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제 교원 근무조건과 3가지 고민
얼마 전 A초등학교에서 약 2달간 사서로 근무했다. 정확한 근로 계약명은 '사서교사 대체 시간강사'인 계약제 교원이었다. A초등 사서교사가 병가를 사용해 기간제 사서교사를 구했으나 지원자가 없었다. 결국 사서로 대체했다. 덕분에 나는 교원자격증 없이 A초등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사서교사는 교직이수가 필수다)
먼저 초등학교 계약제 교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11가지 서류를 제출했다.
1. 최종학력증명서
2. 자격증사본
3. 경력증명서
4. 지원서(이력서)
5. 자기소개서
6. 채용신체검사서
7. 잠복결핵검사서
8. 마약검사서
9. 성범죄 경력 및 아동학대 관련 범죄 전력 조회 동의서
10. 통장사본
11. 주민등록초본
* 제출 서류는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 채용신체검사서, 잠결핵검사서, 마약검사서는 10만 원 정도 비용이 발생했다.
계약제 교원 임금과 근무 시간은 다음과 같았다.
- 시급 단가 : 12,140원(교육공무직 시급) + 96원(특수업무수당) = 12,236원
- 근무 시간 : 일 8시간, 08:30 ~ 16:30 (휴게 시간 16:30 ~17:30)
* 특수업무수당은 사서자격증 수당이다.
* 학생 일과에 맞춰 중간 휴게 없이 이어서 근무하고, 오후 4시 30분에 퇴근했다.
* 점심시간(11:20 ~ 11:50)은 약 30분 정도 사용했다.
나는 지금까지 작은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했다. 학교 도서관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A초등학교 도서관은 기대 이상으로 쾌적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학교 도서실 풍경과 달랐다. A초등학교 도서관은 웬만한 작은도서관보다 크고 이용자 친화적이었다. 주 이용자 연령에 맞게 도서관 인테리어가 알록달록했고, 서가 높이도 낮았다. 학생 수십 명이 동시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넉넉했다.
기존 근무자인 사서교사는 급하게 병가를 쓰고 떠난 상태였다. 사서교사가 없는 동안 다른 선생님이 도서관 업무를 임시로 맡았다. 그 선생님은 도서관 출입문 비밀번호와 자료관리시스템 계정 정보를 알려주더니,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게 끝인가?' 싶어 당황스러웠지만 공공도서관 업무와 크게 다를 게 있겠나 싶었다.
잠시 후 등교한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우르르 입장했다.
나는 아이를 키워 본 적도 없고 초등학생 특성에 대해 아는 바도 거의 없었다. 그런 상태로 초등학생 열댓 명을 한꺼번에 맞이하고 느낀 첫 번째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학교가 홈그라운드라 그런지 아이들 태도는 생각보다 당찼다. 아이들은 나를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인데도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아이들 질문이 쏟아졌다. '우와! 새로운 선생님이다! 선생님, 새로 오신 거예요?', '그럼 그전에 계시던 선생님은 안 오시는 거죠?', '선생님, 이 책 연체됐는데 어떡해요?', '선생님이 계속 근무하시는 거예요?', '언제까지 근무하시는데요?', '그럼 임시직이에요?' 아이들은 대답할 시간도 충분히 주지 않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정말 궁금한 게 맞나 싶었다. 게다가 아이들 질문은 의외로 구체적이고 직설적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서교사 거취를 자세히 묻기도 했다. 그 선생님이 왜 쉬는지, 어디가 아픈지, 언제 돌아오는지 그리고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까지.
사방에서 질문 세례를 받으며 아이들이 건네는 책들을 반납하고 대출했다. 새로운 자료관리시스템이 아직 눈에 익지 않아 더욱 긴장됐다. 실수하지 않으려 정신을 바짝 차렸다. 책 수십 권이 내 손과 아이들 손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20분이 흘렀다. 1교시 시작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부리나케 교실로 뛰어갔다. 20분이 2분 같았다. 하지만 20시간 일한 것처럼 기가 빨렸다. 아이들이 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애들을 너무 호락호락하게 생각했구나!’
잠시 후, 9시 5분에 두 학급이 도서관에 들어왔다.
도서관 안에는 학생들이 50명쯤 있었다. 각자 읽을 책을 고르는 중이었다. 그중 1/3 정도가 나를 흘깃흘깃 쳐다봤다. 내 앞을 지나가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다행히 앞선 20분과 달랐다. 당시 도서관에 있던 학생들은 3, 4학년이기도 했고, 담임 선생님과 같이 온 도서관 이용 수업이라 그런지 조용히 질문했다. 나는 묻는 말에 성실히 답했다. 내 대답을 듣고 아이들은 내가 언제까지 근무하는지와 같은 새로운 소식을 같은 반 친구들에게 전했다. 한 교시마다 두 학급이 도서관을 방문했고 나는 일주일 동안 같은 질문을 100번쯤 받았다. 마음 같아선 종이에 '두 달만 근무하는 임시 사서예요. 이전 사서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라고 써붙이고 싶었다.
나는 학교 도서관 근무 첫날부터 3가지 고민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아이들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나는 자연스레 아이들을 '친구'라 불렀다. 아이 이름을 확인할 때 '친구, 이름이 어떻게 돼요?'라고 물었다. 몇 번 사용하고 나니 그 초등학생이 내 또래도 아닌데 '친구'라고 부르는 게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너'라고 지칭하는 건 '내가 나이가 더 많잖아'라는 귄위가 담긴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너'로 시작하면 '이름이 뭐니?'처럼 반말로 끝맺어야 한다. '너는 이름이 어떻게 돼요?'는 이상하니 말이다. 물론 호칭을 생략하고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호칭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러 아이들 중 한 아이만 콕 집을 때도 필요하고, 멀리 있는 아이를 부를 때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호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인 느낌 때문이다. 아이에게 호칭을 쓰지 않는 게 어쩐지 사무적이고 다정하지 않다고 느꼈다. 호칭이든 이름이든 먼저 부르고 본론을 꺼내는 게 부드러운 흐름 같았다. 결국 고민하다 찾은 답은 '학생'이었다. 나는 그 후로 ‘학생, 이름이 어떻게 돼요?’라고 물었다. 사실 이마저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생'은 왠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대학생을 부를 때 써야 더 자연스럽다는 게 내 주관적 느낌이다.
두 번째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태도였다. 학기 초에 도서관 이용 방법과 규칙에 대한 사전 교육이 있었을 텐데 아이들은 도서관 예절을 곧 잘 어겼다.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잡기 놀이를 하거나, 친구한테 자신의 실내화를 던지거나, 도서관 바닥에 슬라이딩을 하거나, 도서관에 놓인 1인용 빈백 소파를 던지고 놀았다. 심지어 과자봉지를 떡하니 펼쳐 놓고 먹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 어떤 식으로 말하는 게 좋을지 고민스러웠다. 부드럽게 말하는 게 좋을지 엄중하게 말하는 게 좋을지 혹은 한두 번은 눈감아 주는 게 좋을지, 매번 지적을 하는 게 좋을지 말이다. 나는 오은영 박사님이 쓴 '엄마표 학교생활 처방전'을 읽고 내 역할과 자세를 정립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교육에는 공부를 하는 학습 외에도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아이가 더 큰 무언가를 배우게 하는 목적도 포함된다'라고 한다. '학생은 학교가 정한 규범과 규칙을 따라야' 하며, '학교는 아이의 사회화 과정을 돕는 기관'이다. 고로 교육자는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일관된 태도로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 '학교처럼 규칙과 질서가 있는 곳에서 마음이 내킬 때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생활하기 위해 내키지 않아도 지켜야 함을 지속적으로 교육시키고 훈련'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비록 2개월이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사서이자 올바른 어른으로 남고 싶었다. 나는 도서관 이용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말하기 전에 물었다. '도서관에서 뛰어다니며 친구 이름을 크게 부르면 될까 안될까?'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이용 규칙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뛰거나 소리를 질러도 된다고 하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맞아~ 뛰어다니다 다른 친구와 부딪혀 다칠 수도 있고, 책을 읽는 친구들한테 방해가 될 수도 있어~' 나는 규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설명을 들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여러 번 지도해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이를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다. 하지만 화를 내진 않았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이기도 하고 감정적인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인내가 늘었다. 학교는 매일이 수련하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추천 도서다.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찾아 읽는 아이가 있는 가 하면,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며 책 찾는 걸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무작정 '선생님, 재밌는 책 좀 추천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에게 평소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읽으면 재밌을만한 책’을 추천한다는 게 나로서는 굉장히 어려웠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아이들이 자주 빌려가는 책을 권했다. 아이는 '아.. 한 번 읽어볼게요' 할 때도 있었고,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면 싫다고 할 때도 있었다.
무작정 재밌는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아이가 두 달 동안 3명 있었다. 뭘 읽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권하면 좋을까? 아이의 관심 분야를 찾기 위해 마주 앉아 스무고개를 했다면 찾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진짜 웃기는 책을 찾아서 건네야 했을까? 나는 끝내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직은 내게 그런 능력도 없거니와 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도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도 없었다. 하루에 도서관을 방문하는 아이들만 수백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