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지독하게 잔혹하고 호흡을 가쁘게 만드는 소설이다.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 기분 나쁠 만큼 현실적이다. 그 미묘한 간극을 좁히지도 않고, 그대로 펼쳐 보이는 것이다. 채식과 육식의 차이는 표면적으로만 드러난다. 더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 들여다보면, 우리는 '영혜'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에 홀린 듯 멈추어 서게 된다.
한강 작가의 이 소설이 인상 깊은 점은 단순히 세 편으로 나뉜 소설의 조각들이 하나의 큰 주제를 관통하며 휘몰아치듯 쓰인 점에 그치지 않고, 결국 독자 당신이 '영혜'와 같은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겠느냐,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천천히 읽어가면서 한 장면, 한 장면을 아무런 방해 없이 온전하게 떠올려 볼 수가 있었다. 짐승과 똑같이 으르렁거리며 고기를 뱉어낸 뒤 과도로 손목을 긋는 모습, '영혜'와 '영혜'의 형부의 온몸에 그려진 꽃송이와 줄기가 엮이고 섞이며 교배하는 모습,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물구나무서서 다리를 벌리며 한 그루의 나무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 불쾌할 정도로 온전히 그려지는 장면들이라 소설의 극적인 면과 허무함이 가진 양면성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작가는 우리에게 더 많은 이미지를 연상시킴으로써 각자가 소설의 단순한 심상을 얻게끔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소설 전체에 뻗어 있는 우울함과 기묘함, 불쾌함. 그런 감정을 계속 상기시키고 다시 환기시켜 주면서 '영혜'와 동일시되었으면서도 내면에서 '영혜'를 거부하는 우리네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작가의 이런 숨 가쁜, 그리고 잔인할 정도로 치밀한 묘사에 놀랐다. 보통의 전개로 전개되지 않았고, 보통의 클라이맥스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하지 않았다. 읽는 내내 몰입했다기보다는,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고기를 끊고, 어떻게 사람을 뿌리치고, 또 어떻게 저 푸르른 나무들 사이에 한 그루가 되었는가. 그런 점들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우리는 어느 이에게서 피가 뿜어져 나와 질질 흐르는 고기를 동강동강 자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인가.
또 어느 이에게서 저 깊은 땅 속까지 뿌리를 내리고 물구나무 선 채로 숲의 일원이 되려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인가.
다만 떠오를 뿐이다, 꿈을 꿀 때의 흐릿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