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 최대 사기극, 테라노스

[북리뷰] <Bad Blood> by John Carreyrou

by Crys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봉쇄령으로 집에 있는 동안,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다. 특히, 재밌는 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 보면 이틀도 안 돼 끝냈다.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다.


팬데믹 기간 중 ABC 20/20(한국으로 치면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 프로)를 통해 테라노스(Theranos) 창업주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Holmes)의 재판이 예정되어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때 실리콘 밸리의 가장 핫한 스타트업 회사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는 투자자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혐의를 받고 기소되어, 유죄 확정 판결 시 20년 가까이 연방 감옥에 갇혀 지낼 운명이 되었다.


난 20/20를 시청한 후, 엘리자베스 홈즈의 사기극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월 스트릿 저널(Wall Street Journal)의 존 캐리루(John Carreyrou) 기자가 쓴 <Bad Blood(나쁜 피)>를 읽어봤다.


엘리자베스 홈스가 언론에서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했던 2013, 2014년 경 나도 간간이 흘러나오는 뉴스를 피할 길이 없어 그녀를 알게 되었다. 알려진 대로 홈즈는 스탠포드를 1년 다니고 중퇴한 후 19살에 테라노스를 창업했다. 그녀는 스스로 빌 게이츠, 스티브 쟙스,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계보를 이어 실리콘 밸리의 횃불을 물려받을 인물이라 여겼다고 한다. (자신감이 있는 건 좋은데, 검증 안된 자신감은 과대망상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젊고, 외모도 뛰어난 데다, 똑똑하기까지 한 여자가 성공적이기까지 해서 질투심이 발동한 거라 해도 할 말이 없긴 한데, 난 테라노스의 뉴스에 그리 흥분하지 않았다. 내가 원래 의심이 좀 많고, 내 머리로 이해가 돼야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탠포드 일 년 중퇴생이 최첨담 메디칼 디바이스를 개발한다는 것이 좀 의심스러웠다.


물론, 화학공학 엔지니어(Chemical Engineer)나 의학 지식 있는 사람 고용해서 쓰면 되긴 하는데, 스타트업 특징이 창업주가 고안해낸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상품으로 만드는 거다. 만일 그 아이디어가 현실화할 수 없는 거라면 어찌 되는 건지..... 타임머신이 아이디어는 기발해도 현재까지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계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창업주들은 대부분 프로그래머다. 프로그래밍은 고등 교육 없이,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혼자 지하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메디칼 디바이스의 개발은 경우가 틀리다. 스탠포드가 최일류 학교인 것은 틀림없지만, 거기서 화학공학 관련 수업 몇 개 듣고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엘리자베스 홈스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테라노스가 개발하고 있던 최첨단 소형 혈액 분석기의 특징은 피 한두 방울 가지고 200여 가지 혈액 검사를 즉석에서, 몇 분 내에, 오차 없이, 완벽하게 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존 혈액검사는 먼저 채혈사가 적당량의 피를 뽑은 후, 그 혈액 샘플을 랩(Lab)에 보내면, 랩에서 혈액 분석기를 돌려 검사를 마친 후, 환자가 결과를 받기까지 약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린다. 에디슨(Edison)이라고 이름 붙인 테라노스의 소형 혈액 분석기는 피 뽑는 고통 없이, 기다리는 시간 없이 즉석에서, 검사료도 저렴하게, 오차 없는 혈액 검사가 가능하다고 선전하였다. 만일, 이게 사실이었다면 가히 획기적인 상품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피 몇 방울로는 샘플이 부족해 식염수(Saline)를 더해 피를 희석한 후 검사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검사의 수는 정해져 있는 데다 검사 결과마저 일정치 않고 들쑥날쑥했다. 다시 말해, 테라노스에겐 피 몇 방울로 혈액검사를 정확하게 할 기술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2013년 테라노스는 기술력 확보도 안 된 상황에서, 개발 선상에 있던 혈액 분석기를 이용한 당일 혈액 분석 서비스를 월그린(Walgreens) 고객에게 제공하겠다고 게약을 맺었다. 당시 미국 전역 600 여개 체인점을 갖고 있던 약국 월그린은 테라노스 웰니스 센터(Theranos Wellness Center)를 매장 내에 만들어 혈액 검사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기술도 없는데 거액의 계약금 및 상품 개발 지원금을 받고 덜컥 계약을 하자, 회사 내 의식 있는 직원들이 서비스 런칭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홈즈는 월그린 서비스 런칭을 강행하였다.


그래서 광고와는 달리 기존 채혈방식으로 환자의 피를 뽑은 후, 그 샘플을 파울로 알토에 있는 테라노스 랩으로 공수한 후 시먼스(Siemens)와 같은 기존 의료기기 회사의 혈액 분석기계를 이용해 혈액 샘플을 돌려 검사를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결국 2015년 10월 15일 테라노스의 실체를 처음으로 알리는 기사가 존 캐리루에 의해 월 스트리트 저널 일면에 실린 후, 2016년 월그린은 2천5백만 불 보상금을 받고 테라노스와 결별하였다.


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홈즈는 어려서부터 꿈이 억만장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꿈대로 한때 90억 달러 상당의 가치가 있는 회사로 평가된 테라노스 주식의 절반을 소유한 억만장자였다.


혈액 분석 기계 개발은 어쩐지 모르겠는데, 투자금 유치하는 재주는 매우 탁월하였다. 월마트 창업자 월튼 가족(The Walton Family),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엮임 한 벳시 드보스가 속한 드보스 가족(The DeVos Family)으로부터 각각 1억 달러 이상 투자금을 받아냈다. 존 캐리루는 엘리자베스 홈즈가 테크 기업 CEO로서의 자질보다 타고난 세일즈맨이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2003년 테라노스를 창업한 후, 엘리자베스 홈스가 크고 작은 투자자를 통해 모금한 투자금이 총 9억 달러가 넘는다. 그리고, 2018년 테라노스가 회사문을 닫으면서 투자자들의 소유하고 있던 주식은 다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팬데믹과 엘리자베스 홈즈의 출산 등으로 무려 네 차례나 연기되었던 재판은 올해 8월 31일 산 호제에서 시작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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