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의 징조

by 이곤







또다시 그 징조가 찾아왔다.


무력한 눈꺼풀이 아침을 맞이했다.


시계는 새벽 5시 10분. 30분뒤에 출근해야만 했다.


뒤척이던 몸은 약간의 불안에 은근한 소름을 느낀다. 오늘도 가서 잘해낼 수 있을까. 불안은 무력감을 끌고 왔다. 한숨을 쉬고 일부러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었다. 좋아하는 음이 귓가에 쩌렁 들리자 그제야 손이 까딱였다. 끄응 - 기지개를 피고 몸을 또다시 일부러 힘을 줘 재빠르게 일어났다.


또다시 그 생각을 했다.



'귀찮다'



모든 것은 귀찮음의 시작일터이다. 구직기간동안의 간절함과 첫직장에 느꼈던 좌절감은 시간에 어느새 뿌애지고 있었다. 시간은 분명 감정을 훼방 놓아버리는 방해꾼일 것이다. 그래도 그 좌절감을 잊지말고 지금에 충실하자고 다짐했던 것도 얼마전까지 였는데.


현실에 부닥치다보니 지금 당장의 고됨에 감정은 지멋대로 무력해졌다. 여러번의 번아웃에 몸져 누웠던 적이 있는 나는 이를 알아챘다. 그 시기가 다시 오고 있음을.


그리고 웃기게도, 그건 또다른 불안감을 안겼다. 얼마전까지의 과정이 다시 되풀이될 거라는 불안감. 내가 다시 미워지려했다.



하아 -



자취방 바닥에 앉아 멍하니 창을 바라보았다. 어스름이 가라앉은 하늘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압박스타킹을 신고, 양말을 신었다. 종아리에 죄이는 느낌이 시원하다가도 답답했다.


3주내내 일하고, 공부하고, 잠도 3시간 5시간 이렇게 자니 지칠만도 했다.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나는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을까.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미워지려다가 꾹 - 미움을 참았다. 내 스스로에 또다시 면죄부를 준다. 그래, 어떻게 안지치겠어. 불과 1달전까지만해도 그 꼴을 겪었고 중환자실로 다시 또 입사해서 3주를 잠도 못자고 병원이랑 집만 왔다갔다하면서 공부만 했는데.


지치지. 그냥 한 이틀, 삼일만 적당히하고 자자. 공부 안해서 불안해도 어떡해. 이러다 또 번아웃와서 그 난리나면 어쩌려고.


지치고 피곤한채로 출근하고, 퇴근했다.


퇴근하고 나는 누워 내리 4시간을 잠만잤다. 일어나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부해야하는 데 너무 힘들어서 좀 쉬려고, 근데 너무 불안해.


아빠는 나에게 면죄부를 줬다.


쉬어. 쉬면서 해줘야 내일 또 하지.


아빠는 내 마음의 돌을 함께 짊어주었다. 가족의 전화는 어느새 매일 저녁의 루틴이 되어있었다. 내가 전화를 하지 않은 날은 혹여나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초조한 낌새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그때처럼 혼자 울고 있을까봐. 아직 눈물이 날정도는 아니지만,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숨을 섞어 말했다.



그래도 불안해....그런데 안쉬면 또 금방 지쳐서 한달전에 그 꼴 나까봐 무서워서 오늘 많이 자두려고.



아빠는 내 말에 큰 추임새도, 그럴듯한 문장도 붙이지 않았다. 너 알아서 해. 쉬려면 쉬고, 하려면 하고.




응....




언제쯤 나는 이 마음의 돌을 가족과 함께 버티지 않아도 될까.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하고, 자취방 밖을 나가 설렁설렁 걸어다녔다.


적어도 이 모든 건 균형을 찾고 있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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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아는 NP(정신과) 닥터한테 네 케이스 한번 상의해봤었어. 근데 너, 그거 수술 울렁증이 아니라 압박 울렁증 같다더라.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이런 밀폐된 수술실 안에서 극대화 되는 거라고. 그게 바로 네 몸에서 바로 반응이 오는 것 같다고. 은재야. 이제 뭐 압박감 같은거 그런 거 느낄 필요 없잖아? 너 아직까지 잘 해냈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잘해낼 거니까. 안 그래?

[낭만닥터김사부 시즌 2 중에서] - 수술 중에 계속 쓰러지던 차은재를 향한 김사부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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