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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혜ㅣ Grey Jul 03. 2023

어쩌다 팀장, 업무 위임

* 모 그룹의 신임 팀장 온보딩 SBL(scenario-based-learning) 개발을 위해 썼으나, 사용되지 못한 비운의 시나리오를 풉니다. 

이미지 출처 : 게티 이미지 뱅크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F책임을 보면 알 수 있다. 시작하기 싫어서 미루고, 귀찮아서 미루고, 그러다 보면 이미 기한의 반이 지난다. 그래서 항상 일정이 반도 안 남았을 때가 되서야 시작하기 때문에, 시작이 반이다.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때, 왜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걸까. 그래놓곤 틈만 나면 기한이 촉박해서 힘들었다고 늘어놓는다. 무서운 건 그게 다 진심이라는 거다. 


며칠 전엔 한 팀원에게 보고서를 만들어 달라 했더니, 수치만 넣어왔다. 팀원이야 수치만 채우면 되지만, 나는 그걸로 보고를 해야 하니 난감했다.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는 팀원을 앉혀놓고 하나하나 설명을 했다. 그러니 나중엔 내 업무를 다 쳐내지 못해 혼자 야근을 하는 날도 종종 있었고, “이 팀은 왜 팀장만 남아서 일을 하고 있어?”라는 소리도 들었다. 팀장이 되면 ‘필드엔 출입금지’라고 하는데, 일의 완성도를 추구해야할지 팀원들의 자율과 성장을 장려해야할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해야할지.. 신뢰를 해야할지.. 프로젝트 진척은 언제 얼마나 체크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중에 프로젝트를 다 끝내지도 않은 F책임이 휴가를 올렸다. 모니터 너머로 얼굴을 보니 F책임이 싱글벙글 웃고 있다. ‘네. 잘 다녀오세요.’라고 매정하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물결을 붙였다.   


코로나 이후로 재택근무까지 겹치니 팀원들을 관리하는 게 힘들다. 제도와 시스템이 뒷받침 해주지 않는데 이러고 있자니 나는 좋은 팀장인가 호구인가 헷갈린다. 또, 나는 받아보지도 못한 리더십을 발휘해야한다는 점에서 ‘낀세대’라는 말을 절감한다. 팀원 시절, 꼭 “애들 시켜, 애들”이라고 말하는 팀장님을 싫어했던 터라, 우리 팀원들만은 자율적인 어른으로 대하자고 마음 먹었는데. 하지만 엊그제까지 실무를 하다 온 내 눈엔 계속해서 ‘아.. 저러면 안되는데..’하는 포인트가 생겨, 표정을 숨기는 게 어렵다. 


내 말이 접수되지 않는 상황에서 착한 말만 하지 않는 나 자신을 견디는 것도 일이다. 저들도 힘들겠지. 내 말이 생선가시 같겠지. 잔소리 같겠지. 팀원들아 그래도 나는 믿고 있어, 믿고 있어. 그런데 언제까지 믿고 있어야 될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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