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톱에 낀 핏자국이 당연한 날이 오다니.
터덜 터덜 퇴근하던중, 쫙 손을 펴 하늘과 마주해 들었다.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쓸 틈새도 없이 손톱 사이 끼인 피에 온 신경이 다 갔다. 이건 언제 묻은 거려나. 토혈하던 환자의 피를 받았을때? 급하게 채혈할때? 바닥에 흘린 피를 닦았을 때?
뭐가 되었던 방금까지 치열했던 시간들의 자국이었다.
요근래 들어 내 역량에 맞지 않는 환자들이 내 환자로 왔다. 옆에서 올드쌤은 니 환자인데 그것도 모르냐며 화를 냈고, 나는 나대로 몰라서 발을 동동 굴렸다. 치열했고, 답답했고, 식은땀과 생사의 순간에 질식한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나는 이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는 사이 처음으로 내 환자의 사망을 겪었다. 내 첫 *expire case는 무려 *varix bleeding이었다.
* expire 사망
* varix bleeding 식도정맥류 출혈 : 소화기계 질환에서 아주 초응급인 상태. 한번 일어나면 겉잡을 수 없이 출혈이 어마무시하게 나며 쇼크에 순식간에 빠진다.
입원하고 4시간동안 3번의 CPR을 했고, 위에 넣은 비위관에선 1.5L의 피가 배액되었다. 2L의 수액을 풀드랍했음에도 혈압이 70대였으며, 응급으로 나간 검사 결과들은 깨질대로 깨졌있었다. 배는 복수가 차서 터질 것만 같았다. 급하게 처치를 하던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진행이 될대로 된 환자라서 늦었다는 소견이었다. 저혈량 쇼크가 왔고 아무리 수액을 때려부어봤자, 안에서 일어나는 출혈을 잡지 못하면 의미없다는 이야기 였다. 내시경실을 밀고 들어가기에 환자가 못버틸것 같다고 말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보던 드라마는 없었다. 우리는 보호자들에게 예후가 좋지 않다,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 이상의 처치는 의미없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허망했다.
입원부터 4시간동안 했던 모든 것들이 의미 없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직접 환자 위로 올라타 심폐소생술을 한것도 처음이었고 사망한 환자를 보내는 것도 처음이었다. 울고 있는 아들에게 장례식장 안내를 하는 것도, 손에 피가 묻은 채로 타자를 두드리며 급하게 전산을 마무리 하는 것도, 응급으로 넣었던 중심정맥관과 라인들을 2시간도 안된채 빼는 것도. 나는 차오르던 눈물을 참고, 나도 모르게 냉정을 외쳤다.
어쨌든 일이니까. 울지 않았다.
이후에 나는 이 환자의 case를 다시 복기하며 공부했는데, 계속 의문이 생겼다. 나말고 올드쌤이 봤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내가 그때 이유를 알았다면, 뭘했다면. 그런 생각을 하다 휴일이 지났다. 하물며 의사들이 더 빠르게 이유를 알았다면, 이때 뭘 했다면.
내 후회의 원천을 찾자면 공부의 부족이었다. 열심히 하든 뭘하든 지식의 부족이 이런 후회를 키웠다. 나는 나대로 이때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의 공부를 했다.
그리고 또 일주일 뒤, 참 뭣같게도 응급으로 심근경색이 온 환자가 시술을 받고 내 환자로 밀고 들어왔다.
ㅅㅂ..진짜 환타인거 받아들이니까 더 하네 진짜. 시술을 받고 온다는 환자의 응급실과 혈관조영실 시술 기록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저번 CPR 환자 이후로 입원 온다고 하고, 내가 받는다 생각하면 긴장부터 됬다. 중환자실 입원할때 환자 상태가 제일 안좋기도 하고, 내가 받을때 이벤트 터진 적이 정말 많았으니까.
애초에 나는 신규인데, 왜 계속 이런 severe case를 받게 되는 건지가 의문이었다. 됬다...환자오기 전에 미리 파악부터 해야지...
환자가 오고, 온 간호사가 들러붙어 환자 정리를 했다.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고, 의식확인하고, 같이 온 의사에게 처방을 받았다.
아무래도 패혈증 온 거 같은데... 떨어지는 혈압을 보고하고 승압제를 달고 수액 풀드랍을 하며 그 생각을 했다. 이 환자도 업친데 덥친격이네. 그전 CPR 환자를 떠올리며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이 환자도 뚝뚝 혈압 떨어지다가 늦어서 사망하진 않을 까 조바심이 났다.
인공호흡기는 제대로 환자에게 환기되지 않는다고 알람은 알람대로 울리지, 환자는 환자대로 계속 깨서 버둥거리지, sedative는 증량해도 소용없지, 처방은 처방대로 나지, 달아야할 수액은 개많고, 승압제를 달고 증량해도 혈압은 떨어지지, 방금 심장시술하고 온 환자라 쇼크던 CPR이던 터질 확률 개크지.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더군다나 이 환자도 비위관으로 피가 800ml가 배액되었다. 설마 전에 식도정맥류 환자처럼 그렇게 되려는 건 아니겠지,하며 불안감의 연속이기도 했다.
추후에 그게 응급으로 무리하게 인공호흡기를 달기전 기도 삽관을 하다가 식도 접합부가 찢어져 출혈이 있었던 거라는 걸알고, 한편으로 안심했다. 위장내 출혈이나 식도정맥류 출혈보단 훨씬 나으니까.
어쨌든 이 환자는 살아있다. 중환자실에 있고,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고, 중증도가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부디 모두가 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주길.
손톱에 굳어 끼인 피는 씻으면 사라지니까, 허망하지 않은 결과만 있다면 차라리 고생하고 마음 졸이는 게 나았다.
그래, 차라리 간호사가 고생하는 게 낫지.
죽지만 않으면 돼.
처음 expire 환자를 겪은 이후 내 결론이었다.
실은 겹겹히 severe 환자들을 받기 전에 좀 여유? 나태? 자만? 그런 복합적인, 좋지않은 감정을 조금씩 품기 시작했어요. 이제 좀 일을 처낼 수 있게되니까, 내가 환자를 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근데 개뿔 나는 조무래기...진짜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쓸데 없었습ㄴ디ㅏ. 자연스레 자아성찰이 됬어요.
그 순간에 뭐할지 모르고, 허둥거리면 끝나는 거니까. 결국 그런 순간에 해야할 게 뭔지 모르면 여태 한 공부던 뭐던 다 쓸모 없던 거였습니다.
환자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깨닳았다는 게 진짜 어리석은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고민을 하는 나 자신에 또 빠져있는 건 아닐까? 하며 자아성찰도 했습니다. 진짜 간호사 10년차, 12년차가 아닌 이상 몇년차건 응급상황에 뭘해야할지 모른다면 다 상관없다고 생각도 들었구요.
다시 그런 감정이 느끼고 싶지 않지만...저는 분명 또 같은 감정을 느낄때가 올거고, 후회하겠죠...?인생은..힘든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