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그리고 ADHD
억울했다. 결혼과 출산이 이토록 여성에게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내 일을 좋아했다. 그런데 아이도 너무 사랑했다.
말이 없던 남편은 점점 말수가 줄었고, 나는 사납게 변해갔다. 둘째 아이를 낳고서는 남편의 행방을 모른 채 8년을 살았다. 대화를 요청할 때마다 그는 영화 일이 바쁘다고만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며 그는 입을 닫았고, 나는 어떤 질문도 하지 않게 되었다.
숨 쉬고 싶어서 두 아이를 키우며 꾸역꾸역 일을 병행했다. 바쁠 때는 잊고 살았지만 아이들이 모든 잠든 깊은 밤이면 두려움과 불안이 밀려왔다. 내가 완전히 우울 속에 갇혀버린 건 자책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결혼 생활과 함께 내게 찾아온 불행을 예민한 남편 탓으로 돌렸을 때, 나는 차라리 더 건강했다. 억울함과 화가 자주 올라왔지만 그 이름이 슬픔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일과 양육을 번갈아 손에 움켜쥐며 공허함을 견디던 내게 코로나는 전환점이 됐다. 둘째 아이의 가정보육과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이의 온라인 수업 준비는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팀원들과 줌 회의를 하는 중에도 담임 선생님의 메시지를 확인해야 했다. 아이는 온라인 수업 화면에서 자주 없어졌다.
가까이에서 아이를 지켜보며 첫째의 adhd를 의심했지만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꽤 똑똑하고 사랑스러웠으며 학교에서도 문제를 전혀 일으키지 않았으니까. 나와 아이들만 남은 우리의 보금자리는 매일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쌓여갔다. 나의 우울과 아이의 adhd와 남편의 부재로 나는 슬픔에 잠식되어 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내 안에 꿀꺽 삼켜버렸다.