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한 첫 주는 쏜살같이 지나갔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금요일이었다. 물론 직장에 있는 동안, 시간이 빠르게 가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보통은 퇴근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니 말이다. 학교는 8시 반에 출근해, 4시 반에 퇴근했다. 당시는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이라 출근하려고 아침 7시쯤 집에서 나오면 거리가 어둑어둑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할 오후 6시쯤에도 어스름했다. 계절 탓인지 하루가 금방 끝나는 기분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한 두 달은 오로지 학교와 집만 오갔다. 심지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어른이 돼서 초등학교에 가니 모든 것이 반갑고 새롭게 느껴졌다. 어릴 때는 학교 운동장이 세상 넓다고 생각했는데 크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마주한 것들은 대체로 작고 귀여웠다. 특히 1학년 아이들이 그랬다. 1학년 아이들은 몸이 작아서 그런지 걸어 다니는 인형 같았다. 아직 앳된 목소리와 얼굴은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질 만큼 귀여웠다. 친구와 손을 잡고 복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면 마치 어린양들이 몰려다니는 것처럼 사랑스러웠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인류애가 샘솟았다. 하지만 그 작고 귀여운 아이들도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낯선 사람이니 당연하다) 그러다가도 옆에 있는 친구를 보면 금세 입꼬리를 올리며 꺄르르 꺄르르 웃어댔다. 아이의 무해한 웃음에 마음을 빼앗기게 됐다. 그 꺄르르 꺄르르 웃는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어서 하루빨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 중 한 명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함과 미소를 담아 도서관에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어서 와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낯을 가리던 아이들이 내 인사를 여러 번 받고 난 후부터 표정이 점점 편안해지는 걸 목격하게 됐다. 나중에는 양손을 배꼽 위에 얹고 고개까지 바싹 숙이며 인사하는 아이도 있었다. 나의 진심이 아이 마음에 닿았는지, 아이의 인사는 참으로 정성스러웠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나타나니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었다. 학교 도서관은 일할 맛 나는 일터였다.
반면 새로운 선생님에게 굉장한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아주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아이들도 있었다. 대체로 고학년 아이들이 그랬다. 고학년 아이들은 함께 온 친구 무리들과 키득키득 거리며 내게 거침없이 물었다.
'선생님, 새로 오신 거예요?'
'그럼 그전에 계시는 선생님은 그만두신 거예요?'
'선생님 그럼 임시직이에요?'
'그 선생님 자르고 선생님이 계속하시면 안 돼요?'
'선생님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에 계시던 선생님이 떠들지도 않았는데 조용히 하라면서 저한테 죄를 덮어 씌었어요.'
의아하게도 출근 첫날부터 '선생님이 계속 근무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내 다정함이 아이들한테 제법 통하는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기존에 근무하던 사서교사와 아이들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아서, 아이들은 내게 더 호의적이었던 것이다.
아이들과 가까워지니 아이들은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내게 털어놓았고, 주변 선생님들도 조금씩 귀띔해 주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을 통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이들도 선생님도 참 안타까웠다. 그 선생님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20대 초 사서가 감당하기에는 다소 버거운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아이를 상대하는 일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학교 도서관은 그저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시작하기에는 어려운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서로 근무를 시작하면서 차상위계층 아이들에게 4년 동안 그림책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했었다. (개인적인 경험상 차상위계층 아이들이 보통 아이들보다 대하기 조금 더 어려웠다) 게다가 직장생활을 20년 가까이하면서 별의별 일과 인간들을 겪었기 때문에 첫 학교 근무가 아주 어렵지만은 않았다. 이런 경험과 연륜이 없었더라면 나 역시 특이한(?) 아이들 때문에 상당한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특이한(?) 아이들은 굉장히 소수였다. 가령 도서관 안에서 잘못된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아이에게 왜 하면 안 되는지 차근차근 설명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뒤돌아서면 금세 또 같은 행동을 했다. 아직 어려서 저런가 싶다가도, 어른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게 놀랍기도 했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선생님의 말을 전혀 수용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아이를 보며 짧은 기간임에도 무력감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다른 수백 명의 아이들도 응대해야 하고, 반납된 책이 3단 북트럭에 꽉 찰만큼 넘쳐나니 책 꽂을 시간도 모자랐다. 저학년 아이들은 아직 청구기호가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읽은 책을 아무 데나 꽂고 가버렸다. 북트럭 위에 올려놓으라고 안내해도 종이 울리면 읽던 책을 냅다 서가에 꽂고 뛰어간다. 잘못 꽂힌 책까지 일일이 정리하려니 여유로운 날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근무 환경 때문에 아이들이 말한 대로 ‘처음에는 착했던 사서 선생님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녀처럼‘ 변한 게 아닐까? 조금 과격한 남자아이는 그 선생님을 '이상한 여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