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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로운 Jan 13. 2024

이해하면 슬퍼지기 마련이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안녕 주정뱅이, <봄밤> - 권여선

그는 항상 나를 만날 때면 술을 마셨다. 정확히론 그는 저녁에 사람을 만나면 술을 마셨다. 우리가 친해진 것도 그 이유였으나, 가까워진 이후로는 정작 그것이 걸림돌이 되곤 했다.


나는 술을 못 하지는 않으나 좋아하지도 않아서, 잘 알고 있지도 않고, 주변에 술을 즐기는 사람 또한 없다. 그런 내가 그를 따라다니며 위스키니 와인이니 먹게 된 것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나의 애정 표현이자 노력의 일부였다.


그는 나에게 항상, 좋아한다면 알게 될 것이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말했다. 사실 그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였는데, 나한테 이해한다는 것은 미워하고 거리 둘 수 없음이었고 그것은 슬퍼지는 것 중에 있다고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또한, 모든 것을 안 다는 것이 나에겐 일종의 피곤함이기도 했다.


여태는 사랑하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알게 되어 사랑한 것에 가까웠기에 내가 이해하는 것은 모두 나의 가까이에 있었고 사랑하면 갖고 싶어졌기에 내가 사랑하는 것 또한 모두 나의 곁에 있었다.


그럴 수 없이 이해만 한다는 것은, 혹은 그럴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슬픔일 뿐이었다. 나 또한 좋아하는 취미가 많았으나 항상 상한을 정해두었다. 그리고 그건 그 이후의 것들은 모른다는 말과 같았다.


나는 알게 되면 갖고 싶어지는 사람이고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내가 좋아하는 걸 못 가지는 걸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는, 혹은 그래도 견딜 수 있는 '대인(大人輩)'이 아니었다. 갖지 못하는 것을 참고 그리기만 하는 것보다야 때론 모르는 것이 더 약이었다.


그래서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애초부터 탐하지 않았고(aka. 에르메스 st 넘사벽) 가질 수 있지만 돈이 필요하다면 돈을 더 벌었고, 노력이 부족하면 노력을 더 했다. 물론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겠으나, 최대한 가능한 선에선 모두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집안에 물건이 줄지가 않는 것 또한 사랑이 많은 탓이라고 하자,,)


그러나 사랑해서 알게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건 그냥 새로운 세계와 끝없는 갈증의 시작이었다.


일례로 내가 만약 와인 자체를 알게 되어서(맛있어서) 점차 빠지게 되었다면 일정 금액 이상은 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예 눈 가리고 귀 막고 모르고 살았겠지. 여태 미식을 몇백만 원 가까이 해대면서도 와인을 단 한 병도 집에 안 사다 놨던 이유였다. (사실 그렇게 빠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와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미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깊이 교류하며 그것이 교감의 일부일 때, 감정의 전이인 것처럼 사랑하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되는 것으로 정해져 버렸다.


그때부터는 갈증의 시작인 것이다.


한정판 와인이 한병에 182만 원짜리 와인이든 사실 나랑 관련 없었던 것이, 마치 1000억대 자산가가 10억짜리 차를 일시불로 사서 1% 포인트를 천만 원 상품권으로 받았다는 거랑 같은 먼 나라 꽃나라 느낌이던 것이, 이제와 삶의 목표 중에서 하나의 목적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앞으론 뭐 하나를 먹으면서도 품종을 따지게 되면서, 풍미를 알아보게 되면서 내내 싫어한다던 오키향 짙은 레드와인의 맛을 알게 되면서 이제는 '전과 같지 않으리라', 예언이 꼭 맞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그러했다. 이제와 사랑하게 된 모양이 이해하고 공유하고 향유하게 되면서는, 또한 싫어하여 맞지 않음과 동시에, 스스로 여탠 알고싶지 않았던 '내가 싫어하는 행동들'의 이유를 찾아보고 더 알게 되고선 그때부턴 더 이상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에 갈증 내는 동시에, 노력해도 받아들일 수 없음에 슬퍼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다.


그가 술을 좋아하는 것,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잦은 것, 매번의 데이트가 bar 혹은 이자카야인 것까지야 괜찮았으나, 그는 점차 그것을 넘어 나에게 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낮에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거나, 나한테 미처 표하지 못하고 쌓아놨던 불만이 있는 경우, 그는 나에게 신경질을 냈다. 때때론 왜 이러냐고 묻는 말에 대답 대신 욕설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나의 기록들을 두고 '또 이러한 얘기들을 브런치에 써서 공론화 할거냐'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최근 엎어진 프로젝트들로 마음 쓰고 있는 것을 알았고, 화가 나면 맘에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걸 알았다. 이해해버리고는, 더이상 미워할 수 없어 그저 슬퍼하기로 하였다.


이제와 그것들이 옳은 것이라 합당하다 여기거나 합리화 할 생각도 없으나, 반면에 나만 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돌이켜 그를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 방에 남아있는 위스키 잔들이 허망하게 서 있는 것들을 보며 나는 자주 우리를 생각했다.


이해하여 슬펐던 나와, 이해하지 못해 화를 내던 너와의 간극이 얼마나 멀었는지, 그걸 이해하여 또 슬펐다. 돌아갈 수 없음에도 자꾸만 마지막 장면을 곱씹곤 했다.


다른 사람들과 처럼 적당한 술로 시작했어야 됐다는 후회와 함께, 덕분이라는 생각도 함께, 구태여 술을 먹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냐는 원망과 함께, 또한 왜 먹는지 이해하는 마음도 함께, 여태는 단 한번도 한 적 없던 혼술을 시작하며 자주 물었다.


술의 달콤함에 잊는다는 게 일시적임을 알면서도. 항상 알면서도 하는 건 왜인지 바꾸기가 어렵다. 안 되는 건 알겠는데, 반대로 왜 해야하는지 왜 여전히 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아서인지.


회복은 오래 걸릴 것 같다. 가능할지조차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나또한 한잔 술을 기울이며 찾아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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