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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설화

해인사 설화

by 꼭그래

해인사

DSC_4736.JPG 합천 해인사

신라 애장왕 3년(802년) 순응과 이정이라는 스님들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라 전해진다. 해인사海印寺라는 이름은 화엄경의 화엄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화엄華嚴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러 수행 방법을 거쳐 덕을 쌓은 것을 말하며, 삼매三昧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의미한다. 맑고 맑은 깨달음으로 무엇이든 드러나게 하는 대장경을 간직한 해인사는 창건설화와 대장경 설화에서도 화엄삼매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해인사 설화


옛날 이 가야산에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자식이 없어 적적하던 노부부의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집에 들어온다. 어디서 온 강아지인지 모르지만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함께 살기로 한다. 노부부는 자식같이 생각하며 사랑과 정성을 다해 강아지를 키웠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지내니 큰 개로 성장했다.


만 3년이 된 어느 날 아침, 노부부는 여느 때와 같이 개에게 밥을 주었지만 먹지 않고 잠자코 노부부를 바라보더니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는 본래 용왕의 딸로 잘못한 일이 있어 그 벌로 개로 인간 세계로 왔습니다. 속죄의 3년을 두 분의 은혜로 잘 보내고 이제 용궁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은혜를 갚고자 용궁으로 돌아가면 아버님이신 용왕에게 두 분에게 감사함을 보답하고자 청하겠습니다. 그러면 열두 사자가 아버님을 찾아 용궁으로 모셔갈 것입니다. 그리고 제 아버님이신 용왕께서 보답을 하고자 원하는 것 무엇이든 가져가라 하실 터이니, 그때 용궁의 해인海印을 달라 하십시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개는 사라졌다. 개의 말처럼 노인을 용궁으로 데려가려 사자가 찾아왔다. 사자를 따라 용궁에 간 노인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노인은 홀로 집에 남겨 둔 노파가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그러자 용왕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가져가도록 한다. 노인은 개의 말처럼 "해인"을 달라 청한다. 용왕은 어쩔 수 없이 해인을 노인에게 준다.


용궁에서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해인을 손에 쥐고는 "용궁의 음식"이라는 말을 하자 전에 먹었던 용궁 음식이 차려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노부부는 먹을 걱정 없이 살다 죽을 때가 되어 해인을 지금의 해인사에 맡겼다 전해진다.


해설


개의 의미


DSC_4742.JPG 합천 해인사 장격각

해인사 설화에는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개가 등장한다. 옛사람들이 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야 해인사 설화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개가 등장하는 다른 사찰 설화를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해인사 대장경 설화에서도 개가 등장한다. 삼매三昧를 의미하는 눈 셋 달린 삼목구三目狗와 관련된 설화다. 이거인이라는 사람이 길에서 주운 삼목구를 삼 년 간 키웠으나 죽고 말았다. 이거인이 병에 걸려 죽자 저승에 가게 되었다. 저승에서 이거인을 알아보고 삼목대왕이 이거인에게 이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이승으로 갈 방도를 알려준다. 염라대왕이 이승에서 무슨 일을 하다 왔느냐 물으면 대장경을 만들다 죽었다 대답하라 했다. 이거인은 염라대왕에게 삼목대왕이 하라는 대로 대장경을 만들다 죽었다는 말을 하자 염라대왕은 불사를 중단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대장경을 완성할 만큼의 수명을 주어 이승으로 이거인을 돌려보냈다 한다. 대장경 설화에서도 개는 저승과 이승을 연결해 주는 존재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는 개로 환생한 어머니와 관련한 창건설화가 김제 모악산 귀신사에 전해지고 있다. 고생만 하다 죽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대접받으려 개로 환생했으나 부엌에서 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모진 매를 맞았다. 아들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 살아서 받지 못한 효도를 받고자 개로 환생했으나 그러지 못함을 한탄했다. 다음 날 개가 어머니임을 알고 두 아들은 개로 환생한 어머니를 업고 팔도강산을 유람시켜드렸다. 개로 환생한 어머니가 죽자 유명한 지관을 찾아 묘터를 잡았으니 지금의 귀신사다.

_DSC0011.JPG 귀신사 대광보전

개는 짐승이면서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개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옛사람들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짐승인 개를 자연과 연결해 주는 매개적 존재로 생각했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사후세계인 저승과도 연결해 주는 존재로도 생각했다. 제주 남원읍에 전해지는 설화에는 명부가 잘못되어 너무 빨리 저승에 가게 됐지만 이를 알아차린 저승 사자는 망자를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낸다. 이승으로 가는 방법은 흰 개를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DSC_8496.JPG 제주시 남원읍 검은모래 해변

유교와 불교에서의 개


개는 주인에게 매우 충직한 동물이다. 주인을 불 속에서 구한 오수의 개를 비롯해 멀리서 주인을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사람들 입에 회자되고 있다. 옛사람들도 이 충직한 개의 면모를 통해서 인간 삶의 이념을 구현하려 했다. 유교에서 개는 충忠과 효孝의 의미다.


향음주례


유사(의례를 돕는 자)가 빈(손님, 대부일 경우에는 부사, 신분이 선비일 경우에는 소사)의 자리 앞에 희생고기(개의 고기)의 뼈를 잘라 올려놓은 희생제기를 진설한다. 주인이 조계(제례에서 주인이 손님을 맞는 동쪽 계단)의 동쪽에 단정하게 선다. 빈이 자리에 앉아 왼손으로 말린 고기와 고기 젓갈로 고수레를 한다. 빈이 말린 고기를 담은 대나무 제기와 고기 젓갈을 담은 나무 제기의 서쪽에 술잔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오른손으로 허파를 집는다. 외손으로 허파의 두꺼운 부분을 잡고 앉아서 비틀어 오른손으로 끝을 떼어 내어 고수레를 하면서 왼손을 들어 올린다. 허파를 맛보고 일어나 희생제기에 놓는다.


나이 들어 낙향한 관료 향대부가 고향의 재능 있는 선비를 찾아내어 왕에게 천거(추천)한다. 왕이 향대부의 천거를 받은 선비를 보고자 하면 향대부는 선비를 불러 대접하고 왕에게 보낸다. 향례중 향대부가 선비에게 술을 대접하는 향음주례의 한 대목이다. 물 한잔도 예를 다해 마실 정도로 유교에서는 예를 중요시한다. 이런 예는 임금 앞에 나아가 실수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술과 함께 먹을 음식인 희생고기는 삶은 개고기다. 세 번의 고수레를 하게 되는데, 살과 뼈와 허파를 집어 땅에 바치는 예를 행한다. 살과 뼈와 허파는 생명을 구성하는 단위로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에게 충직한 개처럼 선비는 땅의 다스림에 충직한 마음을 다한다는 의미로 개고를 바치는 것이다. 사람은 땅을 법도로 삼고 땅은 하늘을 법도로 삼으며, 하늘은 도를 법도로 삼고, 도는 자연을 법도로 삼는다는 노자의 말처럼 선비는 땅을 법도로 삼으며 땅에게 충직하는 것을 개를 바치는 것으로 땅에게 선비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한 것이다.


불가에서의 개


한 승려가 스승에게 물었다.


"개에게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스승이 답했다.


"없다!"


개는 주인에게 충직하다. 주인의 선악에 따라 충직함이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이 아니면 사람의 선악을 판별하지 않고 무조건 짖는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분별함 없는 개의 충직함은 의존과 집착으로 생각한다.


"경을 보거나 예불을 하거나 주문呪文을 외우는 것과 같은 일들은 멈추어야 한다. 만약 한결같이 경전을 보고 예불하는 일에 집착하고 공덕을 추구한다면, 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살피다가 한순간 상응相應하고 나면 이전처럼 경전을 보고 예불을 하고, 향을 피우며 꽃 한 송이 보고 한 번 절하는 등의 여러 가지 작용이 모두 헛되이 버릴 것이 없는 빠짐없이 부처님의 묘한 작용이며, 근본을 붙잡고 수행하는 것이다."


대혜보각선사어록의 선사 도겸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 말이다. 무조건 불경을 본다는 것은 불경에 집착하고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불경에 매여 있기보다는 상응하는 무엇이 있을 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불경을 말하는 것은 분별함이 없는 개의 짖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해인사 설화의 의미


해인사 설화에는 다른 세상과 연결된 개가 등장한다. 자연이나 저승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부처의 말씀을 은유적으로 표현된 바다 속 용궁과 연결되어 있다. 용궁에서 노인이 해인海印을 얻어 온다는 것은 부처의 말씀 중에서 해인삼매를 얻어 왔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해인사 설화의 의미전달이라 한다면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이 대적광전에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용왕이 노인에게 원하는 무엇이든 가져가라는 말에 개의 몸을 벗어난 용왕의 딸 말에 따라 상응한 결과 해인을 얻게 된다. 귀신사 설화와 대장경설화에서도 개의 몸을 벗어난 뒤에 사찰이 세워지고 삼목대왕의 몸을 되찾는 다는 것도 의존과 집착에서 벗어나 부처의 가르침을 그때그때 상응하게 사용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일과 경우가 다름에도 같은 잣대로 판단한다면 부처의 말씀이 구속과 집착을 위한 인간의 법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해인사 설화를 통해서 옛 승려들이 후대에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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