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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설화

미황사 설화

by 꼭그래

미황사

미황사.jpg 미황사 대웅보전과 뒷편의 달마산

남도의 금강산이라 하는 해남 달마산의 미황사 사적비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의조화상에 의해 세워졌다 한다. 정유재란 이후 1601년에 만선이 중창하게 되고 1660년에 3 창하였다. 1752년부터 2년에 걸쳐 다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미황사 창건설화

미황사4.JPG 미황사 대웅전 석가모니불

"돌로 된 배가 사자(獅子, 혹은 사재) 포구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물러나면 가까이 다가오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의조가 제자들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맞이하니 비로소 배가 포구에 도착했다. 배에 올라보니 금의인(金衣人)이 노를 잡고 있고 큰 상자 안에 경전·비로자나불상·문수보살상·보현보살상·40성중·53선지식(五十三善知識)·16나한·불화 등이 꽉 차 있고, 배 안에 있던 바위를 깨니(혹은 의조화상이 경전과 불상을 봉안할 장소를 제자와 마을 사람들과 의논하는데 근처에 있던 검은 돌이 갈라지면서 황소가 나오다) 검은 황소 1마리가 나왔다.


그날 밤 의조의 꿈에 금의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인도 국왕으로 금강산에 봉안하고자 경전과 불상을 싣고 왔으나 금강산에 절이 가득해 새 절터가 없어 돌아가던 중인데 이곳의 산이 금강산과 비슷하고 (혹은 산 꼭대기에 1만 불상이 계시기에 불상을 싣고 가다 이곳에 배를 댄 것입니다.) 소 등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가다 소가 머무는 곳에 절을 지으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다음날 소 등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길을 떠났는데 한 곳에 이르러 소가 한 번 크게 울고 드러눕자 그곳에 통교사라는 절을 짓고, 소가 다시 일어나 가다가 마지막으로 (드러누워 크게 한 번 울고는 숨이 끊어졌다) 머문 곳에 지은 절이 미황사다.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것을 기리기 위해 미황사라고 했다고 한다." - 다음 백과와 전남 향토사료


해설


바위에서 검은 소가 나오다

미황사2.JPG 미황사 일주문 뒤편의 바위

대흥사 다음에 미황사를 다룰까 했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설명해야 했기에 뒤로 미웠다. 관촉사와 선운사에서 언급한 돌배가 미황사 설화에서도 등장한다. 53선지식과 바위에서 검은 황소 한 마리가 나왔다는 것은 화엄경의 입법계 53설법을 의미한다. 수덕사에서는 수덕각시와 덕숭낭자가 바위 안으로 들어가지만 미황사 설화에서는 검은 황소가 나온다. 차이는 없다. 화엄경 입법계품 53번째 보현보살의 설법을 보면,


"부처의 청정한 법신은 어떤 세계와도 견줄 수 없다. 일체의 세간을 초월하고 유有무無를 떠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꿈같고 허공의 그림 같으며 본성은 허공과 비슷하다. 비록 바닷물을 셀 수 있다 해도, 허공을 헤아릴 수 있다 해도, 부처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다. 이 법을 듣고 기뻐하여 믿고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궁극의 깨달음을 완성하여 부처와 동등하게 되리니."


보현보살의 설법으로 화엄경 입법계는 끝난다. 자연의 물리법칙으로는 돌 배가 가라앉아야만 하지만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법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현보살의 청정한 설법을 담은 화엄경에서 소가 태어난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숨 쉼이 들어감과 나오는 것이 같은 것처럼 청정함으로 들어가 청정함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소의 울음과 걸음


불상과 경전을 실은 배의 노를 젓는 금의인은 장육금신, 즉 부처를 의미한다. 금의인이 말하기를 달마산 꼭대기에 1만 불상이 계신다는 말은 바위들이 서있는 모습의 달마산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소가 걸음을 멈춰 울었다는 것은 부처의 공덕을 찬미하는 게송을 말한다. 처음 멈춘 곳에 통교사를 짓고 다시 일어나 걷다 걸음을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짓게 된다.


소의 걸음에 관해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부처의 생애를 소와 연결 지어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보인다. 부처가 출가해 보리수나무에서 고행을 하며 깨달음을 얻고 57일 묵언 이후 설법을 시작해 49년 동안 설법하다 열반에 든다. 부처의 죽음을 슬퍼하던 제자 가섭에게 부처는 관에서 발을 꺼내어 마지막 가르침을 전한다. 부처의 49년을 소의 발걸음에 비유한 것이라 생각된다.


달마산達磨山

미황사5.JPG 미황사와 달마산

달마산達摩山은 부처의 법맥을 이은 28대 제자이자 선종의 초조인 보리달마의 이름을 따 달마산이라 했을 수도 있겠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어쨌거나 달마산은 병풍처럼 미황사 뒤편에 서있다.


부처의 맨발과 달마산을 연결하자면, 싯다르타가 왕궁에 나와 신었던 신발을 벗어 말에 실어 돌려보내면서 고행의 길은 시작된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49년간 설법한 것을 제자들이 경전으로 전하려 했다.

그것을 보리달마가 감싸는 듯한 이 풍경은 선종이 교종을 품고 있는 것이다.


장자 대종사편에 남백자규가 여우女偶에게 도에 관해 누구에게 들었는지 묻는다.

"부묵副墨의 아들에게 들었소. 부묵의 아들은 낙송洛誦에게 들었소. 낙송은첨명 瞻明에게 들었으며, 첨명은 섭허聶許에게서 들었고, 섭허는 수역需役에게 들었으며, 수역은 그것을 오구於謳에게 들었고, 오구는 현명玄冥에게 들었으며, 현명은 삼료參翏에게 들었고, 삼료는 의시疑始에게 들었습니다."


부묵은 서책을 의미하며, 서책을 입으로 낙송하고, 첨명은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섭허는 귀로 들어 이해하는 것이며, 수역은 실천하는 것이다. 오구는 도를 찬탄하는 것이며, 도와 일체가 되는 현명의 경지가 되어, 삼료는 허무함을 깨달으며, 의시는 있는 듯 하면서도 없는 도에 도달하는 것이다. 미황사와 설화, 달마산은 이 구절을 펼쳐 놓은 듯 하다.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것은 달마의 공사상임을 암시하는데, 교선 통합에 있어 선종을 우선시했던 생각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선지식을 닦는 것에도 경전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설화는 담고 있다. 교종도 마찬가지로 선종 역시 통합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에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유일하게 교선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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