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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봄 Feb 27. 2024

6화. 출산 별 거 아니었네?

현실 임신, 출산 기록

흔히 임신, 출산, 육아라고 부르는 3종 세트 중 임신의 관문은 어렵게 통과했다.


임신기간은 10개월. 280일. 잘 버티고 이제 출산의 문통과하면 된다.


'애 낳는 것'과 '애 키우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임신 10개월의 기간 동안의 얘기는 별로 없어서 그 기간은 평온한 줄 알았다.

(얌전히 크다가 뾱 나오는 줄)


물론, 착각이었다.


첫 번째로 찾아온 고비 입덧.


사람마다 입덧 증상이 다 다르긴 한데 나의 경우 몸이 정말 신기하게도 밥을 아예 먹을 없도록 변했다.


밥뿐만 아니라 반찬도. 아예 한식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밥 생각만 떠올라도 힘들었다.


그때 우리 집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한식의 냄새조차 못 맡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중식, 양식 등의 면류는 먹을 수 있어서 그걸 먹으면서 버텼다.


성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 떠있는 배를 하루 종일 타고 있는 기분.


으. 하루가 너무 길었다.



도대체 이 입덧이 언제 끝나지?



와 나는 입덧 때문에, 다신 임신 못하겠다. 싶었다.


다행히 좋은 소식은 든 고난에는 끝이 있다는 것.


나의 경우에는 6주쯤 시작된 입덧이 12주 즈음되니 서서히 괜찮아지기 시작했고, 16주 즈음되었을 때는 예전처럼 편안하게 다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야호.






몸이 가장 편하다는 임신 중기. 천국을 맛봤다. 사람은 역시 간사해. 불평불만만 가득하다 몸이 편해지니 모든 것이 다시 감사모드로 전환되었다.


18주 정도가 되면 뱃속 아이가 움직이는 태동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초음파로도 제법 인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경험은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다.


초창기에 느꼈다 입덧으로 사라졌던 임신의 기쁨이 다시 느껴지는 시기. 기쁨을 만끽했다.


어딜 가나 나와 붙어있는 나와 내 남편의 미니미 생명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하고 소중했다. 


뱃속에서 사람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배가 마구 커지며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임신 후기.


사람마다 배 커지는 것도 다른 것 같은데, 나는 배가 많이 안 커진 케이스였다. 오죽하면 막달에 친구들이랑 식당 가서 밥 먹고 있는데 미혼일 때 많이 놀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사장님의 립서비스였을까. ㅋㅋ)


그래서 튼살 같은 것도 안 생겼었고, 크게 힘든 것도 없었다.


몸이 좀 힘들어진 것은 30주 후반부터.


역류성 식도염이 돋았고, 다리가 저리고 붓기 시작했고, 숨이 찼고.


배뭉침에 걸어 다니다가 몇 걸음에 한 번씩 멈춰서 쉬어줘야 했다.


다시 불평이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초기 때보다는 나았다. 이제 곧 아기를 만날 수 있고, 곧 끝난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몸이 힘들어서 얼른 낳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를 낳아본 사람들이 동일하게 하는 소리가 있었다.


(내 친구 한 명 빼고,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이 제일 행복한 거야. 낳으면 더 힘들어."


진짜 도움이 1도 안 되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 힘들다니까. 뭔 소리야. 공감능력이 결여되었나. 더 힘들 거라는 말을 대체 왜 하는 걸까? 그것도 웃으면서.


내가 이제 낳아서 길러봤으니 정확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때가 제일 행복하지 않다. 그땐 힘들다. 낳으면 훨씬 행복하다.


애기가 태어나면 다른 사람이 봐줄 때 내 몸이 편히 쉴 수 있지만, 뱃속에 있으면 다른 사람이 못 봐주고 온전히 내가 다 고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는 눈에 안 보이고 만질 수도 없어서 힘들기만 하다. 눈에 보이면 예쁘기 때문에 힘듦이 줄어든다.


  




임신 36주 6일 되는 날, 친구들이랑 놀기 위해 강남에 갔었다. 나는 그다음 날 애가 태어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보통 38주~40주에 애 낳는 줄 알았으니까.


잘 놀고 돌아와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 4시쯤 큰 물풍선이 팍 터지는 느낌이 들며, 침대에 그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 큰 풍선에 물을 가득 담아놨다가 바늘로 탁 터트린 것 같았다.


'양수'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조금씩 뭔가 새는 느낌이 들면 '이게 양수일까요?' 하면서 맘카페에 질문을 했었는데 답변 중 '양수가 터지면 그냥 아, 이게 양수구나 하고 알게 돼요.' 하는 댓글이 있었다.


댓글을 봤던 당시엔 이해가 안 갔었는데 양수가 터지는 순간 이해가 되었다.


'양수가 터졌구나.'


정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옆에서 곤히 자던 남편을 깨웠다.



오빠 나 양수 터졌어.



놀란 남편이 "어? 어어어!" 하면서 불을 켰다.


그런데 불을 키니, 침대에 피가 잔뜩이었다.


오잉? 양수가 피인가?


원래 남편차를 타고 갈 예정이었으나, 내가 피를 많이 흘려서 남편이 급히 119를 불렀다.


우리나라 짱. 그 새벽에 불렀는데도 10분도 걸리지 않아 구급대원 3분(남 2, 여 1)이 오셨고, 여자 대원분이 빠르게 조치를 취해주셔서 의자이지만 침대로 변하는 들것에 금방 실려 나갈 수 있었다.


피를 많이 흘린 것이 마음에 걸려 구급차에 실려 가며 맘카페에 또 글을 올려 물어봤다.


'양수가 피인가요??'


새벽이지만, 여러 댓글이 달렸다. 댓글들을 보니 양수가 피는 아닌가 보다.


뭔가 무서웠다. 계속 기도를 하며 병원에 도착했고 병원에 도착해서 아기가 잘 있는 것을 확인하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내 상태가 안 좋았다.


혈압이 매우 높았다. 우선은 자연분만을 시도했지만, 4시간 정도 진통 뒤 과호흡이 오고 혈압이 잡히지 않아 응급제왕에 들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36주 마지막 진료까지도 괜찮았던 내가 그 사이에 임신중독증이 왔었다. 일찍 양수가 안 터졌다면 더 안 좋았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ㅠㅠ)


어쩐지, 단백뇨가 계속 나오고 붓고 그러더라니.


나는 처음이라 다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아무튼 나는 비록 선불 후불을 다 겪었지만, 무사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기를 만났다.



안녕 베이비.



이 아기가 나의 내 남편의 반반을 닮은 아기라니!

아니 어떻게 사람 뱃속에서 사람이 만들어져서 나올까. 생명의 신비란..!!!


제왕 3일째부터 걸을 있어서 아기를 안아보러 신생아실에 갔는데 너무 작았다.


"어떻게 안아야 해요?"


신생아실 선생님께 드린 내 첫 질문. 진짜 너무 작아서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모르겠었다.


허허. 그리고 처음 내 품에 아기를 안았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걸 또 경험하고 싶어서 둘째를 가졌을 수도..ㅋㅋ)


인생 최고의 심장 터지는 경험이었다. 아직도 그걸 이길만한 경험은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나는 회복이 빨랐다. 마사지를 받는데 자연분만 한 산모들보다 몸이 자유로워서 제왕 한 산모 맞냐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나이가 깡패인가. (나는 만 30살에 첫째 출산을 했다.)


제일 무서울 것 같았던 출산은 비교적 할만했다.

(자연분만, 제왕절개 둘 다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나는 무조건 제왕절개 추천..)






조리원 천국에 입성하고, 2주는 금방 지나갔다.

(조리원이 천국이라는 사실은 조리원에 있을 때가 아닌 집에 와서야 깨닫게 된다.)


집에 갈 준비를 마치고 예쁜 이불에 잘 싸인 아기를 받아 들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나는 나름 비장한 표정이었다.


비로소 정말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임신, 출산도 해냈는데 육아쯤이야! 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자신감은 집에 온지 하루 만에 무너져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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