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Blink by Malcolm Gladwell
이제까지 읽은 말콤 글래드웰 책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면 <블링크>라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처럼 오디오북으로 읽은 이 책은 같은 제목으로 2005년 한국어로도 번역, 출판되었다. '블링크'는 눈을 깜빡이는 걸 의미하는 단어로 '순간'과 동의어로 쓰인다. <블링크: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생각의 힘>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순간적 판단(rapid cognition)이 생활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쓴 재밌는 책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항상 짧게 깎아 깔끔하던 머리를 길게 기르기 시작하자, 경찰의 불심 검문을 자주 받게 되는 걸 경험하면서부터다. 글래드웰은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머리를 길게 기르자 경찰 눈에는 그가 흑인 범법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경찰이 흑인 용의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저자와 닮았다고 말하는데, 저자 눈에는 머리가 길다는 사실 외에는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나이 드신 세대 중에 백인을 자주 보지 못하신 분들이 얼굴 하얀 금발 머리는 다 똑같아 보이고, 아시안 자주 볼 기회 없는 미국 중서부 전원 지역에 거주하는 백인 눈에 검은 머리 아시안은 다 비슷해 보이는 것과 같은 논리인가 보다. 사실 내 눈엔 요즘 K-Pop 스타들이나, 한국 탤런트들 성형수술 덕분에 다 비슷해 보인다.
우리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받는 첫인상은 주로 겉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트럼본 연주자 애비 코난트(Abbie Conant)가 뮌헨 필하모닉(Munich Philharmonic) 오디션을 보기 위해 오디션 룸에 들어섰을 때, 심사원들과 연주자 사이에 위치한 칸막이 때문에 그녀가 여자인 것을 심사원들은 알지 못했다. 그녀의 오디션 연주곡을 들은 후, 심사위원장은 '바로 이 사람이야' 하면서 기다리고 있던 연주자들의 오디션을 취소하고,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칸막이를 넘어 모습을 드러내자 연주 실력을 극찬하던 그 이전 태도는 오간데 없어졌다. 왜냐하면 통상 여자는 신체적 조건상 남자보다 폐활량이 적은 관계로 훌륭한 트럼본 연주자가 되기 힘들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만일 애비 코난트가 칸막이 뒤가 아닌 심사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오디션을 봤다면 과연 그녀의 연주를 선입견 없이 들었을까 필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다시 말하면 연주를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겉모습을 먼저 판단하고 난 후, 귀로 듣기 때문에 연주 수준마저 낮게 들린다는 의미다.
다른 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프렌치 혼 연주자 쥴리 랜스맨 역시 칸막이 뒤에서 오디션을 했을 때, 심사위원들은 그녀의 뛰어난 실력 때문에 이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했다고 한다. 몇 옥타브를 넘나드는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가진 연주자가 일단 여자여서 놀랬지만, 또한 그동안 프렌치 혼 주자가 아프거나 할 때 땜빵 주자로 활동하던 안면이 있던 사람이라는데 더더욱 놀랬다고 한다. 오디션 날 처음 연주를 들은 것도 아니고, 그동안 쭉 연주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칸막이 뒤에 자기 모습을 숨기고서 오디션을 했을 때, 비로소 자기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필자의 요지는 때로는 눈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방해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마치 대기업 사장하면 백인 남자가 떠오르고, 청소부는 흑인이고, 간호사나 비서는 여자를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흑인이 사장 포지션에 응시하면 은연중에 업무 수행 능력과 리더쉽에 대한 의문 제기가 되고, 악기 특성상 폐활량이 크면 유리한 금관악기 연주는 은연중에 남자가 더 잘할 거라는 믿음 때문에 여성 연주자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을 알기 위해서 일부러 눈을 가릴 필요가 있다는 이 책의 뼈대 있는 조언이 마냥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나 역시 때로는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첫인상이든, 뭐든, 사람의 능력과 본성은 한눈에 탁 보고 알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