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앞에서 양심은 죽는가
기업의 ESG 보고서가 웬만한 회계감사보고서만큼 두꺼워진 시대다.
모든 기업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말하고, '사회적 책임'을 외친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식은 오르나요?"
윤리적 소비는 더 이상 물건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윤리적 투자도 고민한다. 그런데 정작 시장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수익률은 괜찮으세요?"
배터리를 만들며 아동노동을 외면한 기업, 물을 팔기 위해 현지 마을을 고갈시킨 글로벌 브랜드,
전쟁터에 연료를 공급하는 에너지 대기업. 모두 우리가 가진 ETF 안에 들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이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는 그 회사를 산 게 아니라, 그 시장을 산 거야."
그렇다면 시장은 윤리로부터 자유로운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장은 애초에 윤리를 고려할 수 있는 구조인가?
윤리는 불확실성과 충돌한다.
투자란 기본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행위인데,
그 판단의 순간에 윤리라는 추가 제약을 거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 정당한가?
여기서 우리는 윤리를 '좋은 기업 고르기'쯤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진짜 윤리적 투자는,
내가 기대하는 수익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쌓였을 수도 있다는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즉, 윤리란 도덕적 우월감이 아니라 이익의 경로를 추적하는 노동이다.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면서, 혹은 고배당 주식을 매수하면서, 우리는 가끔 잊는다.
'그 이익은 어디서 오는가'를.
자본은 때로 불편한 진실을 포장지 삼아 돌아간다.
그 포장지를 뜯는 순간, 당신의 수익률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모른 척한다.
윤리적 투자는 그래서 종교처럼 여겨진다.
너무 순진하거나, 너무 이상적이거나, 결국엔 손해 보기 딱 좋은.
하지만 그런 조롱이야말로, 자본의 면죄부다.
어쩌면 질문은 거꾸로 던져야 한다.
"윤리를 고려하지 않는 투자가 정말 가능한가?"
이익 앞에서 흔들리는 건 양심만이 아니다.
세금, 규제, 환경, 정치—all of them.
결국 시장은 모든 걸 반영한다.
윤리를 고려하지 않은 투자는, 단기적 이익은 가능하겠지만, 장기적 리스크를 품은 채 투자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리스크가 현실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윤리 없는 투자란 없다.
다만, 우리는 그 비용을 알면서도 무시하거나, 모른 채로 지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