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희로운 Oct 18. 2023

아홉수 하늘연달 열이레의 기록

10년 만에 쓰는 밤의 일기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항상 글을 썼다.

일기를 써오던 오랜 습관이었다.


보통의 나날들에는 굳이 글로 적지 않아도 기억이 선명했고,

꼭 이러한 어둠이 짙은 밤의 기억은

날카롭다 못해 아린 데다 파편이 작아

조각조각 모아 붙이지 않으면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마치 바닥에 떨어진 유리가루처럼

언젠가 나도 모르게 지나가다

밟고 피를 흘리고 나서야 아 여기 조각이 있었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 날엔 글을 썼다.

 번의 경험으로 인해 필요성을 학습했다.

이런 밤마다 내가 오늘 낮에, 혹은 꿈에서, 마음에서

 번이고 깨부순 유리를 대면하고 파편을 세어 붙였다.


오늘은 마음속에서 여러 번 그를 만들었다가 부수었다가 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자 관계 지향적인 사람으로서

운명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자 충분히 가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운명을 미리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저 점쳐보거나 단순히 기대할 뿐이다.

그것이 나에게 희망을 주기도, 좌절감을 주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알 수 없는 미래라는 것은 제법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성공한 삶을 가지고 싶은 건 어쩌면 본능이었다.


성공한 삶이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사회적인 측면으로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명예직이거나, 명예로운 경력에 준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그 모든 것들을 고려해

내가 할 수 있는/가질 수 있는 것의 상한선 시작점을 정해놓고

그 길을 향해 가는 것이 현재였다.


그러나 성공의 형태가 완벽하게 매끈한 구(球)는 아니듯

각각의 어떠한 요소에선 요철의 여부나 정도의 차이를 두고

최종적으로 이뤄진 형태는 타원의 구나

가시가 두꺼운 성게의 방사형 별모양도 때론 가능하겠다 생각했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원형의 변형이라는 거.

어느 몇 가지 요소의 극단으로 이루어진 각형의 모습이 아니라

어느 정도 두루두루 갖고 있는,

혹은 그래서 더 둥글둥글하다고 할 수 있는 형태였다.


관계 지향적인 사람으로서 이 요소는 나에게도 해당되지만

나의 상대에게도 해당되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발전지향성,

배울 점이 있는 상대이거나

같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하고 공유할 상대인지가 중요했다.

그렇다고 하면 어떤 사회적 성공의 형태이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사실, 나는 한번 확신이 들면 웬만해선 방향성을 바꾸는 일이 없다.


그러나 그를 생각하면 자주 속상했다,

그는 나의 이상형이기도 하였기에.

그는 어느 시점에서 '나'이기도 했고, 어느 시점에선 나의 멘토이자 선배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엔 퍽 사기꾼 같다가도 어느 날엔 여실히 소년 같았다.

때론 매우 개인 듯 진실되다가 또 다른 날엔 매우 알 수 없는 안개 같았다.


나는 문장 안의 단어 하나하나에서 자주 멈춰 읽었고

시간을 들이고 지냈다.

돌밭에 자라나는 풀을 보듯 무슨 모양인지 관찰하다가

혹 잡초일까 독초일까 뽑아버려야 하나 고민했다.


그와 가꾸는 정원은 혼자이면서도 때론 같이 있었고

그것이 나는 좋으면서 무서웠다.


그를 생각하면 퍽 행복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혼자 있는 적막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워낙 웃음이 없는 사람에게 웃음을 주었을 때,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 사랑임을 알았고,


오늘 당신이 몇 번이나 웃었을지 고민했다.


혼자 있을 때의 당신에게도 내가 사랑일 거라고 확신했다가

돌이켜 다시,

단지 탐하는 목적의 무언가가 있을 거란 확신이 피어올랐었다.


설명은 변명 같기도 하였고 더 자세히 파고들자면서도

다년간의 경험으로 증명할 수 도 있을 것 같았지만

때론 가끔 억지로 믿고 싶기도 했다.


결말은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가

다시 안갯속으로 여의주를 물고 도망가는 낌새였다.


항상 찾으러 떠나면 사라지는 무지개마냥

행복은 저 멀리에서 마치 잡힐 듯 손짓하다

따라가다 눈떠보니 덩그러니

또다시 망망대해에 떠있을까 봐 무서웠다.


그러나 이해가 가면 항상 슬퍼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여전히 슬퍼하고 퍽 이해가 가는 나 자신을 미워하다

깜박 잠이 들면 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것 외엔 답이 없는 밤.


오늘도 여전히 밤은 길고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 겨울은

야속하게도 또 금방 온다.



이전 07화 그때 우리는 우리여서였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