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시간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 자서 일어나면 8시에는 일어나려나. 요즘 잠을 많이 못자긴 했는데....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다가 정리하던 자료를 바라 보았다. 아무래도 중환자실이다보니 실무에 섞인 이론부터 전산까지 봐야할 게 한두개가 아니었다. 책상은 공부하느라 엉망진창이었다. 널부러진 자료들을 보며 옅게 숨을 고른다.
첫 직장을 그만둔지 이제 한달하고도 일주일이 지났다. 새삼 내 상황이 실감되었다. 저번달까지 그렇게 무너질 것 같이 울다가 여기서 이렇게 공부하고 있다. 결단코 올해는 구하지 않을 것 같던 자취방을 둘러보다가 작은 실소가 흘러나왔다.
버티고 있는 게 어쩌면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버티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이렇게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내가 대단했다.
인생이 망한 것 같았고, 앞으로가 어두컴컴했고, 당장 다음 날이 떠오르지 않던게 바로 어제였던 것 같은데. 다시 새병원에서, 중환자실에서, 가장 막내로 신규를 시작했다. 이곳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 위해선 공부가 유일한 희망의 끈인 것 같았다. 나는 권태감을 짓누르며 펜을 들었다.
예측 할 수 없는 미래는 늘 그렇듯 희망과 권태감을 불러일으켰다. 잘될 거란 희망과 나아질까 싶은 권태감은 두번째 입사일부터 나를 업치락뒤치락 시켰다. 그 끝에는 '무섭다'라는 감정이 나를 감쌌다. 공포영화를 보거나 어두운 길을 혼자 걸을 때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내가 나를 신뢰하지 못할 때, 무섭다는 감정은 그 누구보다 나를 공포로 몰았다.
다시 한번 숨이 막혀왔다.
그리고 매번 되새겼다.
'막막할 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자'
마법의 주문처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면 감정은 차차 가라앉았다. 마음에 가라 앉을 뿐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이 감정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 책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읽었던 내용이 있다. 읽었던 내용이었던 건지 그 내용에 느꼈던 마음인건지 헷갈리지만.
내가 살고 있는 건 지금이다. 떠올리는 미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아닌, 행동이 말한다.
요즘 다시 군것질을 시작했다. 폭식이라하기엔 애매하지만, 나에게 조언을 건내던 책도, 내 옆을 지켜주던 사람들도 없는 타지에서 다시 시작하는 처음이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황홀한 단맛과 짭짤함은 또다시 나를 잠깐이라도 현실에서 회피하게 만들어 줬다. 책상에 쌓이는 작은 과자 봉투를 치우며 포기했다.
개운함을 느끼게 해줬던 운동은 어느새 흐릿해져 있었다. 하루종일 서있어 퉁퉁부은 발의 통증만이 선명했다. 힘든만큼 더 루틴을 지켜된다는 묘한 강박은 사라지고, 바로 눈 앞에 있는 자료들에게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에너지가 한정적인 나에게 일과 병행하는 공부만으로 하루는 사라져있었다.
힘들었다. 한달전도, 지금도. 병원도 다르고, 부서도 다르고, 체계도, 사람도 다르지만. 힘든건 똑같았다.
결국 모든 건 나에게서 문제를 찾아야 했다. 설령 바깥에서 문제가 있다고 한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서 찾은 문제만은 내가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내 문제는 묘한 합리화와 권태감. 그리고 환자를 대하는 직장에 은근한 자만심을 가졌던 것. 겸손함과 자기객관화가 부족했던 것. 남 탓을 했던 것.
부족한 나를 몰랐던 것.
멍하니 자취방의 흰 벽지를 바라보다가 다시 숨을 내쉬었다. 나는 부족하지만, 모자란 게 아니다. 그건 다르다.
마음을 고르고,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리니 새벽 2시 15분쯤이었다.
그리고 다시 손에 펜을 쥐었다.
그럼에도 공부를 하지 않는 순간들에 불안함은 치솟았다.
남이 해결해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지금만큼은 혼자서 버티고 지나 보내야할 시간이다.
이를 아는 것만으로 나에게 위로를 건내고 싶었다.
그래서 유서에 제일 많은 글은....
'이제는 - '
뭐라고 하죠?
쉬고 싶다고 하는거에요.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 게 두 번인데 잘나갈때 계속 잘나갈거라 생각하고, 요즘 상황이 힘들때 계속 힘들거라 생각한데요.
요즘 혹시 힘드신 시기를 보내고 계시다면 그것은, 힘이 들다는 느낌은, 자기가 들 수 있는 것보다 더한 중량을 들고 있기 때문인데
이건 다른 말로 하면 그때 자기에게 힘이 생기고 있는 때래요.
- 김창옥 토스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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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다시 새직장에 적응 중입니다.....ㅎㅎㅎㅎ 그러다보니 글 올리는 게 많이 많이 늦어졌다는....허허...... 오늘은 일 끝나고 좀 쉬어야겠다 싶어서 쉬다가 오랜만에 글을 썼습니다...ㅎㅎ
나 자신 파이팅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