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는 오르는데, 왜 삶은 더 피폐해지는가
작년 우리 경제는 2.2% 성장했다.
뉴스는 이를 두고 “예상보다 양호하다”고 말한다.
정책 브리핑은 이 숫자를 성과라 치켜세운다.
하지만 가게 앞 ‘임대문의’는 더 늘었고, 점심값은 더 올랐고, 야근은 더 길어졌다.
그런데도 성장했다는 것이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문제는 숫자가 진실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GDP는 합계일 뿐이다.
딸기 한팩이 만 원이 됐든, 치킨 한 마리에 2만 원이 됐든, 가격만 오르면 성장한 것이다.
소득이 제자리라도, 소비를 울며 겨자먹기로 하면 그것도 성장이다.
그 성장의 뒤엔 삶의 질, 감정, 시간, 피로 같은 건 없다.
그건 지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경제학은 이를 보완하고자 '행복지수'를 도입하자고 했다.
그런데 행복은 계량하기 어렵다.
결국 다시 숫자에 기대게 됐고, 오늘도 우리는 지표는 상승했지만 체감은 하락하는 현실을 살아간다.
가난한 청년이 월세 30만원을 내며 만 원짜리 미용실을 피하고,
아이 셋 엄마가 마트에서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고민하다 “나중에 사야지”라고 말할 때,
그 순간도 성장의 반영에서 누락된다.
사실 성장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사람을 속이기 쉽다.
“성장”이라 하면 왠지 나무가 자라는 것 같고, 나라가 잘 돌아가는 것 같고,
우리 삶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착각을 준다.
하지만 그런 성장이라면 왜 매일 퇴근 후 지하철에 앉은 사람들이 더 피곤해 보이는 걸까.
자본주의는 성장을 멈추면 안 되는 시스템이다.
투자는 미래 가치를 당겨온 것이고, 미래 가치는 성장을 전제해야 유지된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이라는 이름의 행진을 멈추지 못한다.
GDP는 올라야 하고, 소비는 늘어야 하고, 투자는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열매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2025년 한국, 국민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성장의 과실은 평등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그러니 GDP 2.2% 증가는 상위 10%의 세 번째 외제차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치는 이 말을 잘 쓴다.
“경제는 성장 중이다.”
그 말은 질문을 덮는다.
누가 성장했는가? 무엇이 성장했는가?
그리고 그 성장에 나는 포함돼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숫자의 고속도로가 아니다.
하나하나의 인생이 탈선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속도의 인프라다.
성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아닌 ‘지표’를 위한 성장이라면,
그건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