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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설화의 탄생

동물 설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y 꼭그래

동물 설화의 탄생


인간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사람 사이의 갈등 해소는 법률로써 해결되기도 하고 이해의 방식인 윤리라는 기준에 따라 해결되기도 한다. 보편적 윤리의식을 공유하고 경중을 따져 합의를 이끌어내게 한다. 그런데 민족과 인종, 종교를 달리하면 해결 방식이 복잡해진다.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권의 통합에는 관습과 사고방식이 달라 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법률에 의존하게 되면 인간관계는 더욱 차가워지고 법의 형평성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 작은 갈등도 큰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보편적인 윤리의식을 공유하게 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의 관습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나누지 않고 인간이 아닌 의인화된 동물을 등장시켜 문제를 풀어내는 동물 설화가 만들어진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동물을 등장시켜 인간의 본성을 풍자화한 이야기를 우화라 한다. 우화는 인간의 본성을 이입시킬 수 있으며 신분제와 비슷한 먹이 사슬이나 서로 다른 본능을 풍자해 정치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동물과 인간의 특성을 이입시켜 교훈적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인도의 판차 탄트라는 왕자들의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우화집이다. 불교설화도 교훈적 동물 설화가 있다. 우화를 어린이들의 계몽을 목적으로 읽게 하는 이유는 사회관계의 규범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우화인 이솝우화의 작가 아이소포스(Aesop)는 아테네의 지배자 페이시스트라토스를 정치적으로 옹호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동물들을 등장시켜 정치를 풍자했다. 인도∙불교설화 속의 우화도 정치와 사회 문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교육과 계도를 더 비중 있게 다룬다. 인도와 불교의 동물 설화가 이 땅에 들어와 교훈적이거나 계도적인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의 동물 설화는 아이소포스의 이야기처럼 사회 풍자적이다. 계몽적인 인도∙불교설화를 사회 풍자적인 이야기로 바꾼 이야기가 토끼의 간, 구토지설, 토끼전이다. 각각의 인도 설화, 불교설화를 우리의 설화와 비교할 수 있는 토끼전은 판소리로는 수궁가로 전해지고 있으며 역사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의 구토지설로 전해지고 있다.


구토지설은 인도 설화가 불교설화로 변형되고 중국을 거쳐 이 땅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먼저 구토지설(토끼전)의 원형인 인도 판차 탄트라의 원숭이와 악어의 이야기다.


원숭이와 악어(판차 탄트라 4편)


『어느 강가 잠부 나무에 락타부카(Raktabukha : 붉은 주둥이)는 원숭이가 잠부 나무 열매를 먹으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잠부 나무 밑으로 카랄라무카(Karalamukha : 잔혹한 주둥이)라는 악어가 먹이를 찾아 지나가고 있었다. 잠부 나무 위에서 원숭이가 잠부 열매를 악어에게 먹으라며 던졌다. 원숭이가 던져 준 열매를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악어가 떠나려 하자 원숭이는 악어가 배부를 정도의 잠부 나무 열매를 줄 수 있으며 같이 먹는 동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나누자 한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원숭이 락타부카가 지혜롭다는 것을 알게 된 악어는 그 이후 잠부 나무의 원숭이를 찾아와 대화를 즐기게 됐다. 원숭이는 악어가 집으로 돌아갈 때 악어의 아내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잠부 열매를 주기도 했다.


어느 날 악어의 처는 남편이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잠부 열매를 가져올 수 있는지 궁금해 악어 카랄라무카에게 물었다. 악어는 그간 원숭이와의 일을 이야기해 주자 악어의 처는 이렇게 맛있는 과일만을 먹고 살아온 원숭이의 심장이 더 맛있을 것이라며 원숭이의 심장을 먹게 해줄 것을 남편에게 조른다.


하지만 악어는 원숭이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으며 원숭이가 죽으면 더 이상 지혜로운 대화 상대를 잃게 된다며 완강하게 거절하지만 악어의 처는 날이 갈수록 원숭이의 심장이 먹고 싶어 악어에게 조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악어는 처의 말에 넘어가 원숭이의 심장을 먹게 해줄 것을 약속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원숭이를 악어의 집으로 데려오느냐가 문제였다. 악어의 처는 그동안 얻어먹은 것이 고마워 이번에는 자신들이 대접을 하고 싶어 초대하는 것이고 원숭이가 숨 쉴 수 없는 악어의 물속 집이 아니라 원숭이가 살고 있는 잠부 나무 건너편 강기슭에서 대접한다고 말하면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악어는 속을 수도 있겠다 싶어 원숭이에게 향했다.


악어는 원숭이에게 자신의 처가 원숭이에게 고마움을 갚기 위해 집에 진수성찬을 차려 대접하고 싶으니 집으로 와 달라고 하니 자신과 함께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한다. 물속에 있는 악어의 집에 갈 수 없는 뭍짐승인 자신은 갈 수 없다며 거절하자 악어는 대접할 장소는 강 건너편 기슭에서 대접할 것이니 안심하고 자신의 등에 타라고 말한다. 그러자 원숭이는 별 의심 없이 악어의 등에 올라타고 악어와 함께 강 건너편으로 향했다.


건너편에서 악어가 원숭이를 데리고 오자 악어의 처는 원숭이를 죽여 심장을 꺼내 달라 말한다. 그때서야 사실을 알아챈 원숭이는 도망가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낸다. 악어의 처 말대로 잠부 나무 열매를 먹어 자신의 심장이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고 귀한 것이라 누군가 노릴지 몰라 잠부 나무를 벗어날 때에는 심장을 숨겨 놓는다고 말한다. 그 말에 속은 악어는 원숭이의 심장을 가지러 다시 원숭이를 잠부 나무로 데려다준다.


잠부 나무에 도착하자 원숭이는 재빨리 올라가 우정을 저버린 악어를 비난한다. 그때서야 속은 줄 안 악어는 원숭이에게 다시 사정하지만 소용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간 악어는 처에게 원숭이와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며 심장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악어의 처가 계속 조르자 악어는 현명한 친구를 잃었다는 생각에 화가 나 처를 집에서 쫓아(죽이거나) 냅니다. 그리고 다시 원숭이와의 우정을 회복하기 위해 원숭이에게 찾아간다.


잠부 나무 아래에서 원숭이에게 잘못을 빌며 다시 이전과 같이 친구가 되자고 하지만 원숭이는 거절한다. 그때 어떤 악어가 나타나 카랄라무카에게 집에서 쫓겨난 처가 굶어 죽었으며 집에는 커다란 악어가 빈 집을 차지해 버렸다는 말을 전해준다.


그러자 악어는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우정, 처, 집까지 잃게 된 자신을 한탄한다. 그러자 원숭이는 집이라도 다시 찾으려면 커다란 악어와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악어는 원숭이의 말에 따라 집에 돌아가 죽을힘을 다해 싸워 집을 되찾게 됐다.』


※잠부나무와 열매 : 10 -15미터의 열대성 나무. 싯다르타가 출가하기 전 왕궁을 떠나 명상했다는 나무. 잠부(jambu : Syzygium cumini). 중아함경 미증 유품의 기록에 왕자를 찾아다니던 신하들이 발견한 싯다르타의 모습이 나오는데, 정오가 지나자 다른 모든 나무의 그림자는 옮겨 갔지만 오직 잠부 나무만은 그림자를 옮기지 않고 태자의 몸에 그늘을 드리운 채 그대로 있었다 합니다.


원숭이는 사교∙처세 그리고 지략을 갖춘 존재로, 악어는 탐욕과 어리석은 존재로 그려진 우화다. 토끼전과 등장하는 동물이 다르고, 간이 아니라 심장을 원하는 점도 다르다. 악어 부인의 탐욕의 대상이 된 원숭이의 심장은 생명의 상징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생각하지 말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다.


불교설화의 구토지설은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배경이 중국화 되어 전해집니다. 부처의 환생 담인 본생경의 구토지설에서는 악어가 용왕으로 바뀐다. 원숭이의 심장에서 간으로 목적물도 바뀌고 원숭이의 심장을 얻으려는 계기 역시 악어 처의 탐욕에서 왕비의 임신으로 바뀐다. 중국적인 용왕이 등장하고 원숭이가 석가모니의 전생이었다는 종교적 결론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불교를 통해 구토지설이 한반도에 알려진 것을 삼국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라 선덕왕 11년(642년)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대량주(지금의 함양)를 침공해오자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이 남편과 함께 죽었다. 김춘추는 딸의 복수를 위해 고구려에 찾아가 고구려왕에게 찾아가 군사를 일으켜 신라와 함께 백제를 공격하자고 한다. 하지만 고구려왕은 신라에게 빼앗긴 마목현(지금의 계립령, 충주와 문경시의 경계 지역)을 돌려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김춘추는 그런 결정권이 없으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고구려는 당시 영류왕에서 보장왕으로의 왕권 교체기였고 그런 틈을 타 김춘추가 정탐의 목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닌지 의심만 살뿐이었다. 그래서 거부할 수밖에 없는 마목현 조건을 내걸었던 것이다. 거부한 이유로 고구려왕은 김춘추를 죽이려 했으나 총신 선도해가 말려 죽이지 못했다. 선도해는 이미 김춘추가 가져간 청포 삼백 포를 뇌물로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총신의 신분인 선도해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왕의 눈 밖에 날 것을 염려해 김춘추를 설득하고자 김춘추에게 해 준 이야기가 구토 설화이다. 구토 설화를 들은 김춘추는 그 뜻을 이해하고 마목현을 내어 줄 것을 약속하는 문서를 작성하게 된다.』


김춘추를 설득했다고 하는 구토지설의 내용은 하나를 얻고자 했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던 것 같다. 구토지설은 한국적 설화로 변하게 된다. 원숭이는 익숙한 토끼로 교체되고 용왕이 직접 찾아갔다면 신하인 거북이 용왕을 대신해 토끼를 찾아갑니다. 사건의 원인도 왕비의 임신이 아니라 용왕의 건강 때문에 일어납니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이야기인 토끼전의 시작은 이렇게 인도, 중국을 거쳐 한국화 된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소설과 판소리의 소재로 사용되어 다양한 결말이 추가된다. 토끼의 간을 얻지 못한 거북이 도망을 간다는 결말도 있고 도망가는 거북을 지켜보던 화타가 자신의 특효약을 용왕에게 주게 된다는 결말도 있으며, 자신의 똥을 나뭇잎에 싸서는 용왕에게 가져다 주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해학적 이야기까지 다양한 결말이 만들어진다.


토끼전에서 용왕이나 용왕의 신하인 거북이 토끼를 찾아가는 것은 바다를 동물화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주 신도 2리의 용왕의 아들 삼 형제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신도 2리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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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도 2리는 하멜이 표류해 왔다는 곳인데 훨씬 이전에는 용왕 아들 삼 형제가 거북으로 변신해 놀러 온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다 그만 바닷물이 빠지는 저조(간조)인 줄 모르고 도구리(물 웅덩이)에 갇혔다. 아버지의 병을 치료할 수 없어 슬퍼하던 마을 소녀가 해안가에 와 바다를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용왕의 아들들인 거북 세 마리가 도구리에 있어 아버지 먹이자 생각하고 세 마리를 잡아서 집으로 가려는데 거북들이 눈물 흘리며 자신들을 살려 주면 소원 세 개를 들어주겠다 한다.


_щ엺 (2)_01_01.JPG 제주 신도 2리 도구리 근처의 파도

그러자 소녀는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 달라 하고, 다른 하나는 남편감을 찾아 달라하고, 남은 소원 하나는 누군가 이 해안에 자신과 같이 안타까운 일을 겪는 사람이 찾아오면 그 소원을 들어줄 것을 말한다. 그러자 거북들은 집에 가 보면 아버지 병이 나아 있을 것이라 말한다. 형제 중 하나는 사람으로 변신해 자신이 소녀의 남편감이 되겠다 했다고 한다. 소녀는 용왕의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제주 신도 2리에 전해지는 설화다. 신도 2리에서 확인한 것은 도구리와 사람의 형체와 비슷한 파도다. 바다의 삶이 풍족하고 좋은 남편감을 얻기를 바라는 옛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라 생각된다. 바다를 동물화 하고 또 말을 할 수 있는 친숙한 동물에게 인격화한 다음 완전한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자연물에 대한 인격화의 과정이다.


이처럼 인도∙불교설화의 동물 설화를 토착 동물로 대체하고 이야기도 시대상황과 민중 감정에 맞춰 화자에 의해 변한다. 한국 동물 설화는 인도∙불교설화와 다르게 훨씬 사회비판적인 성향이면서 개인 구복적이다. 한국의 동물 설화는 한반도의 동물로 대체하고 시대를 비판한 것뿐만 아니라 토착신앙적 부분과 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게 되는데 신도 2리의 용왕의 아들이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동물이 인간으로 변하는 동물변신 설화가 만들어진다.


동물변신 설화


옛 기록들을 통해서 동물이 인간으로 변한 설화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의 웅녀의 이야기다. 어떤 의도와 방식으로 인간이 되는지 동물변신 설화에 대한 기록을 찾았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


『환인의 아들 환웅이 천부인 세 개와 3천 명의 무리와 태백산에 내려왔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에 있으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어느 날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쑥 한 타래와 마늘 20쪽을 주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곰은 여성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혼인과 출산을 위해 신단수에 빌었다. 환웅이 인간으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가 단군왕검이다.』


제왕운기의 단군신화


『상제 환인은 서자가 있었으니 환웅이다. 웅에게 일러 말하기를 “아래로 내려가 삼위태백에 이르러 크게 인간을 이롭게 할 지어다.”라고 하였다. 천부인 세 개를 받고 귀신 3천을 거느려 태백산 마루에 있는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다. 이분을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한다.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여 사람 되게 하여 단수신(檀)樹神)과 결혼시켜 아들을 낳게 했다. 이름을 단군(檀君)이라 한다.』

시조 신화의 대표적인 이야기인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서는 신이(神異)한 존재인 환웅(桓雄)이 웅녀와 정을 통해 단군을 낳았다고 전한다. 제왕운기의 단군신화는 주술적 방법이 등장하는데, 약물을 먹고 사람이 된다. 신이한 존재와 결합해 사람을 낳게 된 변신 설화다. 단군신화가 하늘의 뜻으로 동물이 인간으로 변했다면 신도 2리의 용왕 아들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었다.


곰나루 설화


『남자가 암컷 곰에게 납치를 당해 동굴에 갇혀 지내게 되었고 곰과의 동침으로 곰이 아이 둘(셋)을 낳았다. 아이 둘(셋)을 낳다 보니 암컷 곰은 인간 남자가 도망가지 않을 것 같아 동굴을 막았던 돌문을 열어 놓고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 남자는 틈을 타 동굴을 빠져나와 강을 건너는데, 암컷 곰이 돌아와 달라 하소연 하지만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자 상심한 곰은 새끼와 함께 물에 빠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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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인간과 친밀한 동물이기는 하지만 인간화되지 못한 곰과는 함께하지 못한다. 또 웅신사당(熊神師堂) 안의 추모비의 글에서 곰나루가 급류가 시작되는 곳이었고, 웅신단(熊神壇)에서 수신(水神)에게 제를 지냈다는 점으로 보아 곰이라는 동물은 물의 성질과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군신화의 곰은 수신을 상징하고 호랑이는 산신을 상징한 것이라면 농경사회로의 전환기의 이야기로 해석된다.


농경사회로의 전환, 특히 벼농사로의 전환기에는 수신(水神)의 권위가 높았다. 그런 점에서 단군신화는 수신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삼국유사에서 환웅이 서자(庶子)로 기록되어 있는데 인도의 장자(맏아들) 계승의 풍습에 영향을 받은 일연이 그렇게 기록한 것으로 판단된다.


인도에서 장자는 왕위나 가업을 계승하고 서자(둘째 아들)는 종교인이 되었다. 아버지 환인에게 받았다는 삼부인(칼과 거울, 방울)을 무구(巫具, 종교제의에 사용되는 기구)라고 해석하면, 환웅이 종교인이자 서자(庶子)인 종교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한 일연의 의도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단군신화는 신앙과 수신의 결합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승려 일연이 생각하는 제정일치 군주인 단군은 서자여야만 했을 것이다.


설화에서 동물은 숭배의 대상이면서 대립의 대상이다. 초월적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는가 하면, 현실의 세계에서 인간과 극한 대립을 한다.


인간은 동물과 삶의 영역을 공유하고 있었다. 수렵과 목축을 통해서 인간의 영역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가축에 포함되지 않는 동물이나 맹수들은 자연의 영역이었다. 수렵과 목축의 시대에서 농경시대로의 변화에 따라 인간 의지의 공간과 존재로 변화되어야 했던 것이 동물변신 설화의 의의다. 강감찬 설화를 보면


강감찬 설화


『늙도록 자식이 없던 강감찬의 아버지에게 점쟁이가 찾아와 백 명의 여자와 사정을 하지 않으며 관계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 준다. 여기저기 떠돌며 점쟁이의 말대로 사정을 하지 않고 99명의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 한 명 남았기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한 명 채울 수 있어 돌아가는 길이었다.


산중을 헤매다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어느 인가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었다. 날이 풀리지 않자 며칠 그 집에 신세를 지며 지내다 여인과 좋은 감정이 일어나 관계를 하게 된다. 날이 개자 집으로 돌아간 강감찬의 아버지는 여인이 보고 싶어 찾아갔으나 여인의 집은 온 데 간데없었다.


열 달 후에(몇 년 후에) 그 여인이 강감찬의 집에 아기를 안고 찾아와 말하길 당시 강감찬의 아버지가 관계하여 생긴 아이라 했다. 강감찬의 아버지는 여인이 건네준 아이를 보니 꼭 여우와 같았다. 여인은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어느 대신의 결혼 연회에 아버지가 참석하자 강감찬도 따라기로 했다. 혼가에서는 신랑이 죽었다며 떠들썩했는데 강감찬이 혼가의 대문에 발을 들이자 신랑이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 또 신랑의 방을 지키던 사람들이 다시 신랑이 죽었다며 외치는 것이었다.


기이하게 여긴 강감찬은 신랑의 방에 들어가 신랑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자 신랑이 강감찬의 눈과 마주치자 곧 큰 여우로 변하여 쓰러졌다. 강감찬은 신랑을 가마에 태워온 사람들을 향해 오던 중 어디서 멈춰 오지 않았냐며 물었더니, 신랑이 오줌이 마려워 어느 고목나무 근처에서 세웠다고 가마꾼들이 대답한다.


그 말을 듣고는 가마꾼들에게 그 고목나무 밑에 여우 굴이 있으니 그곳을 찾아보라 강감찬이 말했다. 과연 가마꾼들이 나무 밑을 보니 강감찬의 말대로 여우 굴에 진짜 신랑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여우가 신랑의 오줌을 맞고 신랑으로 변신한 것이었습니다. 신랑을 굴속에 가두고는 여우가 가마에 타고 혼가에 왔던 것입니다. 신랑을 집에 데려와 간호해 다시 혼례가 이뤄졌다는 이야기다.』


여우의 아들인 강감찬과 신랑으로 변신한 여우는 서로 대립적이다. 강감찬은 인간을 위한 선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신랑을 죽이고자 했던 여우는 악의 상징이다. 강감찬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된 존재지만 가짜 신랑은 여우라는 동물의 의지가 개입된 존재다.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동물이면 두렵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이라 여겼다. 강감찬은 동물과의 결합을 통해서 신성성을 가진 신화의 인물로 그려지게 된다. 대체로 설화에서 선한 동물은 인간의 의지를 갖거나 통제 가능한 동물들이 된다.


옛사람들의 생각도 그렇지만 지금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영화에서도 인간의 의지가 개입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선과 악이 결정된다. 인간의 의지가 선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음에도 인간의 의지가 개입된 것에 더 선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의 의지를 뺀 이야기는 호랑이 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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