마 밑에서 삼십 분 남짓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일면식도 없던 나를 상대로 자신의 대략적인 서사를 들려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스물아홉 살인 그는 팔 백여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라자스탄 출신이었다. 동시에 세 명의 자식과 아내를 둔 젊은 가장이라고 했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홀로 이 작은 마을, 맥그로드 간즈까지 와서 구두장이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얼마간 돈이 모이면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사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소원은 얼마 안 있어 이루어지리라고 그는 강단 있게 굳혔다. 뒤이어 그는 "한국 사람들은 돈이 많지?" 하는 기이한 질문까지 덧붙였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무렵 빗방울이 거세게 쏟아졌다.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대화를 마치고 그는 예의 철제 계단으로 가 앉았다. 나무상자를 앞에 두고 여느 때처럼 손님을 기다렸다. 양팔을 더욱 빠르게 비비면서 그는 나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괴팍한 날씨로 미루어 보아 그는 다시금 허탕을 칠 것이 분명했다. 빗발은 거세지면 거세졌지 도저히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방에는 누구 하나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다리가 길고 깡마른 누렁개 두세 마리가 비를 피해 황급히 쏘다닐 뿐이었다.
나는 카페로 들어가 다시금 숙소로 돌아갈 걱정을 했다.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이 길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창문 너머까지 또렷이 들려왔다. 여태 먹은 거라곤 커피뿐이어서 금세 허기가 졌다. 가까운 식당에라도 가볼까 싶었지만 홀딱 젖을 게 뻔하여 단념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따뜻한 카푸치노와 싸구려 쿠키로 끼니를 때웠다. 허기를 느끼는 뇌만 순간적으로 속였을 뿐, 정작 배는 채워지지 않아 난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차 꼬르륵댈 것이 뻔했다. 그 덕에 얼마간 돈이 굳었다는 뿌듯함이 뒤따랐는데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 날도 비는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뒤이어 골때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쏟아지던 비가 돌연 굵직한 함박눈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마을의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날씨에 또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하며 내리 창밖을 살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카페 앞 언덕길은 하얗게 뒤덮였다. 이래서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험난해져 이도 저도 못하게 될 노릇이었다. 나는 서둘러 카페를 나섰다. 구두장이는 여전히 계단에 앉아 있었다. 양 팔은 여전히 비벼대면서 한술 더 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보통의 나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 동시에 내면의 타산적인 나는 여태 돌아가지 않은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멍청해서일까? 딸린 가족이 없는 나의 인정머리 없는 속단일까? 그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일 보자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