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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살이 Dec 08. 2020

5년 차 도서관 사서

도서관 사서가 된 계기요?

  고등학생 , 시험기간만 되면 유독 소설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평소에는 친구들과 노느라 거들떠보지 않았던 소설책이 유독 시험기간만 되면 눈에 들어왔거든요. 공부에 취미가 없던 저로서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있는 일이 고독히 책을 읽는  말고 없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시골에 있어서 주변에 논밭밖에 없었고, 당시에는 친구들 없이 ‘혼자 무엇을 한다는 건 아주  용기가 필요했거든요. 가령, 서점을 간다든지, 떡볶이를  먹는 일도 친구 없이 혼자서는 못하는 소심한 여학생이었지요.

*기억에 남는 일화로, 중간고사 기간에 시험을 마치고 다음 시험을 위해 독서실에서 교과서와 문제집을 보는 친구들과 달리 저는 소설책 ‘국화꽃 향기 보며 숨죽여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험의 틀린 문제 보다  책의 결말이  궁금했고 내일의 시험보다 주인공의 슬픔이 제게는  중요했습니다.
(맞벌이셨던 부모님은  바쁘셨고  성적에 대한 집착이 없으셨습니다. 순진했던 저는 대학을 염두하지 않은  친구들 따라 목적 없이 독서실을 오가며, 친구 말고 유일한 재미는 책이었습니다)

  조용한 시골에서 평범한 학창 시절이 끝나갈 무렵,  도시로 가고 싶었던 저는 우여곡절 끝에 (그나마 서울 근처) 경기도로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전문대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고, 직장생활을 통해 다양한 부조리와 갑질을 겪었습니다.  없고  없는 저는 살아남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도, 성희롱도, 억울함도, 부당함도 모두 삼키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차피 죽게 될 텐데 이렇게 참으며 열심히 사는 게 무슨 의미지회의감이 들었고 걷잡을  없는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얼마  5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습니다.

  퇴직  1 동안 두어  회사를  다녔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방황은 계속되었습니다. 여러 번의 퇴사로 자신감은 바닥이 나고 경제적 압박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시간은 넘쳐났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거니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사색을 많이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  필요한,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이 자아를 찾아가는 건강한 사색도 있는가 하면 삶을 포기하고 파괴하고 싶은 사색(죽음) 함께 했습니다.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저에게 서울살이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혼자서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 ‘이대로 죽는  어떨까 깊이 고민하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곤 했습니다.  좋은 생각들로 사로잡혀 우울이 계속되던 어느 , 집에 걸어가던 길에 비가 내렸고 때마침 도서관이 보여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성인도서가 있는 도서관 2 자료실에 들어섰는데 습한 기운에서 꿉꿉한  냄새가 미세하게 났고 사람들이 많은데도 실내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불과 1 전까지 들렸던  소리나 경적 소리 같은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다른 시공간에  것처럼 말이죠!


   그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고 시험기간 때 소설책 읽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 내가 그때 책 읽는 걸 그래도 좀 좋아했었는데..!”

  이전에도 몇 번 왔던 도서관이었지만, 그날의 도서관은 저에게 전혀 다른 공간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에 사로잡혀 읽고 싶은 소설책 두 권을 집어 들고 대출하면서, ‘반드시 도서관 사서가 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여전히 공부라면 재능이 없지만 그날의 그 강렬한 느낌만 믿고 사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고 원하던 사서가 되었습니다.


  그때 나이, 서른!


  당시에는 늦은 나이라고 걱정했지만, 지금 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150만 원을 웃도는 비정규직 기간제 사서를 세 번 정도 하고 나니, 정규직 사서를 지원할 수 있는 경력이 쌓였고 지금은 그토록 바라던 정규직 사서가 되어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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