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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랑 Nov 28. 2024

사춘기 소년의 하루

아이가 삼일째 학교도 학원도 안 간다.



# 장면 1

 아이가 삼일째 학교도 학원도 안 간다. 짜증과 화가 늘고 인과관계없는 막말을 해댈 땐 어김없이 아이의 아이폰에 스크린 타임이 풀려있다. 최근 삼일동안 유튜브, 사파리, 게임을 3시간 반, 4시간 반, 6시간 반을 사용했다. 지난주까지 하루 두 시간을 잘 지키는가 싶더니 화요일부터 암호를 풀어버린 거 같고 정확히 그날부터 학원에 안 갔다. 

 작년에는 10시간을 넘겨 사용해서 아이를 훈육한다고 매까지 들었는데 다 소용없다. 스크린 타임 걸고 풀고 혼나고 고집 피우고 드러눕기가 점점 더 심해진다. 어제는 12시에 핸드폰을 뺏었더니 급기야 자기가 할 수 있는 온갖 막말을 모아 뱉어놓고 방문 잠그고 들어가 누워서 꼼짝도 안 한다. 담임선생님께는 머리가 아파서 학교에 못 간다고 했는데 아이는 정말 머리가 아파진다. 초등 3학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은 타이레놀 반쪽을 먹고 있다. 

 Adhd 검사 재권유를 받았지만 그러기에 아이는 너무 커버렸다. 아이는 자긴 아무 이상이 없어서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한다. 우선 제일 걱정이 되는 건 감정조절 부문이다. 아이가 게임 밖에 숨을 곳이 없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작년 여름에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다녀왔고, 또래 친구들과 안전하게 놀 곳을 찾아다니다 동네 교회를 나간 지 3년 차가 되었다. 오늘은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엄마는 너무 내 마음을 너무 모른다고. 


"너무 알고 싶다. 

사춘기 12살 소년의 마음이."




# 장면 2

 지난 수요일에는 단골 카페에 데리고 가 평소 아이가 좋아하던 쌀국수와 패션후르츠를 시켜 점심을 먹었다.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있는 시간에 엄마와 자전거를 타고 한가롭게 카페 데이트에 나온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아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불안해 보였다. 

 그래 하루쯤은 이렇게 보내도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그 주 내내 아이는 집에만 있었다.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은 아이가 몸살이 난 거냐고 했지만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러다 금쪽이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는 사춘기 소년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머릿속엔 수많은 시나리오가 팝업창이 되어 떠다닌다.

  학교에 안 갔으니 학원도 안 가는 게 맞다고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공부는 하기 싫다고 한다.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두통이 생겨 타이레놀 반쪽이 필요하다. 아침엔 안아주고 저녁엔 화와 짜증을 폭발한다. 키가 크고 싶지만 늦게까지 그림 그리고 몰래 게임을 한다. 피아노는 5개월 배우더니 더 배울 게 없다며 악보 없이 창작만 한다. 한 5년 전공한 포스를 풍긴다. 학교에선 인기가 많다는데 아이는 친구가 없는 게 늘 고민이다. 진정한 친구의 의미가 또래 남학생들과 완전히 다르다. 사춘기가 세게 온 너를 앞에 두고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저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뽀얀 얼굴과 깊은 밤을 닮는 네 까만 눈동자릉 자꾸 바라본 기만 한다. 


"사랑이라는 말로 다 담아지지 않는 

나의 로카야."




# 장면 3

 좋아하는 갈비를 했다고 조용히 알려주니 나와서 밥 한 그릇 뚝딱하고 날씨가 너무 좋아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결국 오전 전시회 일정과 몇 년 만에 어렵게 약속을 정한 동료와의 약속을 모두 취소했다. 


"그래. 산책 가자. 

가서 너 좋아하는 따뜻한 녹차라테도 마시자. 

로카야."




# 장면 4

 스마트폰 압수한 지 한 달,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간헐적 분노 폭발 증상을 보이는 초등학생 형아와 우울증 약을 먹어가며 코빼기도 보기 힘든 남편의 생일상 준비를 시작하려는 40대 여성의 일요일은 오늘 날씨만큼이나 춥고 흐리기만 하다.


 "엄마 검정치마 틀어줘"


You are my everything

My everything

My everything

You are my everything

My everything


비가 내리는 날엔

우리 방 안에 누워

아무 말이 없고

감은 눈을 마주 보면

모든 게 우리 거야


조금 핼쑥한 얼굴로

날 찾아올 때도

가끔 발칙한 얘기로

날 놀래킬 때도



You are my everything

My everything

My everything


You are my everything

My everything



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

넌 내 모든 거야

나 있는 그대로 받아줄게요


everything


일요일 오후 내내 검정치마를 듣는다너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통해서 참 다행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엄마와 형 사이에서 피아노를 치거나 레고를 조립하는 것 외에는 도통할 게 없는 막내는 예쁜 손 글씨로 오늘 집에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는 아빠를 위한 생일 카드를 정성스럽게 써본다. 




"그래, 어제 보다 

아주 조금 더 행복한 쪽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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