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꿨다.
가위가 눌린 것보다도 고통스레 뒤척이고, 눈꺼풀을 들썩였다.
온몸에 부닥치는 천의 느낌에 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제 갈 곳이 없다'
그 문장 하나가 계속 내 머리속을 헤집었다.
놀랍게도 내 악몽은 두 달전, 사직서를 던지고 첫직장을 그만뒀던 날이었다. 그 날의 불안과 공포가 마음에 다시 살아났다. 이제 좀 편하다 싶어졌는데 공포가 나를 찾아왔다. 가슴이 뛰고, 숨이 벅차오를 때쯤 천장이 보였다. 자취방의 천장.
본가도 아니고, 그 전 병원 기숙사의 좁은 천장도 아니고. 중환자실에 새로 취직한 이후 처음으로 구한 첫 자취방의 천장.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나서야 마음이 가라 앉는다. 숨을 내쉬고 입술을 꾹 물었다. 속상했으며, 우울감이 올라온다. 상처는 딱지가 여물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 첫 생각은 이거 였다.
나, 벗어나지 못했구나.
아직도 이겨내는 중이구나. 그때의 나는 정말 작은 일이 아니라 큰일을 치룬 거였구나.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서 내 마음 속에 여전히 있는 걸까?
속상했으며 지금의 편안함이 거짓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신규 생활을 하는 중이고 설령 더 낫다고한들 언제든 그때로 돌아가 되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들 하나하나가 나를 괴롭게 했다.
고개를 저었다. 이미 처해진 상황에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열심히 하는 것뿐.
단지 고민 하나가 더 늘었다. 속상한 이 마음을 어떻게 할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순간들이 꿈에서 재생되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제야 겨우 그때에서 벗어나서 다시 노력이란 걸 하고 있는데.
설령 그때와 똑같은 순간들이 온다고 해도 다르게 생각해보자고, 다짐했는데.
새벽 2시.
밤이 너무 길었다.
부디 이 순간들이 지나가길.
가면 증후군은 정신질환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특정 신념만을 중시하는 마비된 사고방식이며, 여기에는 스스로 '뛰어나지 않다'는 생각과 완벽하지 않은 자신이 부당하게 자리를 차지고하고 있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내가 정말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가? 승진할만한 자격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스스로 남들을 속이며 살아간다고 느끼는 것은 겉으로 평온한 듯 보이나 속으로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완벽주의자의 조용한 우울 2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