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Talking to Strangers by M. Gladwell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2020년 봉쇄 기간 중 다시 한번 읽고 나서, 2019년 10월에 출판된 그의 최신작인 <Talking to Strangers>를 오디오북으로 읽어봤다. 찾아보니 한국어 번역본은 <타인의 해석: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란 제목으로 2020년 3월 출판되었다. 통찰력 깊은 글래드웰의 다른 저서들처럼 이 책 역시 사회,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깔린 의미를 날카롭고도 흥미롭게 분석해냈다.
1960년대 흑인 공민권 운동 이후, 현대 미국의 사회적 문제로 다시 부각되고 있는 인종차별은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몇 백 년에 걸친 노예제도의 후유증이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으로 단숨에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의 불평등한 분배, 절대적으로 낮은 고등 교육의 기회, 주류 문화에 대한 경험 부족 등은 백인보다 몇 백 년 뒤쳐진 흑인들이 한꺼번에 따라잡기엔 버거운 감이 많다.
그런데 근래의 문제는 이런 사회, 경제적 차별뿐만 아니라, 2014년 미저리주 퍼거슨 시에서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이래 무고한 혹은 미미한 경범죄 용의자인 흑인이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흑인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집행이 끊임없는 문제가 되자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Movement)' 움직임까지 형성하게 되었다. 글래드웰은 사소한 교통 위반으로 비롯된 용의자와 경찰과의 대면이 어떻게 흑인 용의자가 사망하는 국면으로까지 치닫게 되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는 것이 이 책을 저술한 주된 목적이다.
이 오디오북은 이제껏 내가 읽어온 기존의 오디오북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요즘 팟캐스트가 유행이고, 글래드웰 역시 자신의 팟캐스트를 고정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오디오북은 책이긴 하지만 주제 음악이 있고, 인트로 뮤직으로 챕터를 시작하고, 엔딩 뮤직으로 챕터를 마감하는 등 팟캐스트 형식을 도입하고 있다. 게다가 인용문은 역사적 인물의 녹음을 그대로 이용하였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다. 예를 들자면, 히틀러의 연설, 체임벌린의 기자회견 그리고 아만다 녹스의 인터뷰 등을 그대로 실었다. 따라서 이 오디오북은 책이긴 책이되, 책 내용을 성우가 단순히 나레이션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TV 다큐멘터리처럼 멀티미디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글래드웰은 16세기 이전 유럽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전쟁은 대부분 국경을 맞대고 있던 두 나라 사이에서 일어났다고 서문에서 서술하고 있다. 마치 딴 동네 이웃과는 부딪힐 일이 별로 없지만, 형제 사이에 잦은 언쟁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즉, 갈등은 낯선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했던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대서양을 건너 해외로 진출하게 되면서 낯선 이와 대화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1519년 코르테즈가 멕시코에 상륙하여 아즈텍 문명의 왕인 몬테쥬마 2세를 처음 대면했을 당시 이 둘은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며, 말도 통하지 않았다. 코르테즈가 스페인어로 물어보면 통역이 그것을 마야어로 통역한 다음, 또 다른 통역이 마야어를 몬테쥬마가 이해할 수 있는 아즈텍어로 통역해서 의사소통을 하였다. 통역에 따르면, 몬테쥬마는 코르테즈가 고대에 추방되었다가 다시 아즈텍으로 돌아온 '신적 존재'라고 믿고 항복의 의사를 전해왔고, 코르테즈는 이를 굴러 들어온 호박으로 생각했다. 다만 아즈텍어는 '신성함'이 '작고 힘없다'는 의미로 사용돼서 몬테쥬마 자신이 항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페인이 아즈텍에 숙이고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마치 한국 사극에서 쫓아내고 싶은 사람을 하인들을 시켜 '그만 뫼시거라' 하는 거랑 비슷한 거 같다. (모르는 사람 들으면 헷갈리지 않게 그냥 나가라고 하지......) 결국 코르테즈는 항복의 의미로 알아듣고 몬테쥬마를 포로로 잡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아즈텍인 2천만 명을 살상하기에 이른다. 글래드웰이 들려주는 코르테즈와 몬테쥬마의 이야기는 2015년 텍사스주 헴스테드에서 흑인 여성 샌드라 블랜드(Sandra Bland)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여 경찰인 브라이언 인시니아(Brian Incinia)에 의해 정지당한 후 일어나는 이야기와 평행 선상에 있다.
프레리 뷰 A&M 대학에 새로 채용되어 텍사스로 이주한 샌드라 블랜드는 마이클 브라운 사건 이후 흑인 인권 활동인 Black Lives Matter에 매우 관심을 갖고 있었다. 흑인이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샌드라 블랜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경찰의 직권 남용을 비판하는 클립을 업로드했다. 반면, 블랜드를 체포했던 브라이언 인시니아는 사건 발생 전 12개월 동안 무려 1600개 교통범칙 위반 티켓을 발행한 걸로 알려졌다.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이 둘의 만남은 결국 블랜드의 체포로 이어졌고, 사흘 후 샌드라 블랜드는 유치장에서 목을 매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글래드웰은 만약 인시니아와 블랜드가 서로 아는 사이였다면 대화의 내용도 달라졌을 것이고, 블랜드 역시 유치장에서 목을 매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자면,
"샌드라, 차선 바꿀 때 깜빡이 켜는 거 잊었나 봐요. 절차상 필요하니까, 운전 면허증이랑 보험 증서 좀 보여줘요. 그리고 내가 비흡연자라 담배 연기 때문에 좀 불편하네요."
"아, 그랬나요? 내가 깜빡했나 봐요...... 잠깐 기다리세요. 담배 끄고 면허증 꺼낼게요."
이렇게 흘러갈 수도 있었을 법한 두 사람의 대화는 심한 언쟁 후에 인시니아가 블랜드를 차에서 끌어내려 체포하기에 이른다. 부당한 공권력에 반감을 품고 있던 젊은 흑인 여성과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닌데 담배를 끄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용의자를 차에서 끌어내려 체포하는 경찰이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현대인은 아는 사람 외에 낯선 이와 대화할 기회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까? 심지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할 지라도, 문화적 차이, 성장 배경의 차이 등에 따라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말콤 글래드웰의 신간 <Talking to Strangers>는 미국과 같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집행이 빈번하고 일어나는 이유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