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권태로움이 밀려왔다.
이 감정에 벌떡 일어나지도 못하고, 침대 위에서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 봤다. 하기 싫어. 너무 너무 너무. 한숨을 쉬고 휴대폰을 짜증스레 껐다. 머릿속에 해야할 일이 가득가득인데 너무 하기 싫었다. 그럴때면 4월달을 되새겼다. 그때 얼마나 후회했고, 얼마나 다음을 다짐했었는지.
그 고통스러웠던 감정을 되새김질 하다보면 권태로움 위에 새로운 불안이 피어올랐다. 불안은 나를 일으켰다. 그 이후로는 항상 조금이라도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자 샤워를 했다.
막상 하다보면 공부가 재밌는 것도 맞고, 어느순간 즐기는 나를 볼 때도 있다. 그런데 결국 나에게 공부는 일의 연장선이었다. 좀 더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피로가 쌓이면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독이니까. 하지만 공부를 하지 못해서, 정작 일할 땐 더듬거리는 나를 상상하면 그렇게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상상속에 어리숙한 나는 내 권태감을 강렬하게 짓눌렀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책상에 앉았다.
그러나 오늘은 권태로움이 다른 때보다 더 심한 날이었다.
그저 하기 싫다와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속을 지배했다.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최근 있었던 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이 병원에서 또 한번 울었다.
며칠전 10년차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앞에 세웠다. 약간의 실수로 혼내시던 선생님은 점점 더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순간부터 내가 그렇게까지 큰 실수를 한건가..? 싶어졌다. 선생님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곤이 너는 니 생각으로 망할 스타일이야'
......
상처받았었나? 그 때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 전에 있던 병원에서도 그러다가 그만둔거 아니야?"
나는 이 병원에 와서 내 사적인 이야기와 전에 있던 병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고 다닌 적이 없었다. 근무도 그렇게까지 많이 겹친적이 없었는데. 나를 살피던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너 보면 너 되게 다급해보여. 지금 있는 신규들은 너보다 3개월 먼저 들어온 애들인데 그 애들보다 더 잘하려고, 따라잡으려고 할 필요 전혀 없어. 비교하지마, 걔네랑"
아... 조언해주시는 건가?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약간의 혼란이왔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시는 거지? 싶었다. 전... 제가 비교한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요...하며 소심히 말하니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의 말투는 묘한 짜증이 섞여있었지만 듣다보면 어느새 울컥했다. 들켰다는 느낌이었다.
"너 니가 되게 못하면 스스로가 밉지? 밉고 짜증나고 나는 왜 계속 못하나 싶고. 내가 봤을 때 너 전 병원도 그러다 나온 것 같은데. 너는 너대로 학구열도 있고, 일은 일대로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했겠지. 그런데 니 욕심만큼 일은 안되니까 힘들었을 거고. 물론 그러면서 거기 있던 애들도 너한테 지랄했겠지만 - 그런데 이곤아, 내가 봤을 때 너는 니가 힘들었던 거야"
눈에 어느새 눈물이 그렁였다. 처음 여기에 입사하고 자취방에서 울었던 이후로 운적이 없었는데. 나는 또다시 울려했다. 조언이었다. 고연차의 눈에 내가 제대로 보였던 것 같았다.
"그래, 니가 학구열 있는 것도 좋고, 공부랑 일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도, 가르쳐주면 이해가 빠른 것도 좋고 다 좋은데. 너 못해도 돼. 당연한거야. 신규때는 원래 일 못하는 게 당연한거야. 1년까지도 신규인데. 그러니까 너 못해도 괜찮다고"
나는 어느새 엉엉 울고 있었다. 도저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울면 안되는 데. 눈물이 났다.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까 조급해하지마. 못해도 되고 실수하는 것도 당연한 거고. 너 절대 깎아먹지마. 절대로. 알았어? 말했다. 너 깍아먹지말라고"
그때를 되새기며 쓰면서도 묘하게 울컥한다. 그 날 근무가 끝나고 자취방에서 와서는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혼자서 이불에 얼굴을 뭍고 울었다. 왜인지 계속 눈물이 났다. 그 사람에게 보였을 내 조급함에 대해. 누군가 알아 봐주고 이해해줬다는 생각이었다. 아빠에게 전회해서 말하며 계속 울었다. 아빠는 혼난건 아니지?하며 안심했고, 그렇게 조언해주는 사람 없다고 잘하라고 했다. 사회에서 그렇게 조언해주는 사람없다고. 아빠는 밥이라도 사주고 싶다고 했다.
또한 이 전 병원에서 들었던 말들과 전혀 반대의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곤아. 왜 이렇게 여유로워? 우리 바빠. 바쁘다고. 할 일이 뭔지 모르니까 그렇게 여유롭지'
'아, 그냥 비켜. 내가 인계할테니까. 그딴 식으로 인계 넘기면 어떡해? 잘해야된다고 했잖아'
'이곤이 너는 너한테 너무 관대한 거 같아. 관대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들어보니까 알겠어. 너는 그게 문제야'
'공부를 하긴 해? 너. 8년차인 나도 공부를 하는데, 왜 안해?'
'와 - 레전드. 너 진짜 레전드다'
'너랑 했던 두 달이 너무 힘들었어.'
'너랑만 같이 근무서면 선생님들이 다 진이 빠진대'
전 병원에서 상처 받았던 말들과는 정반대의 말들이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적어도 여기서는 거기서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준다는 것. 그게 너무나도 서러웠다. 전 병원에서의 나는 간호사를 하며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 직업을 할 능력도, 자격도 없는 사람 같았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가장 무서웠던 생각 중 하나였다. 간호사를 하고 싶다고 해도, 능력이 없다면 나는 그만두는 게 맞을까? 그럼 나 이제 뭐하고 살지? 당시에 그 생각에 잠식되어 있었다.
"너 이 일 재밌잖아. 그렇지 않아? 딱 보여. 그러니까 오래해야지. 그러려면 너 깎아먹는 생각 버려. 그 생각, 하나도 도움 안돼"
하지만 적어도 이 병원에서, 그 선생님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다는 게. 너무나도 서러웠다.
위로를 받았다. 약간의 응어리가 풀렸다.
그리고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기미한 긴장들도.
그것들의 끝에는 오늘의 권태감이 되었다. 여태가지고 있던 긴장과 응어리가 고개를 들어 내 앞에 어서 털어내라는 듯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꾸욱 -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제는 정말 마주해야 했다. 악몽으로까지 나와 존재감을 알렸던 마음 속 응어리들을.
나는 나아지고 있다.
나는 부족하고 느려도 된다.
그 두 가지 사실 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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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 끝나는 날이었는데.... 퇴근하고 계속 울어서 잠잘때쯤에는 거의 쓰러졌어요ㅋㅋㅋㅋ
저 진짜 전 병원에서 진짜로 힘들었거든요.. 진짜 너무너무. 그런데 여기서 제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준다는 게 너무 서러웠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이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겠죠?
조언 받은 만큼, 꼭 잊지 않고 품고 가겠습니다.
이 권태감도, 계속 맞서서 싸울겁니다.
아자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