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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봄 Nov 27. 2023

나를 찾아와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가치 있는 삶 살기

한참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옛 제자의 카톡이었다. (사실 내 직분은 전도사지만, 이 아이는 늘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아무렴 어때.)


2019년 첫 사역지에서 만났던 아이. 잊을 수 없는 아이였다. 사랑을 주면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였다. 늘 예배시간보다 일찍 와 교역자실에 찾아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아이. 빼빼로 데이 같은 날에는 어김없이 빼빼로를 사들고 와 선물이라며 수줍게 건네던 아이였다. 내가 첫째 아이를 출산하자 아기에게 줄 선물이라며 사탕과 초콜릿을 가득 담은 상자를 주기도 했다. 


내가 준 사랑보다 나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어 준 아이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사역지를 옮겼고, 그 아이도 이사를 갔어서 연락이 끊겼었는데 오랜만에 온 반가운 연락이었다. 현재 사역하고 있는 교회로 찾아온다고 했고, 아이는 1시간 20분이나 버스를 타고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퇴근을 하고, 밥을 사주겠다고 하자 배가 안 고프다며 와플을 하나 사달라고 했다. 근처 와플집에 들어가서 메뉴를 고르라고 하니 가장 싼 것을 먹겠다고 했다. 여기서 제일 비싼 거 여러 개 먹어도 된다고 해도 망설이는 아이를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더 마음이 쓰였던 것은 이 추운 날 점퍼도 없이 니트만 입고 왔다는 것.


왜 니트만 입고 왔냐는 질문에 별로 안 추워서 그랬다는데, 중학생들은 이 날씨에도 정말 춥지 않은 건지? 아니면 혹시나 집에 점퍼가 없어서 그런 건지 궁금했다. 집에 패딩이 있는데 안 입은 거냐고 여러 번 물었지만, 있단다. 그 아이의 집 형편을 자세히까진 몰라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 계속 마음이 쓰였다. '패딩을 하나 사서 들려 보내야 하나? 너무 오지랖인가?' 내적 갈등이 이어졌다. 


계속되는 질문에도 집에 패딩이 있는데, 그냥 입고 오지 않았다고 얘기하길래 우선은 잘 먹이고, 안부를 묻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눈 후 돌려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찾아와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현재 임신 중이기에 퇴근할 때가 되면 녹초가 된다. 그렇지만, 나를 찾아와 준 제자와 퇴근 후의 시간을 함께할 때는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물론 헤어지고 나서는 집까지 택시를 타고 돌아와야 될 정도로 소진되어 있었지만^^)




살다 보면 참 여러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게 된다. 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물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순 없겠지만,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었어. 정도의 기억으로라도 남고 싶은.


정말 삶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조금이라도 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환대'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자주 맴돌아 누군가를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한 웃으며 반갑게 맞으려고 노력한다. 참 신기한 건, 누군가를 환대할 때 밝게 화답하는 상대를 보며 내 기분이 더 밝아진다는 것이다. 주는 것보다 더 받게 되는 놀라운 현상이다.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일까?


누군가 삶에 지쳐 힘들 때, 잠시 기댔다 힘을 얻고 갈 수 있는 '쉼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 사람을 살리고 위로할 수 있는 삶이라면. 그 삶보다 가치 있는 삶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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