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도깨비
1
『부자인 형과 가난한 동생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마당에 형과 동생이 나란히 널어놓은 곡식을 시어머니가 보자 가난한 동생을 생각해 형의 곡식을 동생 쪽으로 덜어놓았다. 조금 후에 작은 동서가 오더니 시어머니가 덜어 준 만큼 다시 형 쪽으로 덜어내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큰 동서가 크게 감명을 받아 큰동서는 작은 동서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큰동서는 동생네 집에 쌀을 주어 잔치를 하게 했다. 자신의 남편을 동생 잔칫집에 데려가 취하게 한 다음 취한 남편을 동생의 방에서 잠이 들게 했다. 큰동서는 남편의 동생과 동서를 불러 자기의 땅문서를 형 모르게 줬다. 그러고는 다른 땅문서를 방바닥에 헤쳐 놓았다. 잠에서 깬 남편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묻자, 남편이 동생에게 재산을 나눠주려고 하였다면서 그가 술에 취해서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형은 동생에게 재산을 나눠주게 되었다.』
2
『우애가 깊은 삼 형제와 삼 동서가 있었다. 형제 내외가 한 곳에서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자기들 우애가 깊은 것은 형제들의 마음이 착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하고 동서들은 동서들이 사이가 좋아서 그럴 수 있다고 서로 남자와 여자로 갈려 다퉜다.
나중에 큰 동서는 두 동서를 불러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한 집씩 차례로 음식을 하였는데, 자기 식구끼리만 먹고 음식이 부족하다며 나머지 형제들 식구들은 부르지 않게 했다. 그렇게 하기를 반복하니 조금씩 형제들의 마음에 불만이 쌓이다 결국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곳에 세 동서들이 찾아가서 지금까지의 일은 자기들이 계획한 것이고 자기들의 주장이 옳은지 증명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삼 형제는 삼 동서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형제의 다툼 문제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에 의해 갈등이 해소되기도 한다. 설화에서는 소설의 놀부 처와 달리 형제의 우애를 더 돈독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만약 형제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또 혈연관계가 아닌 이웃과의 갈등은 새로운 중재자가 등장하는 게 된다. 도깨비다.
도깨비와 금기
1
『두 형제가 살고 있었다. 나무 하러 산에 가던 중에 형이 냇가에서 돈(금덩이)을 주웠다. 돈에 눈이 먼 동생은 독초로 형의 눈을 멀게 하고 돈을 가지고 도망갔다. 형은 앞을 볼 수 없어 천천히 집을 향해 기어가는 도중에, 근처에서 말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기어가 소리를 들어보니 도깨비(신비한 노인)들의 말이었다. 한 도깨비가 동생이 형의 눈을 멀게 한 것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도깨비가 근처의 샘에서 눈을 씻으면 다시 볼 수 있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인근 마을의 부잣집 딸이 병에 걸렸는데 그것은 몹쓸 지네가 천장에 살면서 밤마다 처녀에게 해를 입히니 천장을 떼어내 연기를 피워 잡으면 된다고 말한다. 또 어느 곳에 가면 금은보화가 있는데 눈을 멀게 한 동생과 눈먼 형이 어리석게도 가난하게 산다고 비웃었다.
샘을 찾아 눈을 씻고 앞이 보이게 된 형은 그 길로 부잣집에 찾아가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며 도깨비들이 말한 대로 연기를 피워 천장을 뜯어내 지네를 죽였다. 죽어가던 딸을 살려내고 형은 그 집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집에 거지가 찾아왔는데 자세히 보니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간 동생이었습니다. 거지가 된 동생은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물어 자신의 눈을 멀게 하고 도깨비들이 있는 곳으로 형처럼 기어갔다. 하지만 그걸 알아챈 도깨비들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
(혹은, 형은 거지가 된 동생에게 아내를 구해주고 많은 재산을 줘 다른 곳으로 이사 가게 했다. 이사를 가게 된 날 이상하게 동생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형은 삽으로 땅을 파내고 발을 빼주려 했으나 그때 하늘에서 벼락이 쳐 동생이 죽는다.)』
갈등을 조정해주는 존재로 도깨비가 등장한다. 딱히 법률로 죄를 물을 수 없거나 인간적 이해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도깨비가 등장한다. 대체로 도깨비 설화에서는 탐욕, 시기, 질투를 품은 자들에게 벌을 준다. 혹부리 영감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도깨비는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흔히 뿔이 달리고 체구가 크고 푸른 몸에 붉은 털이 난 모습의 도깨비를 떠오르지만 사실은 일본의 요괴 오니의 모습이다. 한국의 도깨비는 모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삼국시대부터 기와에 새겨져 있기도 하지만 도깨비의 모습을 묘사한 설화는 없다. 또 봤다 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정도전의 사이 매문을 보면,
『산해의 음허지기陰虛地氣(땅의 음기)와 초목토석(草木土石)의 정(精)이 훈염융결薰染瀜結하여(향내가 나무에 맺어) 이매(魑魅, 도깨비)가 된다. 이매(魑魅)란 사람도 아니고 귀鬼(귀신)도 아니고 유幽(저승)도 아니고 명明(사람, 이승)도 아니다. 그것은 일물(一物)이다.』
삼국유사의 비형랑 설화에서 귀鬼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 행동이 도깨비와 같다 하여 가장 오래된 도깨비 언급이라고 추정한다. 도깨비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조선시대 이후에 등장한다. 정도전의 사이매문에 도깨비 설명이다. (鬼나 유幽와 명明도 아니라 한 것은 정도전이 유학자로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중용(中庸) 16장에 의한 세계관을 토대로 설명한 것이라 생각된다. 일명 귀신장(鬼神章)이라는 중용 16장을 보면,
『자왈子曰, 귀신지위덕鬼神之爲德, 기성의호其盛矣乎.
귀신의 덕 됨이 성대하도다
시지이부견視之而不見, 청지이부문聽之而不聞, 체물이부가유體物而不可遺.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지만, 귀신은 모든 사물을 체현시키며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사천하지인제명성복使天下之人齊明盛服, 이승제사以承祭祀,
양양호洋洋乎 여재기상如在其上, 여재기좌우如在其左右.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재계하고 깨끗이 하게 하며, 의복을 성대하게 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는 도다.
귀신은 바닷물이 사방에 넘치듯 하지 아니하는가? 위에도 있는 듯하며, 좌에도 우에도 있는 듯하지 아니하는가?
시왈詩曰, 신지격사神之格思, 부가도사不可度思, 신가사사矧可射思.
시에 말하기를, 신이 오시니 그 모습 헤아릴 길 없도다. 어찌 역겨워하리까
부미지현夫微之顯, 성지부가엄誠之不可揜, 여차부如此夫.
귀신은 숨겨져 있지만 잘 드러난다. 만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생성의 성, 그 진실함을 가릴 수 없음이 이와 같도다. – 도올 김용옥 해(解), 여느 해석보다 리듬감 있어 참조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는 저승에서 돌아온 사람에 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저승차사가 명부를 잘못 보고 저승으로 데려갔으나 다시 확인해 보니 잘못 데려온 것이다. 그러자 저승차사는 그를 흰 개를 따라가게 해 이승으로 돌려보냈다는 설화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면 기억들이 사라진다. 망각의 강 레테에서 기억을 씻어내듯 망자는 저승으로 가면서 기억을 씻어내고 다시 사람으로 환생한다. 아기가 양수 안에서 태어나듯. 그런데 흰 개를 따라온 자는 기억을 온전히 유지한 채 돌아왔다.
흰 개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기 위해 남원읍 해안가를 찾았다. 태풍이 제주도와 일본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불 빛이라고는 없는 해안가 방파제에서 새벽에 눈을 뜨니 흰 개들이 보였다. 그것은 파도였다. 번개가 치고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는 순간들에서 하얀 물보라들이 파도를 따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험한 바다로 나간 누군가가 안전하게 돌아올 것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 생각된다. (다른 해안가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남원의 검은 백사장과 검은 바다 폭풍우라는 세 조건이 만들어 낸 것이라 이야기의 흰 개는 남원읍 해안가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저승으로 가면 모든 기억은 파도의 물보라처럼 흩어진다.
삶을 끝낸 누구를 말할 때 “돌아가셨다”라 한다. 돌아 가신 곳은 몸은 땅에 정신은 하늘로 흩어진다고 옛사람들은 생각했다. 도깨비에 대한 형체를 설명하기보다는 흩어지지 않는 작용에 관한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을 보면,
『귀는 음의 넋이며 신은 양의 넋이다. 음양은 본래 일기(一氣)의 왕래여서 신이나 귀는 본래 하나이다. 기가 모여 형(形)을 이루고 혼(魂)이 나아가 귀(鬼)가 된다. 사람이 있으면 곧 귀가 있음은 당연하며 기백귀신(氣魄鬼神)은 모두 죽음에서 나오지만 사람뿐만 아니라 물(物)의 괴멸에 의해서도 나오므로 만물이 모두 귀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기가 응집되는데도 강약과 대소가 다르기 때문에 귀의 성립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어 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오래가는 것과 덧없는 것 등이 있고 영능(靈能)의 발휘에서도 신명(神明) 한 것이 있고, 변괴를 나타내는 것이 있고, 초인의 능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등 차이가 있다. 물(物)이 오래된 것은 그 기도 오랜 것이므로 귀기와 잘 감응하기 쉽고 귀기와 물기는 서로 근접하여 귀기가 먼저 물(物)에 붙어 오래되면 서로 혼화(渾和)하여 하나가 된다. 독각귀(獨脚鬼)도 아마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
독각귀(도깨비)의 탄생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공간과 의식의 영역으로 따지면 사람과 자연의 영역에 있었던 것이 서로 만나 자연의 순리를 따르지도 않으며 인간의 도리도 따르지 않는 존재가 도깨비라는 말이다.
만물은 생성과 소멸의 규칙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깨비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귀신도 아니다. 사람과 관련 있다가 용도가 다한 생활용품이나 농기구가 땅에 흩어지지 않고 남아 음허지기가 스며들어 도깨비가 된다. 도깨비가 사는 곳도 인간이 살았던 폐가다.
그런데 도깨비의 형상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전해지는데, 기와에 도깨비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 자연현상의 위엄에서 형상을 갖추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용이 되었던 것처럼 도깨비도 현상에서 형상으로 모습을 갖춰 나간 듯하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하거나 두려움을 갖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용에게 있는 위엄을 제거하고 짐승의 무섭고 추한 것들로 도깨비는 만들어진다. 날카로운 이빨, 발톱, 큰 덩치가 기본이 된다.
도깨비의 성질은 비슷하지만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문헌에서는 귀(鬼), 귀괴鬼怪, 독각귀獨脚鬼, 이매망량魑魅魍魎, 이매魑魅, 귀신鬼神, 귀매歸妹, 야차夜叉, 역신疫神, 도깨비불인 귀화鬼火등의 이름들의 한자어로 기록되어 있다.
설화에서는 지역과 시대를 달리해 톳채비, 토찌비, 똑깨비, 도채비, 독갑이, 귓것, 영감, 김대감, 김서방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진다. 하지만 지금의 도깨비로 불리게 된 이유는 아마도 가장 보편적으로 도깨비가 어떤 성질인지 공감이 가장 많이 되고 말하기 편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도깨비의 어원을 찾아보면 석보상절에서는 돗가비는 돗과 가비의 합성어라 한다. 돗은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불, 등, 돛, 씨앗, 절구, 농기구 등 생산과 화식을 위한 풍요로움을 뜻하며, 가비는 성인인 애비이며, 돗 + 애비가 돗가비로 풍요로운 성인 어른을 뜻한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의 도깨비로 전해진다. 어원으로 보자면, 마치 폐 농기구처럼 도깨비는 인간에게 풍요를 안겨 준 어떤 존재다.
전라도와 제주에서는 지금도 풍어를 빌며 도깨비에 제를 올린다. 그래서 해안가에서 도깨비는 돛채비라 한다. 배의 돛(범)에 채비가 합해진 말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도깨비불은 밤에 물고기를 잡으려 등을 밝힌 여러 어선들의 광경을, 해안가에서 바라본 풍경일 것이라고도 해석한다. 그래서 어유야담에서 도깨비 목격담을 보면, 큰 불을 보았으나 다가가 보니 아무것도 타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혹부리 영감의 이야기에서 도깨비를 통해 옛사람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2
『혹부리 영감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근처의 빈집으로 들어가 하룻밤 묵으려 했다. 행여 주인이 들어와 내쫓으려 하면 어쩌나 해서 다락에 올라가 잠을 자기로 했다. 잠을 자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집으로 몰려와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혹부리 영감이 궁금해 살짝 엿보니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들이었다. 도깨비들이 계속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중에 혹부리 영감은 자기도 모르게 따라 불렀더니 혹부리 영감의 목소리를 듣고는 도깨비들은 영감을 찾아내어 다락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러더니 혹부리 영감이 노래를 잘하는데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혹부리 영감이 그것은 비밀이라며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하니 도깨비들은 많은 돈을 주겠다고 거래를 해오자 혹부리 영감은 자신의 오랜 결점이었던 혹 때문에 노래를 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도깨비들이 방망이로 혹을 감쪽같이 떼어내고는 혹부리 영감에게 많은 돈을 주었다. 그런데 혹부리 영감의 옆집에도 큰 혹이 달린 영감이 살고 있었다. 혹부리 영감의 말을 듣고 자신의 혹을 떼어내고자 그 빈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도깨비들을 기다렸다. 도깨비들이 나타나서 지난번에 자신들을 속였다며 화를 내며 노인에게 떼어간 혹을 붙여주었다.』
동화에서는 교훈적 이야기이지만, 설화에서의 이웃 혹부리 영감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따라 한 것에 불과하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후의 문제일 뿐이다. 앞서 형제의 이야기에서는 출생의 선후관계가 심성의 선악이 결정되어 이야기되고 있다. 출생의 선후가 심성의 선악이 결정되는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다. 말하기의 편의성에서 그렇게 된 것 같다.
혹부리 영감에서 짚어야 할 점은 혹과 도깨비가 살고 있는 빈집(폐가, 흉가)과 혹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의 천호동굴 가는 길의 초입에 한 폐가다. 예부터 마을 초입에는 인가가 아니라 장승이 세워졌다. 누군가 이곳에 집을 지었지만 더 이상 살지 않고 폐가가 되었다. 그리고 폐가의 아래에는 묘가 들어와 있다. 이런 집을 흔히 도깨비 집이라 한다.
도깨비들 때문에 자신의 결점인 혹이 장점으로 바뀐다. 이웃의 혹부리 영감이 다시 결점을 가지고 도깨비를 찾지만 결점을 더 얻기만 한다. 이웃의 결점을 계속 들춰내지 말라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혹부리 영감에서의 핵심은 폐가와 혹이라는 결점이다.
성호사설에서 귀는 음의 넋이라고 했다. 또 중종실록(13년 1월 10일)에 보면 중종이 “정인(正人)에게는 물괴(物怪)가 범접하지 못하니 그것은 마치 도깨비가 태양을 피하는 격이다”라 기록된 것으로 봐서 도깨비는 해가 져야 나타난다 생각했다.
용재총화에서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중에 도깨비와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고 서양의 유령(ghost)처럼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소리치고 칼을 들어 위협했더니 도망갔다고 한다.
도깨비는 인간에게 해(害)를 입히기도 하지만 인간이 물리치는 이야기가 참 많다. 밤중에 술 취한 사람과 마주치면 씨름을 하자고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인간이 이기게 된다. 다리가 하나인 독각귀(獨脚鬼, 다리가 하나인 귀신)와 사람이 씨름에서 이겨 도깨비를 근처 나무에 묶어 놓고 다음 날 찾아가 보면 헌 빗자루가 묶여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또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도깨비와 친구가 되기도 한다.
3
『가난한 할아버지(짚신장수, 과부, 남자, 부부)가 도깨비에게 버리려던 짚신을 공짜로 주었더니(팥죽을 주었더니)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도깨비가 다음 날 갚겠다며 돈을 빌려달라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도깨비에게 돈을 빌려 주었더니 다음 날 찾아와 돈을 갚았다. 그런데 또 다음날 도깨비는 자신이 돈을 갚은 것을 잊은 모양인지 돈을 주고 갔다. 계속 그러는 것이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도깨비가 알아차리기 전에 그 돈으로 땅을 사놓았다. 도깨비가 다시 돈을 돌려 달라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논을 사놓아서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도깨비는 논에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논을 떼어 가려고 했으나 도깨비의 힘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화가 난 도깨비는 논에 자갈을 잔뜩 뿌려 놓자 할아버지가 자갈이 많아서 농사가 잘되겠다고 하니 도깨비는 그 말을 듣고 논의 자갈을 다 치웠다.』
도깨비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도깨비는 누구를 부자로 만들어줄 의도가 전혀 없었다. 사람의 욕망을 채워 주려던 것도 아니고 그것을 의식하지도 않으면서 건망증 때문에 그렇게 된다. 반대로 건망증 때문에 돈을 갚지 않아 다툼이 발생하는 사람과 대비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돈을 갚는 것에 관한 문제다. 또 하나는 도깨비가 좋아한다는 짚신과 팥죽이다. 다리가 하나인 도깨비에게 짚신 한 짝이면 된다.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 팥죽으로 된 이야기도 있는데, 농경사회에서 봄을 준비하는 것과 보릿고개를 의미한다.
4
『도깨비에게 돈을 빌려준 나무꾼이 있었다. 도깨비가 다음날 찾아와 돈을 갚았는데도, 계속 찾아와 꾼 돈을 가져와 나무꾼은 큰 부자가 되었다. 남자가 고마운 마음에 도깨비에게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개고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도깨비에게 다음날 개고기를 대접했는데, 다른 도깨비들이 그 소문을 듣고 몰려와 남자의 집에 돈을 놓고 갔다. 남자는 당황하여 도깨비들을 떼어내려고 도깨비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망아지 사체라고 말해 줬다. 그러자 이번에는 도깨비가 남자에게 무엇을 제일 무서워하는 물었더니 남자는 돈이 제일 무섭다고 대답했다. 다음날 남자는 집 주위에 망아지 사체를 잔뜩 늘어놓았고, 도깨비들은 돈을 잔뜩 던지며 도망갔다. 그래서 남자는 더 큰 부자가 되었다.』
건망증 때문에 부자가 된다. 앞서 이야기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개고기와 망아지다. 개고기를 대접하니 너무 많은 도깨비들에게 대접해야 할 개고기 때문에 도깨비들이 싫어하는 망아지 시체를 놓아두고 더 큰 부자가 된다.
도깨비가 좋아하는 음식이 개고기와 메밀묵이다. 옛사람들은 고기를 그리 풍족하게 먹을 수 없었다. 소는 가축이자 농사일에 쓰여 함부로 할 수 없었고 돼지 또한 사람과 먹는 것이 겹치고 많이 먹어 키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돼지는 그 어원에서 도깨비와 연관이 있다. 돗은 고구려어에서는 지금의 돼지를 뜻한다. 돼지는 돗과 아지의 합성어다. 아지는"아기"에서 파생된 말로 해석된다. 되와 아지가 결합해 돼지가 된 것이다. 망아지, 송아지를 쓰지만, 돼지에게는 돼아지를 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돼지라는 말 자체에는 돼지 새끼의 의미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깨비에는 많이 먹는다는 돗의 의미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먹는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소는 농경생활에 필수적이고, 돼지는 도깨비와 겹친다. 말은 제주에만 있다. 그래서 네 발 달린 짐승의 고기를 대접할 수 있는 것은 개 밖에 남지 않는다. 닭이나 토끼, 또 다른 가축들도 있다. 닭은 날개 달린 것이라 도깨비의 성질과 결합될 수 없다. 토끼 또한 고기와 가죽으로 겨울을 나야했기에 함부로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도깨비에게 주는 것은 가난이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주고 간 돈은 부이지만, 도깨비가 가져간 것은 가난이다. “가난을 가져가는 것” 이게 해석의 단서다. 가난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메밀묵이다. 요즘에야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 하지만 먹을 것이 풍족했다면 거친 식감의 메밀을 굳이 먹을 필요 없었을 것이다.
국조오례의로 향례를 권장하던 향제에서 사용되는 희생 고기인 개고기를 가져와 먹는데, 국가의 재산을 먹는데 생색을 내며 누군가에게 먹이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개는 마을에서는 호환을 물리치는 한 수단이 된다. 마을에서는 일정한 숫자의 개를 키워 호랑이를 막으려 했을 것이다. 오수의 개처럼 산불만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 호랑이에 희생한 개들이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개고기를 먹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먹어서도 안 되는 것이 개고기였을 것이다.
5
『농부가 논에 모내기를 해 놓았는데 도깨비가 와서 논의 모를 뽑았다. 그러자 농부는 도깨비가 가장 좋아하는 메밀묵을 논에 뿌리면서 논에 남아 있는 나머지 모도 다 뽑아달라고 했더니 도깨비가 논에 모를 다시 심어 놓았다. 농부가 또 메밀묵을 도깨비에게 갖다 주면서 논에 개똥이 하나도 없이 해달라 하니 도깨비는 이번에도 근방의 개똥을 모두 주워 논에 넣었다. 개똥이 거름이 되어 농사가 아주 잘 되어 농부가 부자가 되었다. 그러자 도깨비는 심술이 나 논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떼어 가려했으나 할 수가 없었다.』
도깨비는 마을 밖의 폐가나 동굴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도깨비는 마을에 찾아와 논에서 자갈을 치워주거나 거름의 용도인 개똥을 뿌려주는 등 노동을 제공한다. 노동을 제공하지만 도깨비가 얻은 것은 메밀묵이다. 메밀묵은 가난한 식탁을 의미한다. 농사를 망쳐 자신들도 겨우 메밀묵을 먹을 형편이었고, 그래서 누군가 일을 해줘도 메밀묵 밖에 줄 것이 없다. 메밀묵은 도깨비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것밖에 줄 것이 없다는 것일 수 있다. 마을 사람이 아닌 외부의 노동은 값싸게 쓰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다른 도깨비 설화에서는 본심을 숨겨야 한다는 것이다.
6
『도깨비를 남편으로 사는 여자가 있었다. 아내가 남편 도깨비에게 무엇을 가장 좋아하느냐 묻길래 사실 가장 무서워하는 말의 피를 좋아한다고 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논에 개똥이 많아서 농사를 못 짓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오히려 논에 개똥을 잔뜩 넣었다. 그랬더니 그 해 농사가 아주 잘 되었다. 남편 도깨비가 아내에게 무엇이 제일 먹고 싶은지 물으니 천도복숭아라고 말해줘 도깨비는 천도복숭아를 구해와 아내게 먹으라 주었지만, 아내는 도깨비 남편을 쫓아내려 말의 피를 뿌렸다. 그러자 도깨비 남편은 “부부간이라도 속에 있는 말은 하지 마오!”라는 말을 하며 집을 떠났다.』
수명을 연장해 준다는 천도복숭아를 구해 왔는데 도깨비는 아내에게 쫓겨 난다. 오랫동안 백년해로 하며 부부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데 말이다. 속마음을 털어놓지 말라는 것은 부부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인간관계에서 옳은 말이라도 해야 할 때 해야겠지만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속 마음”이 핵심이다.
7
『게를 잡아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도깨비가 불쌍하게 생각하여, 뒤집어쓰면 몸이 보이지 않는 보자기인 능청보를 주었다. 남자는 능청보를 쓰고 도둑질을 하여 부자가 되었다. 이웃 남자가 이상하게 여겨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물으니 남자가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랬더니 이웃 남자가 능청보를 자기에게 팔라며 애원했다. 하지만 능청보가 담뱃불 때문에 구멍이 났다며 거절했지만, 그래도 결국 사 갔다. 이웃집 남자는 구멍 난 능청보를 쓰고 도둑질하다 잡혀 죽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고 싶어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돈을 탐낸다. 도둑질이 잘못인 줄을 알면서 조금 잘 살아보겠다고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치지만 결국 그 허물은 밝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도깨비 이야기에서 탐욕 때문에 자신을 망치게 된다.
그런데 도깨비는 마을 밖의 폐가나 동굴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도깨비는 마을에 찾아와 논에서 자갈을 치워주거나 거름의 용도인 개똥을 뿌려주는 등 노동을 제공한다.
도깨비 설화의 핵심 단어들을 종합해 보면, 형체가 없으나 변하지 않는 어떤 것, 선악의 결정이 선후라는 간단한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 이웃의 부와 탐욕, 그리고 가난을 남의 것으로 하려는 마음, 남에게 베풀기보다는 가난을 전가하면서 자신이 부자가 되려는 것, 속마음을 선뜻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 다른 사람의 결점과 허물을 들춰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간의 금기와 관련된 것들이다.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에는 능향원에는 할망당과 도깨비라 하는 영감당을 모시고 있다. 도깨비는 마을 밖 금기의 존재다. 마을 안에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은 마을 밖으로 추방한다. 그런데 제주의 능향원은 도깨비인 영감당을 모시고 있다. 돼지고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산악지역부터 농경지역인 중산간 지역까지 돼지고기를 금기하고 있다. (사진은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의 와흘본향당의 당신나무) 그런데 해안가에서는 돼지를 키우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해산물 만을 먹고살 수는 없기 때문에, 해안가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어야 했다. 그래서 영감당을 지금의 능향원에 모신 정확한 기록은 1970년대부터 마을 대표들이 영감당을 당에 모시고 돼지고기를 올려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게 됐다지만 그 이전부터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금기를 마을 안으로 들여올 수도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공동체를 위해 마을 밖으로 추방하려 한다.
그래서 도깨비와 같은 말과 행동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하면 안 되는 것이고, 외부 세계에는 해도 되는,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마치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마을은 자연재해와 짐승으로부터 함께 서로를 보호해주는 곳이다. 옛사람들은 마을과 외부세계의 경계에 탑을 세웠다. 그 탑에 재앙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말기를 바라며 제사를 지낸다. 탑에도 도깨비가 마을에 액운을 가져오지 말라며 제사를 올려 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한다. 그곳에 고수레처럼 먹을 것을 남기기도 한다.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으로는 장승들이 막는다. 무엇인가가 마을 내부로 침입하는 것을 막아 줄 것을 기원한다.
폐가를 방치하면 집을 잃었거나 버린 채 떠돌던 누군가가 찾아가 살게 된다. 새로운 이주민이 집에 남겨진 농기구로 마을 사람들에게 노동을 제공해 줄 수도 있고 행패를 부릴 수도 있다. 그래서 도깨비는 주로 폐가의 헌 물건들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마을의 공동체로의 일원이 되지는 못한다.
떠돌던 사람이 역병을 가지고 마을에 들어온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떠도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을은 그냥 지나쳐 주기를 원해 먹을 것을 달라 해야 할 장소로 마을 초입의 돌탑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가난을 피해 집단으로 떠도는 사람들이 보이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밖에서 경계에서 잘 대접한 뒤에 다른 마을로 갈 것을 설득했을 것이다.
각 집들은 그 집 가장이 보호해야 하는 곳입니다. 집에도 신성한 힘이 깃들어 함께 거주한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면 전적으로 잘 모시지 못한 집주인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병이 들면 신을 잘 모시지 못했다고 생각해 신을 달래주기 위해 굿을 하기도 했다.
기와에 도깨비 문양을 새겨 액운을 막으려 했다. 집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곳은 부엌이었다. 부엌에는 음식을 하기 위해 불을 사용하는 곳인데, 잘 다스리면 풍요로움을 주지만 잘 못 다스리면 재앙이 된다. 화신이자 부엌 신인 조왕신을 잘 모셔야 했고 불씨도 꺼트리지 말아야 했다. 씨앗과 불(火)의 의미인 “돗”이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지붕의 기와에는 계절과 자연현상을 관장하는 용과 도깨비인 귀면와를 사용해 재앙을 피하려 했다. 귀면와에 맹수인 호랑이와 멧돼지의 형상이 더해 맹수의 피해에도 대응하려던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귀면와다. 역설적이게도 도깨비를 이용해 마을 밖으로 액운을 몰아 내려 사용한다.
그래서 도깨비 설화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마음, 그중에서 탐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으며 그것을 통해서 마을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인간이 시대를 달리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도깨비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명종실록 31권, 명종 20년 4월 14일
“도깨비가 우글거리는 먼 고장에 내치어 영원히 교화 밖의 백성이 되게 하라”
이렇게 마을에는 인간을 위한 것들을 남기려 했다. 그리고 인간을 위한 신들을 특정한 날에 모시기도 했다. 그것이 굿이다. 서사무가에 실린 설화들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