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과 약으로 버티던 시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든 갔다. 김치 브랜드를 운영하는 후배가 참여하는 마르쉐에도, 주말이면 캠핑을 떠나는 친구 네 가족이 머무는 캠핑장에도, 전 직장 선배들이 모여 만든 브랜드 팝업 스토어에도, 취재원으로 만나 친구가 된 자동차 디자이너의 북토크에도, 단골 카페 사장님이 소개한 동네 교회에도, 그림책 글 작가를 꿈꾸는 글쓰기 모임에도, 아이 셋 데리고 제주로 이주한 친구 가족의 보금자리에도.
그렇게 내 삶에서는 도저히 찾아지지 않던 '희망'과 '사랑'이 있는 곳으로 내 몸을 데려다 놓았다. 내 모든 것과 바뀌도 아깝지 않을 두 아이에게 보통 사람들의 평범하고 안전한 희망과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서 양손을 꽉 잡고 걸었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나는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비행기 타고 어디든 갔다. 몇일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고 싶은 공허한 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두 아이들 덕분에 몸을 일으켜 세워 샤워를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돌이켜 보면 어린아이 둘을 안고 업고 무작정 어디든 다니던 우리를 환대해 준 친구들에게 큰 빛을 졌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덕분에 나는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데우고 오면 며칠은 집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나에 대해 짧은 글을 써달라고 요청 했다. 한 콘텐츠 회사의 파일럿 프로그램에 참여해 나에 대한 작은 미니북을 만드는 용도 였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절실했다. 오래 간직하기 위해 그 문장들을 옮겨 적는다.
나는 그를 편집장이라 부르지만 막 자다 일어난 듯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먼저 생각난다. 생각이 깊으나, 발 담그지 않으려는 건지 자주 웃음으로 덮는다. 턱도 없다. 연약함이 투명하게 다 드러나 버린다. 지난한 물레질과 타들어가는 불길을 견딘 흙은 가마 밖으로 나와 단단하고 매끈한 도자기로 성질을 바꾼다. 하지만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이내 산산이 깨져 버린다. 그런 면에서 도예를 전공한 그는 왠지 도자기를 닮은 거 같다. 나의 팬클럽 회장직을 잘 유지하도록 조심히 다뤄야지.
CH(친구의 친구의 대학 선배, 인터뷰이)
올곧은 심성을 지향함.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문화적 유행을 찾아라. 비판에 비판적. 허세도 전략이다. 기술은 다른 세상의 것.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너의 마음을 보여줘, 하지만 내 마음은 비밀.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을까. 정리 말고 전시. 마음속 빨래가 산더미. 애들은 예쁜데, 남편은 어디에. 내가 바로 전문가다. 비상금은 일기장에, 일기는 인스타그램에. 문서작업은 맥북이지. 핸드폰에는 발이 달렸다. 건어물 사랑. 식물은 화분을 꾸며줄 뿐. 이번 생은 망한 듯.
MS(12년 차 남편)
‘이대 나온 여자’라고 마음 편히 놀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내가 아는 가장 이대 안 나온 것 같은 사람. 깔깔대며 놀려 먹기 좋지만 툭툭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과 통찰에 뒤통수가 서늘해질 때가 있다. 옷에는 마른 밥풀이 묻어 있기 일쑤인데, 언제 그랬는지도 기억 못 해서 조용히 다가가 그 밥풀을 떼어줘도 아무렇지 않아할 사람. 그 소탈함을 보고 있으면 “에이그, 이 이대 나온 여자야!” 하고 또 놀리고만 싶어진다. 꿰뚫어 보는 그녀의 직관은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벗을 때부터 시작되니 혹시 안경을 벗고 내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면 긴장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내 속을 모두 들킬 수도 있으니.
HS(글쓰기 모임 친구)
아들 둘 엄마가 된 나의 선배.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을 텐데 선배에겐 연애 초기에나 발휘될 법한 해맑음이 있다. 해맑음과 함께 차디찬 무신경함이 장착되어 있지만 쉽사리 그 겉옷을 벗진 않는다. 말랑한 겉옷을 벗으면 돌처럼 딱딱해져 버리는 걸까?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말하지만 오래 지켜본 선배는 어떤 누구보다 한없는 관심과 애정을 건넨다. 그러고 보면 돌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모형(패이크) 돌일지도. 기억력이 나빠서 스스로 정한 어떤 선에 대한 한계를 너무 쉽게 까먹어 버리는 것 같으니까. 인간을 성선설, 성악설 둘로 나눈다면 성선설의 사람이다. 근데 정말 휴대폰 충전을 안 한다. 아, 아~ 지겨워 ㅋㅋㅋㅋ
KM(13년 차 사회 후배)
사실 우리 남매는 쌍방 과실 5:5 정도로 얽혀있는 무관심 당사자다. 다행히 누나 쪽은 좀 더 똘똘한 편이어서 무소식이 희소식인 타입. 연락은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하고 물리적 거리와 코로나 펜더믹, 맞벌이 육아 등이 서로의 무관심을 가려주는 좋은 구실이 되어준다. 하지만 관심과 방치 사이에 난 좁은 길을 서로의 페이스로 걷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넘어지려고 휘청대면 멀리서 힐끔 쳐다보긴 하겠지만 알아서 잘하겠지 뭐, 할 것 같다. 일단 마흔 넘은 미혼의 남동생에게는 관심이 덜한 것만으로도 완벽한 가족이긴 함.
CU(2년 터울 동생)
주마등처럼 딸과의 시간들이 스쳐갔다. 나를 행복하게 슬프게 하던 순간들. 혈연지간을 불가에서는 900 생의 인연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많이 다름을 인정해야 했다. 아주 가끔 만나는 딸은 최선을 다하는 엄마다. 힘들어 보이는데도 도와 달라는 법이 없다. 깊은 속을 표현하지 않는다. 한 여자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게 보여주는 귀한 명품 딸. 자신이 그리는 삶을 그대로 살아갈 거라고 믿는다.
JS(엄마)
어김없이 그녀가 왔다. 엉뚱한 세계관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사회 구성원 노릇 하며 두 아이를 잘 키워 가는 대한민국 엄마다. 우선 나와는 다르게 욕 한 글자도 내뱉지 않는 바르고 이성적인 말투를 가졌다. 카페에 오면 본인만의 세상을 테이블에 가득 채워두고 시간을 보낸다. 그 주변으로 다른 시간과 공기가 흐른다. 어딘가에 몰두하면 누가 뭐라든 시선을 옮기지 않는다. 그럴 거면 여길 왜 오는가. 집이든 카페든 길바닥이든 상관없지 않나. 오늘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쓰란다. 힘들다. 나한테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나. 그녀와 버거킹 햄버거를 나눠 먹으며 낄낄거린다. 그래, 그냥 지금처럼 살자. 괜찮다. 세상에 너 같은 사람도 세상에 한명쯤은 있어야지.
KA(동네 단골 카페 사장)
우리 엄마는 공감을 잘해주고 좋은 의견을 많이 얘기해 준다. 주의! 한번 고민이 있다고 하면 끝까지 말하라고 재촉하니까 알려주고 싶지 않다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 말 것.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라면 조금만 신경을 건드려도 급발진하니 조심해야 한다. 가끔은 소리도 지른다. 실수가 잦고, 뭘 많이 잊어버린다. 따뜻한 사람이고, 자기주장이 크다. 뭐든지 자세하고 정확하게 말하고, 빨리 되지 않으면 불편해한다. 운동을 별로 안 하고, 핸드폰을 많이 본다.(일 하는 거라고 하는데 글쎄) 가끔은 모든 게 귀찮은지 누어만 있다. 얼굴은 화장만 안 하면 30대 여성 같다. (원래 나이: 43세 생일 00월 00일) 대화할 때 말과 함께 그 상황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도 있다. 안경을 썼고, 머리는 어깨 조금 넘는 정도로 길다. 무게는 아마 50kg 정도 한다.
RH(열두 살 아들)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눈을 마주치면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눈을 맞추면 야옹 소리를 내거나 안보는 척 무심하게 몸을 비비는 고양이처럼. 꼬리를 흔들어 대는 강아지 보다 조용조용 사뿐사뿐하게 거리를 두고 다가왔다. 창가에 앉아 햇빛을 받는 나른한 순간에도 그 공간의 주인공인 고양이처럼 늘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빛이 났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가까이 다가가면 이내 휙 자리를 피해버리는 고양이처럼 사람을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멀리 가버리진 않고, 주변을 서성인다. 고양이처럼.
JM(전 남친 대표)
똑똑한 사람이다. 반면 일하는 자아 뒤에 허당끼가 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같이 사는 사람이라면 좀 그럴 수도 있겠다. 다행이다. 나는 가끔씩 그를 봐서. 닮고 싶다. 그의 명석한 두뇌를. 닮고 싶지 않다. 그 허당끼를.
DW(클라이언트사 대표)
비 오는데 별일 없이 무사히 오겠지, 요리할 때 도구는 안전하게 뒀나, 아이들 마칠 시간인데 안 늦고 갔나, 내 차에 태울 때는 시트에 커피는 흘리지 않을지, 같이 걸으면 도로 안쪽으로. 내 발밑보다 그녀의 발밑을 자꾸만 보게 된다.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동생 같은, 언니 같은, 친구 같은 사람. 주변을 살피고 발을 딛어요. 제발.
JY(지금도 함께 일하는 포토그래퍼)
10편의 글이 모였다. 또 무슨 꿍꿍이냐고 나무라면서도 친구, 취재원, 동료들이 내게 장문의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뜬눈으로 지새운 여러 날의 깊은 밤, 누워만 있던 밝은 낮, 눈 뜨고 싶지 않아 커튼을 치지 않던 몇 번의 아침에 나는 그 메시지들을 읽고 또 읽었다. 마치 약처럼 꺼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