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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유 Jan 24. 2022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

  몇 년 전 9월 내가 포틀랜드로 휴가를 간다고 얘기했을 때 옆 팀 과장님이 아는 광고 카피라이터 한 분도 포틀랜드의 매력에 푹 빠져서 2년 연속 포틀랜드로 여행 가신다며 인스타그램을 보여주셨다. 그분이 바로 '김민철' 작가님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기 전부터 포틀랜드를 좋아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포틀랜드 여행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동질감을 느끼며 이분의 감성과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님의 다른 저서「모든 요일의 여행」을 읽는 동안에도 작가님의 감성과 취향, 여행 스타일에 공감하며 감탄했었기에 이번 책도 큰 기대를 갖고 읽게 되었다.

「모든 요일의 기록」은 10년 차 카피라이터가 어떻게 자신의 삶이라는 토양을 성실하게 가꾸고 있는지 일상 속 경험들을 감각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카피라이터다운 간결하고 맛깔난 문체가 쉽게 읽히면서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읽으며 인생을 기록하고, 들으며 감정을 기록하고, 찍으며 새로운 시각을 담아내고, 배운 것을 몸에 새기고, 쓰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쓴다는 자신만의 신념이 담겨 있다. 나는 ‘제1장 읽다’와 ‘제4장 배우다’ 챕터가 가장 인상 깊었다.

'1장 배우다'에서 소개한 저자의 독서 환경은 물리적, 인간관계적으로도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어 부럽기 그지없다. 좋은 구절을 찾을 때마다 읽어주는 평생 책 친구인 남편이 곁에 있고, 책 이야기로 술자리를 꽉 채울 수 있는 회사 동료, 심지어 박웅현 CCO께서 책 추천과 길잡이까지 역할을 해주고 있다. 박웅현 님은 「책은 도끼다」라는 독서법에 대한 책을 쓰신 분으로, 내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도록 큰 자극과 영향을 주신 분이다. 살아가면서 취향이 비슷하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행운일 것이다. 나도 좋은 책을 읽고 지인들과 그 감상을 나누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자는 기억력이 매우 안 좋아서 책을 읽고 난 후 막연하게, 희뿌연 하게 좋았던 것 같다는 느낌만 남는다고 한다. 나도 분명 책을 읽는 동안 좋은 구절도 표기하고, 모임에서 후기를 이야기했던 책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에서 사라질 때가 많다. 이런 점 때문에 같은 책을 또 사는 실수도 하고, 여러 번 읽으면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최근 고전 문학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그때 내가 처해있는 상황과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0대, 20대 때는 그렇게 안 읽히던 「호밀밭의 파수꾼」이 30대가 되어 다시 읽으니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주인공의 방황과 성장, 아픔에 공감하며 비로소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거기에서 발견한다. 그때의 내가 궁금해서 나는 그 책을 읽는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책을 발견한다. 새로운 감정으로 줄을 긋는다. 그렇게 영원히 새로운 책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4장 배우다'에 따르면 저자는 6개 국어를 정복할 정도로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큰 사람이다. 저자처럼 언어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컸다. 딱히 엄마가 다니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피아노, 미술, 종이접기, 글짓기 기타 등등의 학원을 갔었다. 성인이 되었어도 뭔가를 배울 때 에너지 넘치고, 즐겁다. 이 덕에 찐 문송이였던 내가 IT업계에서 10년째 배우는 걸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전시를 보고,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나의 이런 성향을 뭐라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저자는 한마디로 정리해주었다. “나에게 인생을 잘 살 수밖에 없는 기본기를 키우는 과정”이라고. 저자는 그렇게 비옥하게 가꿔진 토양이 있어야 회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내고, 새로운 카피도 쓰고, 새로운 뭔가도 시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나도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저자는 카피라이터라는 나무를 키우고 있고, 나는 데이터 분석가라는 나무를 키우고 있고, 또 여기서 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는 모르지만 토양을 비옥하게 가꾸는 과정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다. 혹시 내가 나이 들면서 일상이 권태로워지거나 불만이 많아지는 순간이 온다면, 다시 이 책을 읽으며 내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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